방장 김성미는 그렇게 막돼먹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는 경제사범이다. 그녀의 남편 최철수는 건설부 소속의 고위 공무원이었다.
그의 담당 보직은 주택부장으로 주택 공급 건의 인허가를 맡고 있었다. 그러니까 건설사의 아파트가 들어서고 말고 가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그 자리는 인허가를 빌미로 아주 짭짤한 도장값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최철수에게 도장 값을 지불하는 방법은 기상천외했다.
매스미디어에 단골 소재로 사용하는 사과박스, 굴비세트 정도로는 자칫 주택부장의 지위가 과소평가될 수 있으니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볼까 한다.
가령, 그의 가족이 기차여행을 가는 날. 열차의 빈 좌석에서 우연히 돈 가방을 줍게 되는 식의 상황이 연출된다.
"어이쿠! 이런 낭패를 보았나. 누가 여기에 돈 가방을 두고 내렸구먼!"
책임감 흘러넘치는 최철수는 주운 돈다발을 관할 경찰서에 신고한다. 그의 투철한 윤리 의식에도 불구하고 돈 가방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는다. 관련 법에 따라 주운 돈은 유예기간 6개월이 지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소정의 납세 의무와 함께 합법적으로 습득자 소유로 넘어간다.
주변에 있던 다른 승객들이 든든한 목격자가 되어 훗날 내사나 감사에도 꼬투리를 잡힐 여지가 없다.
그리고 운 좋게도 최철수는 이런 돈 가방을 곳곳에서 줍게 된다. 기타 소득세 20%와 지방 소득세 2%를 납부하더라도 이만하면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다.
대개 이런 방식은 자금 출처가 명확하여 우리가 일반적으로 칭하는 돈(깨끗한)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생활비로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다만, 최철수에게 뒷돈이 들어오는 곳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리고 그게 다 돈 가방을 줍는 형태도 아니었다.
출처를 밝힐 수 없는 뇌물은 꾸준히 돈 세탁을 했다. 그러나 세탁하는 것보다 뒷돈이 들어오는 속도가 훨씬 빨라 대부분의 재산을 은닉한 상태였다.
당시 공무원은 직업의 안정성이 보장되지만, 보수는 턱없이 박했다. 이른바 '박봉'에 소득이 훤히 드러나 세금 면할 길도 없어 '유리 월급'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였다.
TV 드라마에서도 공무원 역할의 배우가 걸핏하면 '공무원 박봉'이라는 대사를 쓸 정도로 대우가 열악하던 시절이었다.
이에 최철수도 마음 졸려 제대로 돈을 쓰지도 못하고 마음만 졸였다.
그의 집은 후진 다가구주택이었다. 실제로는 집 지하에 땅굴을 파 인근에 담장 높은 저택으로 이어놓고 이중생활을 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던가 그 철통 보안이 유지되던 뇌물 루트도 어이없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가 뇌물을 받던 건설사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피바람이 불었고 임원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처절한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해고된 전직 임원이 어느 모임에서 그날따라 술을 과하게 마신 나머지 불필요한 입방정을 떨어버렸다.
일반적인 친목 단체의 성격을 띤 모임은 아니었다. 매년 12월이 되면 대형 출판사에서 각계각층의 유력 인사들을 모아 놓고 자선 파티를 열었다.
시장성 있는 높으신 양반들에게 술을 대접하며 자서전을 집필하게 독려하는 인상이 짙었다.
그 모임에는 언론인 자격으로 프리랜서 르포 기자가 참석해 있었다. 그 기자가 전직 임원의 비위를 살살 맞춰가며 아양을 떨어 특종거리를 확보한 것이다.
전 임원은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꼬임에 넘어가 내부고발 아닌 폭로를 하고 말았다.
기자의 예상대로 그 기사는 특종이 되었다.
그리고 사건은 일파만파 확대되었다. 건설부 장관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사과를 하고 개선책을 논의했다. 그리고 관련자들을 색출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옷을 벗기겠노라고 문책에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따라서 사건은 대충 꼬리 자르기를 하고 넘어갈 사안을 훌쩍 뛰어넘어 크게 확대되었다.
건설부는 한바탕 내부 총질이 일어났고, 최철수는 주동자로 지목되었다.
최철수도 순순히 당하고만 있을 인물이 아니었다. 건설부 장관의 언론 공표가 있기 전에 이미 냄새를 맡고 애인과 캐나다로 달아났다. 남겨진 두 아들과 모친은 얼마 후 슬그머니 제3국으로 경유해 캐나다로 이주했다.
1980년대 당시는 캐나다와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기 전이었다.
최철수가 도피하는 동안 그의 처 김성미는 뇌물수수 혐의(공범)로 긴급 체포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남편의 소재 묻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고, 업무방해(괘씸죄)가 추가되어 현재에 이르렀던 것이다.
최철수는 급하게 도피를 감행하며 대부분의 재산을 은닉 상태로 남겨두고 떠났다.
김성미는 자신이 자금 전달책 지게꾼으로 남겨진 것인지, 단순히 버림받은 것인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
다만, 애인과 달아났다는 사실을 언론 보도로 접했고 격분하여 목청이 찢어질 만큼 고함을 질렀다. 그러면서도 돈의 행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다.
김성미는 이대로 무너지긴 싫었다. 복수라도 해야 했다.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남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감방을 나가는 순간 자신이 모든 돈을 거머쥘 것이고 최철수를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이를 갈았다.
뇌물 사건의 담당 검사는 김성미에게 사법 거래를 제안했다.
은닉 자금만 뱉어내면 자신의 모든 힘을 동원하여 사면해 주겠노라고 꼬드겼다. 물론 돈은 국고로 환수한다고 언급했지만, 대부분 꿀꺽 삼켰을 것이다.
김성미는 순순히 돈을 내줄 수 없었다. 그녀는 묵비권을 행사했고, 분한 검사는 앞서 설명했듯 괘씸죄를 추가해 가중 처벌했다. 이에 김성미는 졸속 재판을 받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어딘가에 숨겨둔 거액을 외면한 채, 그야말로 자발적 종신 투옥이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김성미는 감방에서 방장의 자리까지 오르며 입지를 키워나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시커먼 연기가 등 뒤로 피어오를 만큼 독기가 바짝 올라있었다.
김성미는 가족에게 배신당하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견뎌왔다. 그리고 좁은 감방에서 사생활이 박탈되어 지내며 상상을 초월하는 스트레스를 겪었다. 세상 모든 것이 김성미를 미치게 했다.
김성미는 어릴 적부터 학습능력이 남달랐다. 최고로 치는 명문대인 이화여대 법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또한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도 탁월했다.
감옥에 처음 입소했을 때 좁아터진 철창에서 김성미의 서열은 밑바닥을 기록했다. 그러나 걸어오는 싸움을 절대 피하는 법 없었다. 집단 구타를 당하면 모두가 잠든 새벽, 우두머리의 귀를 물어뜯는 전략으로 갚아 주었다. 머리가 좋은 만큼 싸움의 기술도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사람을 부리는 용인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녀는 한순간 지위가 격상해 방장의 자리까지 꿰어차고 올라갔다.
그러나 지위가 올라갈수록 감방 생활은 무료했다. 따라서 자신의 우월한 권력을 이용해 주변인들을 가혹행위를 시작했다. 인간을 괴롭히며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그게 그녀의 유일한 오락이자 하루를 버틸 원동력으로 자리 잡혔다.
그 마수에 은주가 걸려들고만 것이다.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