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철은 사장의 호출을 받고 일식집 다이스케로 갔다.
오 사장이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여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따뜻한 녹차를 따랐다.
"신 실장, 자네 올해 몇인가?"
"스물여덟입니다."
"자네도 이제 슬슬 짝을 만나야 하지 않겠나?"
오 사장의 뜬금없는 질문에 진철은 빙긋 웃기만 했다.
진철은 애인이 있다고 알린 적 없었다. 딱히 숨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공표할만한 사안도 아니었다. 일하기 바빴으니까.
입사 초기에 선배들에게 알릴 기회가 있긴 했었다. 그러나 신입사원이 연애질에 빠져 업무에 지장을 준다는 인상을 주기는 싫었다. 그래서 누가 연애에 관한 질문을 하면 악의 없이 '애인 없어요.'라고 말하고 넘어갔다. 다행히 캐묻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 찔리는 구석은 남아있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진철은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는 시간이 적었다. 그럴만한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그 후 쭉 애인도 없이 회사 일에만 몰두하는 아주 견실한 청년으로 이미지가 굳어졌다.
"내 딸을 소개하고 싶네만."
"네? 사장님 제가 잘 못 들었습니다."
"왜? 싫은가? 아주 예쁘다네. 내 눈에만 그런 게 아니고. 여기저기에서 혼담이 들어오는 중이야. 나도 아무에게나 내줄 수가 있어야지. 어떻게 키운 딸인데. 이제 곧 올 걸세."
진철은 눈앞에 영미가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품었다. 진철 자신도 이 상황을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우리가 잘 먹고 잘 살자는 건데, 자신이 이 기회를 발판 삼아 중역으로 발돋움한다면? 영미에게도 잘 된 일 아닐까? 진철은 나름의 희망 회로를 가동했다.
쇠뿔도 단김에 뺐던 민족 아닌가. 오 사장은 진철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주선으로 자리가 형성되었다. 오 사장의 여식 오수민이 테이블로 걸어왔다. 아마 오 사장과는 사전에 언급이 있었을 것이다.
"아빠! 아, 이쪽이 진철씨?"
"녀석아. 초면에 그게 무슨 실례냐 신 실장님이다."
"에이, 아빠두. 초면에 면박이 뭐람. 반가워요. 실장님. 전 오수민이라고 해요."
진철은 낯이 뜨거워 얼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안의 중요성과 오 사장과의 건전한 협력관계를 생각해 정중하게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 진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 숙여 인사했다.
"신진철이라고 합니다."
"정신 산만하니까 다들 어서 앉아."
"어휴, 아빠 만나기가 이렇게 힘들어서. 원, 선이라도 빙자하는 거 아니면, 안 되겠다 싶더라구요."
"네, 사장님께서 워낙 업무가 바쁘셔서요."
두 사람의 풋풋한 대화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오 사장이 자리를 일어섰다.
"난 업체랑 미팅이 있는 걸 깜빡했네. 먼저 일어나겠네. 천천히들 들고 오게."
"…저! 사장님 업체라면 어딜…."
황급히 일어나려는 진철에게 수민이 손을 저으며 신호를 보냈다.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