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남은 이렇게 헤어지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어떻게 해서 기껏 만났는데 군 입대란다.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계남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쩐지 일이 술술 풀린다더라니…."
그날 계남은 경식에게 잠자리를 허락했다. 마땅히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나 기다릴게요."
"응."
경식은 잠자리를 치르고는 존대하던 말이 반말로 바뀌었다.
그리고 기다린다는 계남의 말에 뭔가 개운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경식씨, 잘 풀릴 거예요. 걱정 마세요. 3년 금방이잖아요."
"아니, 동생들이 걱정이라서…."
"아, 동생들?"
"응, 이제 나 없이 어떻게 버틸까? 걱정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야…."
계남은 후다닥 옷을 주워 입으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버스가 끊긴 시간이었다. 계남은 집까지 걸어가야 했다. 오 킬로는 족히 되는 거리였다.
조급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시키고 싶었다.
뛰었다, 걸었다를 반복했다.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꽁꽁 얼어붙는 영하의 기온에도 땀이 이마를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집에 도착하자, 자신의 방에서 요강을 집어 들고 뚜껑을 열었다. 그 속에는 뭉칫돈이 가득 들어있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황급히 돈을 갈무리했다.
두께가 한 뼘은 족히 됨직한 양이었다. 지폐를 신문지로 돌돌 말았다. 계남을 그것을 가슴에 품고 다시 여관방으로 내달렸다.
기운이 달려 동이 틀 무렵에야 여관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식은 마침 떠날 채비를 하던 중이었다.
"계남씨, 어디를 갔었어요?"
다시 어설픈 존댓말을 하는 경식에게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돈다발을 건네었다.
"이게 뭐죠?"
경식은 내용물을 확인하고 하마터면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기진맥진한 계남이 여태 숨을 몰아쉬며 말을 풀었다.
"우선 그거라도 보내주세요. 군에 있는 동안 고아원에 급한 일이 있으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제가 돈을 보내줄게요. 저 이래 봬도 꽤 잘 벌걸랑요."
계남은 이마에 땀을 훔치며 해맑게 웃었다.
"이만한 돈이 어디서 났어요?"
"제가 모은 거예요. 저 무당이거든요. 아침이 되면 또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거예요."
경식은 이제야 알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돈을 술술 잘만 보내줘서 부잣집의 얼치기 딸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계남을 만나고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경식은 어찌 된 영문인지 궁금했다. 그렇다고 대놓고 돈의 출처를 물어볼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경식은 연거푸 고맙다고 말했다.
동생들이 눈에 밟혀 힘들었는데 이제 짐을 덜어내어 다행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계남은 이걸 들고 군대로 갈 수는 없으니 자신이 소포로 부쳐주겠다고 말했다.
"듣자 하니 군에서 입대하는 사람들이 입고 온 옷과 소지품을 집으로 소포를 보내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같이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군 입대하는 사람들 짐이 뭐 귀한 게 있을 거라고 훔치겠어요."
계남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기차역에서 작별 인사를 교환하며 서로의 미래를 기약했다.
"상황이 허락되는 대로 편지할게요. 잘 지내세요. 보고 싶을 거예요."
"경식 씨도 몸조리 잘하고 건강하세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세요."
경식은 손을 흔들며 열차에 탑승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역에서 하차했다.
경식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품속에 돈다발을 의식하며 걸어갔다. 온통 돈에만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경식은 차가 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길을 건너다 군용 지프에 그대로 처박혔다.
운전석의 흑인 병사가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God! damnit!" 갓! 뎀잇!
맙소사! 젠장!
조수석에 타고 있던 백인 병사가 황급히 내려 경식의 상태를 점검했다. 그는 흑인 병사를 보며 목에 칼을 긋는 시늉을 했다.
"He's dead."
죽었어.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