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남은 협의했던 내용을 빠짐없이 잘 지켰다.
은주는 사전 예약 건에 대해서만 자신이 정한 시간에 상담했다.
자신의 근무시간에는 계남이 손녀인 민서를 봐주었다.
은주는 그렇게 다시 본래의 직업을 찾았다. 그리고 아주 두둑한 보수도 생겼다.
영국에게 사정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단지 융통성 있게 살림을 꾸려나갔다. 영국은 쪼들리던 생활이 나아지는 걸 체감하자 자신감이 한층 올라갔다.
얼마 후 은주의 가족은 단칸방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고대하던 개나리 아파트로 입주했다. 은주의 비밀스러운 보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주는 오롯이 영국의 힘으로 일구어낸 일이라며 눈물지었다.
새 보금자리를 얻고도 은주는 변함없이 영국이 없는 틈을 타 계남과의 동업에 정진했다.
끝없이 밀려드는 손님에 25년 전의 계남처럼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계남도 찬란했던 과거의 명성을 되찾았다.
다시 상류층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신당 주차장에는 고급 차가 즐비했다. 손님들은 만족하고 두둑한 복채를 아낌없이 투척하고 떠났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 맞물려 돌아갔다.
은주의 고객들은 부유했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고단한 삶을 살고 있었다. 계층 막론하고 누구나 미래는 걱정되기 마련이었다. 살기는 각박해지고 현대인의 우울증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 심리치료와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하겠지만, 은주의 신당에도 예약자들이 줄을 이었다.
요즘 시대에 누가 미신을 믿겠냐 할 수 있겠지만, 재벌 기업의 총수가 임원 면접장에 점쟁이를 대동하고 참석했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점은 의외로 고관대작들 사이에서 더 성행했다. 점의 수요가 늘어갈수록 은주의 사업도 번창했다. 그렇게 따사로운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나 재앙은 소리 소문 없이 다가왔다.
이른바 'A동 세 모녀 사건'이 은주를 덮쳤다. 안락했던 나날이 순식간에 감옥행으로 이어졌다.
단란했던 한 가정이 누군가의 입놀림으로 파탄에 이르렀다.
은주는 어떻게든 진실은 밝혀질 것이고 일이 바로 잡힐 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갈수록 뒤틀려갔다.
영국은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 계남도 도와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주 고객이었던 지체 높으신 분들도 사건 이후 발길을 뚝 끊어버렸다. 이후 계남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은주는 모든 희망을 잃었다.
영국은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은주의 구명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괄목할만한 성과는 하나도 얻지 못했다. 그마저도 전 재산을 다 털어먹고 그만두었다.
영국의 면회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그녀가 수감 된 지 3년이 지나서는 그 누구도 면회를 가지 않았다.
간간이 오던 편지도 끊겼다.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