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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명찰 32

by 마르코니

"3508번 석방!"

순간 감방에서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수감자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교도관들도 내심 기뻤기 때문에 소란은 눈 감아 주기로 했다.

중년이 된 은주가 담담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원시 사회에서는 샤먼이 정신적 지주였다.

은주는 20년의 세월 동안 감방계의 샤먼으로 자리매김했다.

수감자들에게 정신적 지주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결코 사람 위에 군림하는 법 없이 모두에게 친절했다.

그리고 잘 베풀었다. 수감자들은 자연스럽게 은주에게 흡수되었다.


감방에서 신장개업한 은주의 신점 사업은 바깥세상에까지 입소문이 파다했다. 바야흐로 시내버스 손잡이에 전화 운세 상담 광고판이 붙은 시대였다.

은주도 전화와 서신으로 점을 봐주는 통신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물론 뒤를 봐주는 직원들에게 짭짤한 수수료를 지불했다.

그들은 수수료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불법에 가담하고 있다는 의식을 희석시켰다. 어쨌든 그 덕택에 교도관들도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졌다.

그 무렵 고객들은 다시 상류층 손님들로 형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은주는 이만한 내수경제 진작도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사회적 위상에 도취해 우쭐하기도 했다.

교도관들은 은주가 나가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긴 세월을 교류하며 인간적인 연대감도 생겼다. 때문에 진심으로 은주의 미래를 빌어 줄 수 있었다.

은주는 석방 수속을 밟고 감방 동료들에게 영치금 최대한도 금액인 3백만 원을 각각 입금했다.

영미에게는 눈물의 작별이 전부였다. 영미는 동업자였다. 따라서 그녀 역시 숨겨둔 자금이 족히 20억은 됐다. 영미에게 돈을 주고 가는 것은 그다지 의미 없는 일이었다.


감방 밖 세상은 너무나 따사로웠다.

변한 게 하나도 없어 보였지만, 어떤 면으로는 너무 생소했다.

각졌던 자동차가 동글동글해졌고, 모두가 핸드폰을 쳐다보며 길을 걷고 있었다.


입을 것, 살 것, 지낼 곳 등 해결해야 할 일이 산적했다. 그러나 은주에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다.

두 딸을 만나는 것이다.

은주는 출소하기 전 최 부장을 통해 미리 딸아이들의 소재지를 파악해두었다.(은주의 옥바라지 전담 직원 최 대리는 승진을 거듭하여 부장 직함에 올랐다)

불쑥 찾아가기 전에 전화부터 해보기로 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공중전화 부스가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지나가는 택시를 겨우 잡아타고 말했다.


"서울로 가주세요."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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