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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헌터 26

by 마르코니

계남의 집에서 도주한 은주는 멀리 떠날 생각은 없었다.

은주는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속담을 신뢰했다.

추적을 교란하기 위해 서울에 머무는 것이 의외의 좋은 선택지라고 생각했다.

은주는 오백 원권 한 장을 쥐고 일자리를 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무작정 돈을 까먹기만 한다면 얼마 못 가 파산할 입장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점을 보는 일 따위는 하기 싫었다.

계남에게 잡힐 단어를 남기는 짓이기도 했다.

은주는 중국집에서 250원짜리 우동을 한 그릇 비우고 전 재산의 절반을 탕진했다.

지갑이 가벼워진 만큼 마음은 무거웠다. 거리를 정처 없이 걸었다. 은주는 불현듯 전봇대에서 전단을 발견했다.


'사원 모집, 기숙사 제공, 초보 환영'

태경 제작소. 텔레비전에 사용하는 전자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였다.

은주는 기재되어 있는 주소로 무작정 찾아갔다. 회사는 공장 건물 세 개로 나누어져 있었다. 은주는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워했다. 전단 보고 왔다는 말에 수위는 사무실로 안내했다. 깔끔한 환경이었다. 복도에서 깔깔 웃고 떠드는 여직원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사무실에서 어떤 사내의 안내를 받고 다시 휴게실로 이동했다. 남자는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은주는 바통처럼 릴레이 행진을 이어갔다.

잠시 후 인사과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중년 남자와 제조 반장이라는 한 서른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인사과장은 은주의 구체적인 개인정보를 물었다. 은주가 답하는 내용을 서류에 꼼꼼히 기입했다. 제조 반장은 별로 끼어들지 못했다.

인적 사항을 다 채워갈 때쯤 은주는 비로소 일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언제부터 일할 수 있어요?"

"어, 그러니까. 생각해 보지는 않았는데…."


제조 반장이 불쑥 물었다.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어요? 물량이 달려서 일손이 부족하거든요."

"아, 네. 할 수 있어요."

두 남자는 짧게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인사과장은 대략적인 근무요건을 읊었다.

"주 야간 2교대이고, 휴무는 일요일… …."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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