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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명찰 27

by 마르코니

은주는 악사의 박자에 맞춰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눈을 크게 뜨고 은주에게 집중했다. 미세하게 동작의 속도가 올라갔다. 악사도 동작에 맞춰 박자를 올렸다.

은주의 춤 동작은 일반적인 무당들이 뛰고 흔드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골 마을잔치에서 노파들이 덩실덩실 리듬에 몸을 맡기는 것과 비슷한 형세였다. 은주는 할머니 영을 끌어내기 위해 노파스럽게 움직이는 전략을 구사했다.

춤은 한창 이어졌다. 은주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내심 뭐 볼 게 있겠냐 싶었던 관객들도 마치 연극을 보는듯한 현장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제 절을 하세요! 어머니 오셨어요!"

교도관은 손바닥을 비비며 넙죽넙죽큰절을 올렸다.

은주는 보이지 않는 상대와 듀엣으로 몸을 흔들었다. 한 맺힌 영혼의 독기를 빼놓는 비결은 신나게 노는 것이다.

그리고 심술이 좀 풀렸겠다 싶었을 때 치고 들어가 허심탄회하게 교섭을 진행한다. 이 전략은 계남에게 전수받았다.

춤은 두 시간이나 이어졌다. 악사의 손바닥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그 순간 은주가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입을 열었다.

"할매요. 할매요. 불쌍한 아는 인자 그만 놓아주소."

"가가와!?"

"얼라가 힘들어한다 아인교."

"아닌데? 그아 내 손준데? 내는 고마 얼라나 키우는 재미로 살라꼬."

은주가 일인이역을 하며 연기하듯 말했다.

"할매요. 할매요. 그 동안 아 키우고, 시댁 식구들 뒷바라지한다고 고생했습니더. 인자 고마 푹 쉬시야지요. 아들이 새 옷도 한 벌 해주고 생일날 되면 한 상 거하게 채리 갖고 할매 호강시켜준다 안 합니꺼."

"새 옷?"

"그래, 새 옷하고 매느리가 해주는 생일상도 한 상 바친다 안 합니꺼. 인자 손주는 즈그들이 키우 구로 놔 놓고. 할매는 인자 쉬이소."

"그라면 내는 인자 아 안 봐도 되나?"

"하모 예."

"그래도 아 보고 싶으면 우짜지?"

"보고 싶어도 참아야지예. 자꾸 할매가 아 옆에 붙어있으면 공부하는 데 방해 됩니더."

"아아, 그렇나? 엄머야, 우짜겠노. 내는 그것도 모르고. 흑흑흑…."

교도관이 닭똥같이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어머니! 이제 효도하겠습니다. 잘 모시겠습니다. 미안해요!"

"아이다, 아이다. 우리 착한 아들 준석이 큰엄마가 미안한 기 많다. 미안하데이. 미안하데이."

말을 마친 은주는 눈에 흰자위를 보이며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사람들이 황급히 은주의 의식을 확인했다. 그리고 몸을 편이 눕혔다.

은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식을 되찾았다. 그리고 대뜸 물부터 찾았다. 사람들의 부축을 받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 마시고는 말을 풀었다.

"영가들은 자신들이 죽은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할머니도 그런 경우죠. 저승으로 가야 하는데 죽은 기억이 희미해져서 이승을 떠도는 거죠. 그러다 평생 그래왔던 것처럼 아이들한테 헌신하려고 손주한테 붙은 거예요. 그런데 귀신들이 하는 짓이라는 게 득이 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해요. 선의라도요. 일단 세상의 법도를 까맣게 잊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만나보면서 체득했죠. 흔히 도깨비 장난친다는 말 있잖아요? 그런 말이 괜히 생겼겠어요?"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얼치기 무당들은 귀신하고 대립해요. 호통을 치고 겁을 줘서 쫓아내죠. 그게 최선일까요? 만약 자신보다 강한 신이라면 도리어 화를 입을 수도 있어요. 설령 당장은 물러가더라도 쫓겨난 귀신들이 복수심을 품고 근처에서 맴돌기 마련입니다. 언제 다시 패악질을 할지 모르는 일이지요. 귀신은 잘 구슬려야 해요."

사람들은 묘한 표정으로 은주의 말을 듣고 있었다.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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