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21일 안에 모두 준비하시오
2021년 3월은 우리 가족에 있어 역사적인 달이었다. 어린이집 입소, 이사, 복직. 이 세 가지가 한 달 안에(실제로는 21일...) 몰아서 일어났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 우리가 어떻게 버텼는지 신기하다.
사실 원래 계획은 이렇게 빡빡하지 않았다. 아내 복직은 2021년 3월로 정해져 있었고, 그에 맞춰 어린이집 입소도 3월로 계획했다. 이사는... 음, 적어도 이렇게 갑작스러운 이사는 계획에 없었다.
아내 직장에 어린이집이 있어서 당연히 거기로 보내려고 했다. 직장 어린이집이면 출퇴근도 편하고 시설도 좋다고 소문이 자자했으니까.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는다.
"떨어졌어."
"뭐가?"
"직장 어린이집."
아내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쟁이 치열해서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집 근처 어린이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인덕원 근처에도 괜찮은 어린이집들이 있으니 뭐 어떻게 되겠지 싶었고 이사 안 해도 되니 속 편하다고 정신승리.
그런데 2021년 2월 말, 갑자기 아내 직장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빈자리가 났는데 오실 건가요?"
갑작스러운 연락에 당황했다. 이미 집 근처 어린이집 입소 준비를 다 해놨는데. 하지만 고민해 보니 직장 어린이집이 확실히 장점이 많았다. 시설 좋고, 출퇴근과 등하원을 같이 하니 편리해서 직원들 만족도가 높다고. 고민 끝에 직장 어린이집으로 가기로 결정. 그렇게 우리의 인생 계획이 수정되었다.
당초: 인덕원 거주, 직장 가까운 내가 아들 등하원, 아내는 서울 을지로로 출퇴근
(급)변경: 서울 거주, 아내가 출퇴근하며 등하원, 나는 인덕원으로 출퇴근
그렇게 갑작스럽게 이사가 결정되었다. 아내 복직까지 3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미쳤나? 3주 만에 이사를?"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내 직장 근처로 이사를 가야 등하원이 가능했다. 그래서 일주일간 거의 매일 퇴근 후 저녁에 서울로 집 보러 다녔다. 문제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부동산 투어를 다녀야 한다는 것. 2살 아이가 어디서든 얌전히 있을 리가 없다. 매물 보는 동안 아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우리는 아들 쫓아다니느라 집 구경은 제대로 못 하고. 부동산 중개사분도 처음에는 귀엽다고 하시더니 나중에는 살짝 지친 기색이(...).
여러 곳을 알아본 결과, 중구 약수동으로 결정했다. 을지로에서 가깝고, 지하철 접근성도 좋고, 근처에 공원도 있고, 무엇보다 1층이라 아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집. 아들이 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9층인 인덕원 집에서 가끔 층간소음 민원을 받는 처지라 이 부분이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인덕원 집으로 이사 올 때는 나름 충분한 기간 동안 꼼꼼히 알아보고 왔는데, 이번에는 시간이 없었다. 예산에 맞는 30평대 1층 집으로 바로 결정. 그래도 나중에 뒤돌아보니 정말 잘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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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이사 날짜를 잡았다. 아내 복직 하루 전. 정말 빡빡한 스케줄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전세 계약 갱신 하기로 한 집주인에게 사정 설명하고 이사 가겠다고 하면서 계약 정리하고, 이사업체 조사해서 예약하고, 이삿짐 정리하고, 이사를 2주 앞두고 이게 되나 싶었는데 해야 하니까 되더라(...).
이사 준비로 정신없는 와중에 2021년 3월 2일이 되었다. 아들의 첫 어린이집 등원날. 이사 전까지 2주 동안은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인덕원에서 서울 을지로 직장 어린이집까지 1시간 넘는 거리를 왕복했다. 아들이 잘 적응할지 걱정이 많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우리 모두 적응하는 수밖에. 약 22개월간 서로 24시간 붙어있었던 엄마와 아들이 잠시 떨어지기 연습 시작.
어린이집에 입소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어느 날부터 하루 종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아니고 첫날은 1시간, 며칠 후부터는 2시간, 좀 지나면 반나절, 이렇게 점점 어린이집 생활시간을 늘려가는 방식으로 적응을 한다. 짧으면 1개월, 좀 오래 걸리면 2개월 정도. 이 시기는 아들이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아내가 아들을 기관에 놓고 떨어지는 걸 적응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초기에는 역시 아들이 엄마가 간다니까 울어서 아내도 마음이 힘들었다고. 하지만 복직이 얼마 안 남았고, 3월 16일부터는 하루 종일 어린이집 생활을 해야 하니 2주 만에 적응을 해야 했고 시켜야 했다. 그렇게 이사 준비, 어린이집 입소, 복직 준비까지 엄청나게 바쁜 3월의 2주가 지나갔다.
3월 15일 이사 당일, 온 가족이 총동원되었다. 장인어른, 장모님께서 미리 올라오시고 열흘 동안 같이 지내시면서 이것저것 도와주셨고 처제 부부도 이삿날 와서 도와주었다. 짐 정리하고, 아들 돌보고, 이사업체 응대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가족들의 도움 덕분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매번 느끼지만 이사는 준비 과정이 힘들지 막상 이삿날은 힘든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후루룩 지나가는 거 같다.
이사 다음날이 바로 아내 복직일이었다. 거의 2년 만의 직장 복귀. 아내는 새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2년 동안 일머리가 녹슬진 않았을지, 회사와 동료들은 어떻게 변했을지, 어느 팀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마치 신입사원이 된 마냥 긴장된 모습. 다행히 출퇴근은 정말 좋은 환경. 아들을 차에 태워 15분이면 사무실 도착, 아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바로 출근하면 금방이었다.
그렇게 2021년 3월, 우리 가족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아들: 어린이집 생활 시작
아내: 20개월 만의 복직
나: 1시간 출퇴근 시작
우리 가족: 맞벌이 육아의 시작
한 달 동안 정말 정신없이 보냈지만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잘한 선택이었다. 아들은 어린이집에서 친구들도 사귀고 많이 성장했고, 아내는 직장생활에 다시 적응했고, 우리는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진짜 맞벌이 육아가 시작되었다. 두 사람의 직장 생활과 아들 육아를 간신히 끼워 맞추는 매일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