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은 비교적 행복했다. 금전적 여유가 없다는 것만 빼면 완벽에 가까웠다.
두 사람은 결코 사치를 부리는 타입이 아니었다.
단지 아이가 태어났고, 들어가는 돈이 많아졌을 뿐이었다.
꼭 필요할 때만 지출을 했다. 허리띠를 졸라 매었지만, 영국의 벌이로는 가정을 꾸리기 빠듯했다.
은주도 다시 일자리를 구하러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우선 아이를 돌보아야 했다. 때문에, 전업으로 매여있는 일은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시간제 근무자를 구하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루하루 한숨만 늘어갔다. 영국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은주는 그가 어떻게 돈을 벌어오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자체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따라서 영국의 급여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고려하지도 않았다.
벌이가 형편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꼴밖에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둘째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두 사람은 하늘의 응답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뻐했다. 세상 그 무엇보다 값지고 행복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소식은 곧 그들의 수입에 비해 아이가 많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영국은 진취적인 남자였다. 영국 자신도 현재의 벌이로는 아이 둘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매제에게 부탁하여 어렵게 택시 기사로 이직을 했다.
당장 드라마틱하게 수입이 늘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근무시간이 비약적으로 줄었고 시간 선택도 유연했다.
영국은 최대한 시간을 쪼개어 육아에 매진했다.
그렇지만 쪼들리는 형편은 여전했다.
어느 날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영국은 근무를 나갔고 아기는 낮잠을 자고 있을 때였다.
"누구세요?"
똑. 똑. 똑.
응답이 없었다. 은주는 아기가 깰까 싶어 황급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은주는 놀라서 뒤로 넘어갈 뻔했다.
그곳에 계남이 서 있었다.
"고작 이렇게 살고 있었냐?"
빈정거리는 말투였다.
은주는 덤덤하게 답했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어요?"
"됐고, 얘기나 하자."
문간으로 들어오는 계남을 몸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싫어요! 어서 나가세요!"
"잠깐이면 된다."
"나가시라고요!"
"얘가? 여기서 소란 피우면 누가 손해지?"
벌써 소란을 듣고 주변 이웃들이 창문 너머로 지켜보고 있었다. 은주도 어쩔 수 없음을 인지했다.
"딱 5분이에요."
계남은 대답 없이 은주의 손을 털어내고 집으로 들어갔다.
계남은 방 한구석에 곤히 잠들어 있는 아기를 발견하고 표정이 급격히 밝아졌다.
"하이고 예뻐라."
"잠들었으니까, 건들지 마세요. 깨면 울거든요."
"그건, 지 애미랑 똑같네."
"용건만 빨리 말하세요."
"내, 니 사정은 익히 다 들었다. 둘째까지 들어섰다지? 또 집은 이 꼴이 뭐냐? 당장 집으로 가자."
"싫어요. 안 가요. 여기가 내 집이에요. 거기는 앞으로도 갈 일 없을 거예요. 할 말 다 하셨으면 그만 가세요."
"계속 이렇게 살 셈이냐? 돈이 있어야 애를 키우든지 할 것 아니냐?"
"왜요? 엄마가 제 돈이라도 주시려구요?"
"니 돈? 니 돈이 어디 있는데?"
"그동안 저를 그렇게 착취하면서 모은 돈이요. 그게 제 돈이 아니면 누구 돈이죠?"
"얘가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라고 했다. 그게 왜 니 돈이냐? 내가 모시는 신, 니가 가로채 간 건 생각 안 해? 그리고 내가 영매 수업을 해준 건? 니가 모르나 본데 나한테 배워 갈려고 수억씩 들고 오는 사람 널렸어."
"흥. 그럼 그분들하고 볼일 보세요."
계남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었다.
"넌 나한테 수업료를 낸 거야. 그리고 내 신을 가져갔기 때문에 니가 가진 능력은 내 몫이란 말이다."
"누가 이딴 능력 달라고 했나요? 그럼 가져가세요."
"나도 그러고 싶다. 근데 그게 가능할 성싶냐?"
"됐어요. 이제 볼일 다 봤으면 가세요."
계남은 자신을 꼭 빼닮은 은주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회유책으로 먹히지 않았다. 따라서 차선책을 시도할 차례였다.
"좋다. 그럼 동업을 제안하마."
"동업이요?"
은주가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고 계남은 얼른 자신의 계획을 풀었다.
"니가 일자리를 구하러 다닌다는 것도 알고 있다. 식구가 늘었으니 돈이 급하겠지. 그런데 니가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앞으로 족히 백 년이 지나도 없을 것이야. 내 신빨은 떨어졌지만, 그거는 확실하다. 내가 그 방면으로도 손을 쓸 수 있다는 걸 명심해. 너는 전처럼 내가 구해 오는 손님의 점을 친다. 그건 다를 게 없어. 대신 이제 급료를 지불한다. 어때?"
은주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한참을 뜸을 들이고 입을 열었다.
"수입의 절반을 주세요. 당일 지급으로요. 그리고 근무시간은 제가 정해요. 점은 사전 예약된 사람만 볼 거구요. 신당도 새로 구하세요. 거긴 가기 싫으니까요. 그리고 내부 인테리어는 제 의견을 반영하시구요."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