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을 사랑하는 것
사뿐히 발소리조차 내지 않는 생명체, 뭐든 상관없다는 듯 유체처럼 늘어져 있지만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묘한 존재. 고양이가 있는 곳은 공기부터 다르다. 어딘가 비밀스럽고 나른한 분위기가 감돈다. 그 보송한 털을 쓰다듬지 않아도, 그저 곁에 두는 것만으로 감정이 고양되는 느낌이다.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는 집, 소음 가득한 도심 한복판에서 생활하는 상황에서, 고양이 곁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나에게 고요함을 가져다주었다. 그 마력에 빠져, 고양이가 있는 카페를 자주 찾아가곤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몇 년 전의 일이다. 요즘은 영 발길이 뜸하다.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바뀐 건 아니고, 이젠 그곳이 아니어도 고요함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라 그렇다. 나는 고양이라는 생물 자체보다는, 그것이 가져다주는 나른함이나 편안함 때문에 고양이를 찾았던 것이다.
루틴을 가진 생활을 하는 사람을 우러러본 적이 있다. 규칙성과 차분함, 거기서 오는 무게감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 사람을 갖고 싶었다. 그런 사람을 곁에 두면 마음이 안정적이고 편안할 것 같았다. 자주 그 사람이 무엇을 할까 궁금해했다. 알고 나니 궁금해할 필요도 없는 뻔한 일상을 발견하고 헛웃음이 나기도 했고, 그 꾸준함에 마음이 더 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나와 함께하는 모습은 영 상상되지 않았다. 고양이를 옆에 두고 싶어 하는 것과 같다. 고양이가 있는 공간의 분위기를 사랑하지만, 실제로 내가 집사가 되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인 것이 뻔했다. 그 사람을 그만 궁금해해야 하는 때가 왔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여닫히는 것이 아니라서. 한번 눈에 들어온 것은 어떻게 해서든 가져야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을 가질 수 있는 길은 요원했다. 다른 사람이 그를 대신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규칙성과 차분함, 무게감을 가지기로 했다. 네가 가진 것을 나도 갖게 되면, 이제 더 이상 너를 사랑할 필요가 없으니까. 나의 루틴을 만들었다. 운동, 독서, 영화, 청소, 요리. 그 사람을 향해 쌓아 둔 애정은, 전에 없던 습관과 규칙성을 갖게 하는 동력원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그 사람의 곁을 차지하지 않고도, 내가 원했던 그의 모습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는 결핍을 사랑한다. ”나 “에게는 없는 것을 가진 “너”를 원하게 된다. 원하면, 가져야겠다. 그렇게 “너”를 가지고, 마침내 네가 가진 것을 ”나 “도 갖게 되면, 이제 더 이상은 “너”를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 그걸 가진 ”나 “를 사랑하는 걸로 족하니까. 그런데 만약 ”너” 없이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떨까? 처음부터 “너”는 필요 없다. 홀로 완전한 존재는 없다고 하지만, 누군가를 원하기 전에, 누군가에게 곁을 주기 전에, 생각해 보자. 혼자서도 완성할 수 있는 것을, 사랑이라는 감정을 빌미로 포기한 것은 아닌지. ”나 “를 사랑할 기회를 ”너“를 사랑할 이유로 바꿔치기한 것은 아닌지. 물론, 그것도 그런대로 봐줄 만한 드라마가 되겠지만.
- 원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갖고야 마는, M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