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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헌터 23

by 마르코니

계남은 벌써 반년째 경식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경식이 걱정되었다. 어느 부대로 배치되었는지 알 수도 없었다.

아무리 군대라고 하지만 편지 정도는 허락되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혹시 무슨 변고라도 당한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점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자신의 배가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계남은 고민 끝에 경식의 편지에 있던 주소로 찾아갔다.

편지에 남겨진 주소는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뭔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고아원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오래된 한옥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 계세요?"

"누구세요?"

곱상한 부인이 슬며시 나왔다. 시골 아낙네치고 꽤 미인이었다. 실제로는 더 되었겠지만, 피부가 매끈한 것이 한 스무 살 정도 돼 보였다.

"여기, 윤경식 씨 댁인가요? 주소는 천사 고아원으로 되어있던데. 여기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사람 없어요. 그리고 이 집이 지어진 지 칠십 년이 넘었어요."

"그럼 이 근처에 천사 고아원은 없나요?"

"고아원이요? 글쎄요? 들어본 적 없는 것 같은데."

젊은 부인 뒤로 어린 남매가 빼꼼히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아이는 경식을 쏙 빼닮아 있었다.

계남은 갈수록 이해하기 어려웠다. 경식의 사진을 꺼내 재차 물었다.

"혹시 이 남자분 아시나요?"

"어라? 우리 신랑 사진인데? 이게 어디서 났어요?"

"이분이 신랑이라고요? 윤경식 씨 아닌가요?"

"아닌데요. 무슨 말씀이세요? 김길삼. 우리 남편이에요. 지금 우리 남편 찾고 계신 건가요?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어요?"

부인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계남은 억이 막혔다. 말문도 막혔다.

"여보세요! 우리 남편 어디 있냐고요!"

부인은 계남을 흔들어 재꼈다. 그리고 한바탕 울음을 터트리며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경식의 행방을 찾고 있는 건 부인도 마찬가지였다.

계남은 차마 펜팔 이야기는 꺼낼 수 없었다.

부인에게는 진실만큼 잔인한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계남은 목구멍까지 울음이 차올랐다. 그러나 울지는 않았다. 악착같이 참았다. 계남은 부인의 손을 걷어냈다.

부인은 세상 서럽게 울어댔다. 아이들까지 합세해 초상집이 따로 없었다.

계남은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이 거지 같은 곳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계남은 이듬해 은주를 출산했다.


그리고 그녀의 영험했던 신기가 사라졌다.

자연히 손님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매출은 곤두박질쳤지만, 직장인 월급 정도의 매출은 유지되었다. 그러나 주 고객층의 수준이 저차원으로 급락했다.

계남은 사업운 전문 점쟁이로 이름을 떨쳤다. 고객의 대다수가 기업가의 안주인들이었다.

부인들은 굳이 점이 아니더라도 하나의 소셜 활동처럼 신당을 출입했었다.

사회 지도층의 입김이 센 부인들이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였다. 기업체 사장단, 임원진 인사개편 소식에 훤했다. 이에 임원진의 부인들까지 합세했다.


대개 점집은 정초가 대목이지만, 계남의 신당은 인사철이 대목이었다. 연말이 되면 누가 승진을 하고 누가 계열사 대표로 발탁이 되는가 하는 것이 관심사였다.

그리고 계남이 굳이 입을 놀리기 전에 진급자 명단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정도 정보는 대기실에서 부인들의 입소문만으로 충분했다. 계남은 건너 들은 말을 신의 응답을 받은 것처럼 연기하며 되풀이했다. 그러면 용한 무당이 되었다.

어쨌든 계남의 '신빨'이 떨어졌다는 소문은 급속도로 퍼졌다. 고위층들이 빠지고 소문이 늦은 뒷골목 손님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계남의 인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신당 문턱은 하늘 높이 치솟았었다. 고위층들이 빠지고 비교적 수월하게 드나들 수 있게 된 것이 반짝 호재로 작용했다.

주 고객층은 날건달을 기둥서방으로 둔 호스티스들이었다.

그들을 들여다보는 일 정도는 신빨이 떨어진 퇴물인 계남조차 거울을 보듯 훤한 일이었다.

그런 생활을 이어가며 그럭저럭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매출을 유지했다.

하지만 일류에서 저 밑바닥 삼류로 전락했다는 자괴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그 모든 불행의 원인을 은주에게 전가했다.

계남은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수록 은주에게 더욱 모질게 굴었다.


다시 세월이 훌쩍 흘렀다.

은주는 초경을 시작했을 때 본격적으로 신병을 앓기 시작했다. 계남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은주는 계남을 대신해 신당에서 부채를 들었다.

용한 무당의 어린 딸이 갓 신을 받았다는 소식은 장안을 뜨겁게 달구었다.

은주는 밀려드는 손님을 받느라 정신을 잃기도 했다. 영적인 에너지를 너무 끌어 써서 기력이 빠진 것이었다.

계남은 경식의 눈매를 쏙 빼닮은 딸을 증오하며 악착같이 착취했다.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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