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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레MARE May 19. 2023

다리 하나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을까

유령이 될 운명을 피하기 위하여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나무를 지나쳐가고, 뙤약볕에 땀이 달궈지고, 빠르게 뛰는 심장을 쥐고 공기를 가르는 느낌. 힘든 일이 있으면 달렸다. 답을 구할 때까지, 벌을 받고 있는 것처럼 달렸다. 습관이 무섭다고 했던가, 요즘은 별 일이 없어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뛰어 본다. 그래서 달리지 못하는 삶은 어떨까, 상상하면 꽤나 답답하겠거니 싶다.


 다리를 잃은 무용수의 붕괴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책을 덮은 후, 내용에 대한 감상보다는 다리가 하나 없으면 나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진하게 남았다. 몸이라는 것의 본질은 무엇인가. 주체성과 실재감이다.  내 뜻대로, 물리적으로 나와 사물을 이동하고 조작할 수 있는 것이 몸이다. 그리고 내가 실재한다는 것을 몸의 감각을 통해 느낀다. 시각, 후각, 촉각, 미각, 청각을 통해 내가 어떤 세상에 실재하는가를 확신할 수 있다. 따라서, 몸은 내 의지대로 움직여야 하며, 감각을 느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제 기능을 한다.


 한쪽 다리를 잃은 몸은 아쉽다. 휠체어나 의족과 같은 보조 수단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 빠르게 이동할 수도 없고, 자전거나 자동차 같은 이동수단을 편히 조작할 수도 없다.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해변의 모래알들도 반만 느낄 수 있으리라. 하지만 다리가 없어도 나는 여전히 농구공을 던져 넣을 수 있을 것이고, 글도 쓰고 콧노래도 흥얼거리겠지. 조금 느리고 조금 무딜지라도, 나는 주체성과 실재감을 누리며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신체의 일부를 잃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래도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므로.


 하지만 몸이 완전히 마비된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전혀 움직일 수 없다거나, 어떤 감각도 느낄 수도 없는 상태가 된다면 그것은 몸이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유령이 된 기분일 것이다.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는 유령. 하지만 여전히 머리를 스치는 바닷바람을 떠올릴 수 있고, 얼음의 차가운 감촉을 기억할 수 있다면? 마비된 몸으로 침상에 누워 미친 듯 달렸던 나를, 그날의 햇살, 바람, 풍경을 떠올리는 것이다. 전진은 하지 못하더라도, 과거에 잠겨 있을 수는 있다. 머릿속으로 경험을 재생할 수 있다면, 이미 잃은 것들도 여전히 내 것이다. 몸은 내 의지대로 움직이며 김각을 느낄 수 있어야 하지만, 그 기능을 잃더라도 과거에 제대로 작동했던 기억이 남아있는 한, 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몸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나 주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오늘, 반드시 움직이고 땀 흘려야 한다.  몸을 움직이는 일은 내가 실재하는 주체적인 존재라는 확신을 준다. 우리는 죽어가는 존재로서, 몸에 대한 기억을 확실히 해야 한다. 어느 날 다리 한쪽을 잃거나, 노화된 몸이 나의 주체성과 실재감을 녹슬게 하기 전에.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달린다. 모든 오감으로 세상을 느끼고 그것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달린다.


- 유령이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달리는 M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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