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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니 Dec 11. 2022

마케터 38

흑우읍제

 "뭐? 엄마가 무당이라고?"

 은주는 자매에게 숨겨왔던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풀었다.

 계남의 이야기도 했다. 모든 이야기를 마친 뒤 고개를 숙이고 두 딸의 선고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니까 엄마가 회장님들, 아니 사모님들 전속 점쟁이였다는 말이지?"

 민지는 호기심이 고조되는 모양이었다. 반면 민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나보고 앱을 만들라고?"

 "그래, 언니 서울대 컴공 다니잖아."

 "모바일은 내 전공이 아니야. 너가 경영학과라고 회계에 능한 게 아닌 것처럼. 너 마케팅이 전공이라며."

 "그럼 언니 전공은 뭔데?"

 "나? 방법론."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프로그램을 만들 때 쓰는 설계도를 짜는 분야야."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도 설계도가 필요해?"

 "이론적으로는 설계도 없이 집도 지을 수 있어. 그렇지만 설계도가 있으면 장점이 많아. 도면을 보고 누구나 따라 지을 수 있잖아.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어. 프로그램도 똑같아."

 "그럼 언니는 스마트폰 앱은 못 만들어?"

 "…흐음. 만들 수야 있겠지만…. 퀄리티는 장담 못 해. 나 자바는 맹탕이거든."

 "자바? 그건 또 뭔데? 쉽게 좀 말해 봐."

 "자바(JAVA)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수많은 언어 중에 하나야. 사람 언어로 치면 영어. 그러니까 세계 공용어지. 모바일은 이걸로 앱을 만들어. 파이썬이라고 요즘 유행하는 랭귀지가 있긴 한데, 아직 많이 무거워."

 "무겁다니?"

 민지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파이선은 영어랑 비슷해서 사용하기 쉬워. 그런데 알고 보면 영어를 다시 프로그램 언어로 바꿔주는 번역기가 화면 뒤에서 돌아가고 있는 거야. 컴퓨터의 리소스를 많이 잡아먹게 되지. 그러니까 왕이 '물을 대령하라.'라고 예사로 말하지만, '예, 폐하!'하고 저 끄트머리에서 물을 길어 오는 사람, 컵을 가져오는 사람, 컵에 물을 따라서 갖다주는 사람 등등이 뒤에서 열나게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사용하기 쉬운 대신 리소스를 많이 잡아먹는 단점이 있어. 미래에는 그 정도 리소스쯤은 체감도 안 될 만큼 컴퓨터가 빨라지는 시대가 오겠지. 그때가 되면 파이썬이 공용어가 될지도 몰라. 아니, 그때면 더 좋은 언어가 나올지도 모르지."

 은주와 민지는 괴로운 듯 우거지상을 쓰고 있었다.

 민서는 신이 난 듯 말을 이었다.

 "그래. 이제는 플랫폼 사업의 시대야."

 "플랫폼? 그게 뭐냐? 나는 살풀이 닷컴을 얘기하는 거다."

 "플랫폼은 기차역의 승강장을 뜻하는 영어 단어야. 인터넷 화면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여러 가지를 화면으로 연결해 놓는 게 꼭 기차역 같다는 은유적인 표현이야. 그러니까 살풀이 닷컴이 플랫폼이라고."

 민서의 말에 은주는 과거에 계남이 버스터미널에서 자리 깔고 사업을 시작했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돌고 돌아. 결국, 다시 길바닥에서 시작하는군…."


 그리하여 민서는 학교 강의를 듣는 시간 이외에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제작법에 관한 책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강의도 들었다. 그래도 막히는 부분은 학교 선배들의 도움을 받았다.

 방법론 전공자답게 모든 발자취를 다이어그램으로 도식화해서 기록했다. 뭐를 누르면 뭐로 이어지고, Yes, No 선택에 따라 사용자에게 송출되는 화면의 변화를 세세하게 설계도에 남겼다. 컴퓨터에 까막눈인 은주도 대략적인 흐름을 이해할 정도로 단순했다.


 3개월 후 살풀이 닷컴 애플리케이션이 완성되었다.

 "…오, 그럴싸한데?"

 민지가 감탄했다.

 "아직은 미완성이야. 우선 임시 베타서비스로 해보자."

 "이대로도 좋은데?"

 "분명 결함이 있을 거야. 아직 검증되지 않았으니까. 수시로 수정해야 해."

 "그럼 좀 더 손을 보고하면 되지 않을까?"

 "내 눈에 발견된 결점은 벌써 다 해결했지. 항상 안 보이는 게 문제야. 우선 써보자. 말썽이 생기면 고치면 돼."

 "괜찮을까?"

 "이것도 하나의 전략이야. 애자일 방법론이라고 일명 '일단 만들고 보자식'."

 "그래? 그거 마음에 드는데. 알겠어. 그럼 내가 커뮤니티 게시판에 광고를 좀 할게."

 "뭐야? 민지 너도 '일단 해 보자식'이 따로 없네."


 민서의 착각이었다. 민지는 나름 염두에 둔 곳이 있었다. 포털사이트의 이별 상담 카페였다. 실연을 겪은 회원들이 자신의 눈물겨운 사연을 공유하는 곳이었다.

 민지는 게시된 글에 댓글을 달았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착한아이 님 정말 마음 아픈 이별이네요.ㅠㅠ 저도 쓰레기 같은 자식 만나서 한동안 고생했는데 정말 힘들었어요ㅠ 살풀이 닷컴에서 무료상담 받고 치유 받았어요 흙흙..원장님 최고乃


↳ 김삿갓 님 그 여자분 바람피우는 게 확실해요!!ㅠㅠ 당장 헤어지심이ㅠ 못 잊어서 힘드시면 살풀이 닷컴 상담받아 보세요. 지금 무료 이벤트 기간이예욧!


 이어 민지는 암 환자 환우 카페에도 가입해서 비슷한 작업을 했다.


↳ 프란시스코 님 저도 폐암 3-B기 였는데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살을 풀었더니.. 암이 나았아요... 살풀이 닷컴에서 무료 이벤트 중이라고 해서 링크 남기고 가요...ㅠ 힘내세요 야듀


 민지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사별한 사람들의 모임, '사사모'에 가입해 댓글 공작을 펼쳤다.


↳ ililiill 님 정말 마음 아프시겠어요ㅠㅠ 저도 4년 전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뜬 남편이 그리워서 밤마다 눈물로 베개를 적시곤 했었죠,,, 이제 '살풀이 닷컴'을 알게 되고 슬픔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났어요. 대표님께서 너무 용하셔서 남편의 영을 잘 불러내시거든요,,, 도움이 될까 싶어 링크 남기고 가요,,,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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