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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명찰 20

by 마르코니

은주는 날카롭게 눈을 치켜뜨고 간수에게 걸어갔다.

"뭐야! 1546번! 위치로 기어들어 가!"

"니이, 아가 마이 아프제?"

"뭐?"

"이 호로자쓱아!"

"뭐야? 너 미쳤어? 이 년이 안 되겠구만 이거."

"느그 할매가 서러워 갖고! 원통해서 몬 살겠단다! 그래가 아를 붙들고 늘어진다 아이가! '아이고 할매요. 할매요. 불쌍한 아는 좀 봐주소.'하고 빌어라. 개자슥아. 그기 아 살리는 유일한 길인 기라."


간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때 영미가 개입했다. 완력으로 은주의 몸을 돌려놓고 억지로 잡아끌고 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은주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다만 영미의 수습으로 전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고 원상 복귀했다.

간수는 핏기 없는 표정으로 수형자들을 인솔했다.


다음 날 오전. 은주는 간수의 호출을 받고 빈 교육장으로 불려 나갔다. 얼마 후 전날 해프닝을 빚었던 간수가 들어왔다.

"어제 했던 말 다시 해 봐."

"그게 저…."

"괜찮으니까 말 해 봐. 너 밖에서 꽤 유명한 무속인이었다며?"


은주는 자신의 배경을 알고 있는 것에 자못 놀라웠다. 그리고 은주는 자신에게 겨우 찾아온 평화를 잃기 싫었다. 교도소에서 간수들과의 대립은 곧 불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은주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뒤에 어떤 할머니가 따라 다녀요. 화가 많이 나셨어요. 뭔가 일이 잘 안 풀릴 때가 많으시죠? 할머니께서 훼방을 놓으셔서 그래요. 심술이 잔뜩 나셨거든요. 그래서 우리 할머니께서 궁금하셔서 사연을 여쭈어봤더니, 자기는 밥을 안 줘서 부아가 치민다고 하셨대요."

은주의 말을 듣던 간수가 느닷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머니, 미안합니다…."

바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과 콧물을 꼼꼼하게 정비했다. 헛기침도 몇 번 했다. 이어 목소리를 바로잡고 이야기를 풀었다.

"그 할머니는 저의 큰 어머니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장가를 두 번 가셨어요. 큰어머니께서 아이를 갖지 못하시자, 집안 어른들의 원성이 그치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갓난아기를 안은 여성을 집으로 들이셨어요. 그러니까 속된 말로 '첩'이지요. 그리고 그 보자기 속의 아기가 바로 저입니다. 종합하자면 저는 '첩의 자식'입니다."

간수는 마른세수를 한 차례 하고 말을 이었다.

"우리 어머니께서 아버지 집으로 들어간 날, 큰어머니는 그날부터 저의 친어머니 뒷바라지를 도맡아 하셨어요. 식모나 다름없는 처지로 전락했죠. 그 꼬장꼬장한 집안 어르신들의 괄시를 받으시면서 평생을 묵묵히 버티셨죠."

"그러다 3년 전에 노환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다들 큰어머니 제사를 모시는 것을 반대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건 법도가 아니지 않냐고 따졌지만, 제 식구도 아닌데 뭐 하러 제상을 차리냐고 타박만 돌아오더군요. 그러고는 저도 더는 분란을 일으키기 싫어서 입을 다물었죠. 어제 은주씨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까. 그 무렵부터 애가 아프기 시작했어요. 목에 알맹이가 걸린 느낌이 들어서 음식도 못 삼킵니다."

모든 사연을 전해 듣고는 은주가 짧게 말했다.

"제 한 번 올립시다."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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