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주의 모친 계남은 명망 높은 무당이었다.
남의 삶을 속속들이 잘 들여다보는 무속인이었지만, 자신의 남자를 보는 눈만큼은 형편없었다. 장기간 이용당하면서 돈만 뜯기다 결국 버림받았다.
그 후 줄곧 혼자 외동딸인 은주를 길렀다.
지나간 남자에 대한 애증은 아이에게 향했다. 계남은 따뜻한 사랑 한 번 주지 않고 모질게 키웠다.
사랑하던 남자를 잃은 계남에게 남은 것은 신과 영접뿐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순조롭게 이어지지 않았다.
은주를 출산한 이후 자신의 '영빨'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그 모든 원망을 은주에게 몰아붙였다.
계남은 출산 과정에서 은주가 자신의 영험한 신기를 가져갔다고 믿었다. 그 추측은 사실이었지만, 어린 은주로서는 억울한 일이었다.
타고난 신기를 물려받은 은주는 아이 때부터 엉뚱한 소리를 곧 잘했다. 텅 빈 공간을 향해 누군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훈계하는 말투로 인생의 방향을 주절주절 늘어놓기도 했다.
은주가 그렇게 돌발행동을 할 때마다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이 하나 있었다. 말하자면 연극이라도 하듯 딴사람이 된 것처럼 과장되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빙의'였다.
계남의 혈육은 은주가 유일했다.
계남은 열여덟에 시집갔다가 신병이 들려 소박 맞고 쫓겨났다.
1958년의 일이었다.
모친은 친정으로 온 계남에게 집안의 망신이라며 빗자루를 들고 쫓아냈다. 신병이 나서 소박맞은 계집년은 가문의 수치였고 주홍글씨였다.
모친은 가슴이 찢어질 만큼 아팠지만, 다른 가족의 명예와 계남 뒤로 남은 여식들의 혼삿길을 위해서 내린 결단이었다.
그보다 좀 더 앞선 조선 시대에는 가문의 위신을 바로잡기 위해서 '명예살인'이라는 명목으로 칼부림도 불사했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만 해도 할복은 억울한 자의 메아리만이 아니었다. 실추된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흔히 거행되던 수단이었다. 옛날은 정말 살벌했다.
그렇게 갈 곳이 없어진 계남은 마냥 실의에 빠져있을 수만은 없었다.
계남은 모든 인연을 끊고 새 출발을 결심했다. 그녀는 수소문 끝에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고장의 용한 무당집을 찾아갔다. 무작정 엎드려 사정을 설명했다.
나이 든 무당은 자신들의 악몽 같은 삶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계남을 제자로 받아들였고, 내림굿도 치러주기로 약속했다. 굿은 예나 지금이나 '억' 소리 나게 비쌌다.
무당의 제자 생활은 무척이나 고단했다. 무당은 성격이 괴팍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퇴로가 없었던 계남은 모진 생활을 악착같이 버텼다.
무당은 순순히 내림굿을 치러주지 않았다. 계남을 머슴처럼 부리며 착복했다. 발작을 일으키면 '눌림굿'을 긴급 처방해 큰 위기만 대충 막아놓기 일쑤였다.
훌륭한 인적 자원이었던 계남이 떠나는 게 두려웠던 무당은 신내림 의식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계남은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고 신당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았다.
손님 응대, 제사상 차리기, 손님들 입치다꺼리가 주요 업무였다. 그러면서 곁눈질로 점치는 요령부터 난이도 최상의 작두 타기 퍼포먼스까지 머릿속에 모두 녹여 넣었다.
계남은 대학교 학위과정과 동일한 4년의 기간을 식모 아니, 제자로 헌신했다.
그 무렵 무당도 슬슬 계남에게 마음의 빗장을 풀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그루밍 되었겠다 예상했다. 그리하여 계남을 정식 무당으로 승격 시키기로 결정했다.
자신도 이제 늙고 노쇠해져 언제까지 현역으로 남아 칼춤을 출 수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무당은 일선에서 물러나 계남을 신당에 앉히고 자신은 고용주가 될 마음을 먹었다.
보름달이 뜨던 날밤 내림굿을 거행했다.
신내림을 받은 날 계남은 옷 보따리만 들고 야반도주를 감행했다.
무당집을 처음 찾아왔을 때처럼 빈털터리의 모습 그대로였다.
딱히 도주랄 것도 없는 게 이만하면 자신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늙은 무당과 계약서를 쓴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계남은 무당에게 일종의 채무 의식을 느꼈다.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었다.
계남은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은 그 누구도 자신을 찾을 수 없는 곳이라 생각했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라는 말을 생각했다.
버스터미널 플랫폼마다 '사람을 찾습니다' 전단지가 붙어있는 걸 생각한다면 타당한 생각이었다. 어떻든 계남은 서울로 들어가면 새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벅차올랐다.
계남은 시외버스 첫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다.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눈 화장을 진하게 하고 버스터미널 플랫폼에서 자리를 깔고 앉았다.
시민들 몇몇이 힐끔거리며 관심을 보였다.
곱상한 처자가 길바닥에 앉아있는 게 흔한 광경은 아니었다. 하얀 피부와 대조되게 남루한 옷을 걸친 행색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분주히 움직이는 인파 속에서 무료함과 호기심으로 무장한 어떤 남자가 계남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계남은 남자가 한 쉰은 되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땅바닥에 앉아서 뭐 하시는 겁니까?"
신중하고 정중한 말투였다.
계남은 별일 아니라는 듯 눈을 질근 감은 채 까칠하게 답했다.
"앉아있을 만하니까 있는 거예요!"
신기 있는 사람들이 다 그렇지만, 계남은 한 단계 더 오버해서 연기했다. 늙은 무당이 좌중을 압도하던 것처럼.
"아! 그러셨습니까?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남자는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당혹스러웠다. 황급히 사과했다. 부드럽게 격려의 말까지 남겼다. 그리고 재빨리 달아나려고 등을 돌리는 순간 계남이 말했다.
"아부지요, 아부지요. 도와주지 마이소. 그거 그란다고 해결되는 거 아입니데이."
남자는 계남의 뜬금없는 말을 듣고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계남의 거침없는 대답은 남자를 까무러치게 했다.
"지금 큰아들, 노름빚 갚아주러 가는가 아이가? 그거 그란다고 되는 거 아닌데, 그 자슥은 마 잊아뿌소. 그 돈은 잘 나뒀다가 공부 잘하는 늦둥이 딸 대학 등록금으로 주뿌소."
계남은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를 반존대를 섞어가며 남자에게 일침을 가했다. 계남의 말투에 뭔가 종교적인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남자는 멀뚱히 서서 고개 숙였다. 그리고 이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두 사람 주변으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