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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짠짠이아빠 Nov 24. 2019

조리원이 천국이라면서요

그렇더군요

짠짠이 출산 후 4박 5일간의 입원 기간이 끝나고 바로 조리원으로 들어갔다. 병원에서 아내 몸 회복하고 수유/유축에 적응하고 면회 시간마다 짠짠이 보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후루룩 흘러 퇴원. 우린 일찌감치 조리원을 가기로 결정하고 2주 예약을 해뒀는데 막상 병원을 떠나게 되니 조리원 안 가기로 했으면 어쩔 뻔했나 싶더라. 아직 우리는 육아는 고사하고 본인들 건사하기도 벅찬 상황이었으니. 

조리원 예약은 분만할 병원으로 옮기는 시기에 알아봤다. 산부인과 병원 근처에는 조리원이 몇 군데 있는데 우리도 근처 조리원으로 4군데를 가보고 상담을 받았다. 우리의 조리원 선택 기준은,

1. 병원에서 도보 5분 이내 거리
2. 신생아 관리가 우수할 것
3. 생활환경(룸 컨디션)이 좋을 것

조리원 상담을 받아보니 일종의 완전경쟁시장이라 조리원들이 서로의 장단점을 다 알고 있고(가격까지도) 본원의 장점을 주로 어필하는 식이었다. 위생적인 신생아 관리와 모유수유 교육은 다들 기본이고 가성비가 좋다, 방에 창문이 있다, 병원이랑 연계가 되어 있다, 리모델링해서 시설이 좋다, 프로그램이 좋다 등 각기 다른 여러 장점이 있어서 취향껏 고르면 되었다. 상담받고 인터넷 후기들을 보니 선택에 필요한 정보는 충분했다. 우리가 예약한 조리원은,

1. 병원에서 도보 3분 거리 상가 4층
2. 신생아 정원이 14명
3. 방이 넓고 쾌적함
4. 수유실이 없고 항상 방에서 수유
5. 내부 시설, 프로그램은 평범

신생아 정원이 14명이라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고 방도 가장 마음에 들었다. 단체 수유실이 아니라 방에서 수유하는 것도 아내에겐 큰 장점. 부수적인 것들은 패스하고 핵심에만 집중한 컨셉. 그래서인지 가장 비쌌다(...). 비싼 게 항상 좋은 건 아니지만 좋은 건 확실히 비싸다는 걸 느끼며. 그래도 건강과 시간을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조리원으로 가즈아!


퇴원 수속을 하고 병원 문을 나서는 시점부터 막막했다. 아기를 어떻게 데리고 가야 하지? 들고 가도 되나? 차를 태워야 하나? 차에는 어떻게 넣지? 어떻게 안아야 안전하지? 이제 겨우 5일이 된 짠짠이는 너무 작고 손만 잘못 대도 부서질 것 같았다. 병원에서 모자동실을 안 했기에 퇴원하면서 나가는 게 처음 안아보는 거라서 정말 손이 덜덜 떨리더라. 잠시 우왕좌왕하다 아내와 장모님이 짠짠이를 포대기에 안고 조리원까지 걸어가고 나는 짐들을 차에 다 챙겨서 이동하기로. 200m도 안 되는 거리를 가는 게 이 난리라니.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다행히도 모두가 조리원에 무사히 도착했고 원장님과 직원들의 손길 덕에 금방 자리를 잡았다. 신생아실 바로 앞 방이 마침 비어있어서 우리가 차지! 병원은 환자가 많고 인력은 모자라서 충분히 케어를 받지 못하는 느낌이었는데 조리원은 모두 친절하고 활기차서 기분도 좋고 마음이 놓였다. 2주 간의 조리원 라이프 시작!


짠짠아 이제 시작이다!


조리원은 모유수유 사관학교라더니 정말 그랬다. 아내와 아기가 먹고 쉬는 기본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모유수유 교육에 초점이 맞춰진 조리원 생활. 다행히 원장님이 아주 전문적인 데다가 모유수유가 서투른 산모에게도 긍정적으로 용기를 주시는 분이었다. 입을 어디에 어떻게 맞춰서 물려야 하는지 영 어려웠는데 신기하게도 원장님이 와서 탁 맞춰주면 짠짠이가 신나게 젖을 먹었다. 병원에서는 주로 젖병으로 분유를 먹었으니 짠짠이가 딱히 열심히 빨지 않아도 수월하게 먹었지만 모유를 빨아먹으려니까 이 녀석도 힘들었겠지. 우리도 처음이지만 짠짠이야말로 세상 모든 게 처음이다. 초짜들끼리 모여서 뭘 하려면 엉망진창에 멘붕이 되기 십상인데 조리원에는 확실한 조력자가 있으니 덜 헤매고 길을 찾아갈 수 있었다. 수십 가지 각도로 젖 물리는 시도를 하던 때가 언제였냐는 듯이, 어느새 아내와 짠짠이가 서로 합을 잘 맞춰서 편히 수유를 하게 되었다. 수유가 수월해지니 모유 양도 자연스럽게 늘어서 조리원 퇴소할 즈음에는 분유 없이 완모로 짠짠이를 먹이게 되었다. 완모를 향해 의지를 불태운 아내에게 박수! 

 

맘마 먹은 후에 트림 시키는 건 내 담당! 트림 마스터가 되었읍니다.


조리원 생활 동안 가장 중요한 건 아내 몸을 회복하고 모유 수유에 적응하는 것이지만 그 외에도 할 일이 많았다. 첫 번째는 짠짠이를 기다린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 특히 손자를 목이 빠져라고 기다린 양가 부모님과 가족들이 1순위였다. 일반적으로 조리원 내부에는 아기, 엄마, 아빠 외에는 출입이 불가이므로 응접실에서 창밖으로 보는 수준이었지만 가족들은 그것만 해도 함박웃음. 대신 신생아실 카메라와 연결된 앱을 통해 24시간 짠짠이를 볼 수 있었고 틈틈이 사진을 찍어다 날랐다. 그리고 출산을 응원하고 짠짠이 탄생을 축하해준 많은 지인들에게도 안부 연락을 했다. 짠짠이 사진을 보내고 인사를 전하는 게 어찌나 신이 나던지. 아내랑 둘이서 핸드폰만 붙잡고 있어도 시간은 금방 지나더라.

조리원을 퇴소하기 전에 집을 짠짠이 모드로 전환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여태껏 선물 받은 물건들 정리하고 추가로 필요한 물품 주문하고, 우리 집이 이제 짠짠이가 사는 곳으로 변해갔다. 조리원에 있는 아내가 목록 정리해서 물품 배송시켜 놓으면 퇴근길에 집에 들러서 정리하는 게 내 역할. 우리 침대 옆에 짠짠이 침대를 붙여놓으니 확 실감이 났다. 이제 여기서 셋이 산다. 

 

나랑 똑같이 생긴 우리 아들. 두 번째 발가락이 가장 긴 것도 똑같다.


짠짠이는 조리원에서 아침 알람 겸 진상남으로 통했다. 어찌나 울음소리가 큰지, 아침이면 온 조리원 사람들을 다 깨워서 다들 아침 알람이라고 했다. 다른 아기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큰 성량과 높은 음역을 자랑한 우리 아들. 우는 것도 얌전히 "으앙으앙" 이런 게 아니라 높은 톤으로 "으웨에에엥~~!!!" 고성을 질러대니. 이게 참 민폐스러워서 송구하기도 하지만 왠지 뿌듯하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다. 내 아이가 잘 먹고, 잘 크고, 힘이 넘치고, 건강하다는 게 괜히 기분이 좋더라.  

조리원에서의 2주는 순식간에 지나갔고 어느새 퇴소일이 다가왔다. 기저귀 가는 법, 씻기는 법을 배우고 동영상도 찍어 놓으니 그야말로 교육 프로그램은 끝. 이제 실전이다. 남이 해주는 밥, 내놓으면 곱게 정리해서 다음날 아침에 오는 세탁 서비스, 원장님의 모유수유 원포인트 레슨, 새벽 수유 / 기저귀 갈기 / 씻기기 대행 서비스까지 이 모든 게 안녕. 정말 떠나기 싫고도 두려운 마음과 함께 짐과 짠짠이를 챙겨 집으로 향했다. 땀이 뻘뻘 나는 20분 거리를 운전하고 나니 집에 닿았다. 우리 집이다. 셋이서 살 우리 집.


조리원에서의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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