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걸린 사람이 혼자 봅니다
2022년은 코로나가 본격 확산되던 시기였다. 매일 뉴스와 포털사이트에서 확진자 숫자를 생중계하고, 4인 집합금지, 확진자 7일 격리 등 엄격한 방역수칙이 이뤄지던 시절. 주변 지인들 중에서도 확진자가 나와서 격리 생활을 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아, 누구네도 확진됐대."
"요즘 정말 많이 걸리네."
남의 일 같던 코로나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엄격한 방역 수칙과 마스크 생활은 기본이었다. 특히 분당 프로젝트 공사 현장은 정말 삼엄했다.
현장 작업자 모두 마스크 착용 의무
함바 식당에 간이 칸막이 설치
아침 체조 시간에 코로나 현황 뉴스 공유
아침/점심마다 전 근로자 체온 측정
확진 의심자 발생 시 해당 팀 전부 PCR 검사
확진자 발생 시 당일 공사 중단 및 함바 식당 폐쇄
지금 생각해 보면 무시무시한 방역수칙과 함께 일을 했다. 첫 확진자가 발생하고 함바 식당에서 음식을 싹 다 버리면서 울던 함바 식당 사장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그런 엄격한 현장에서 일하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우리 집은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과 '언젠가 우리 집도 올 텐데' 하는 걱정이 공존했다.
2022년 7월 어느 날 아침, 일어나니 목이 많이 아프고 감기 기운이 있었다. 열을 재보니 열은 아직 없어서 일단 출근. 오전에 꼭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컨디션이 나빠졌다.
'이거 혹시 코로나인가?'
그래서 오전에 일을 마무리하고 점심 식사도 안 하고 바로 PCR 검사를 받으러 갔다. 결과는 역시나 양성.
"확진자입니다. 격리 수칙이랑 약 받아 가세요."
의료진의 말에 머리가 하얘졌다. 드디어 우리 집에도 왔구나. 바로 회사와 동료들에게 연락하고 7일 격리 휴가를 신청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혼자 살면 자취방에서 격리하면 되고, 부부가 살더라도 적당히 격리하고 각자도생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이가 있는 집은 난감하다. 육아 전력 1인을 잃기 때문. 그래서 애 키우는 집은 한 명이 확진되면 전 가족이 자연스럽게 확진되어 다 같이 격리시설로 가는 경우가 많았고, 부모가 모두 확진되면 아이가 비감염자여도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격리시설에 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4인 가족이 1주일 간격으로 확진되어 거의 한 달을 격리시설에서 지냈다는 전설마저 구전되던 시절.
내가 혼자 확진된 시점에서 결정할 것은 두 가지였다.
나만 신속히 격리해서 아내와 아들 감염을 최대한 방지할 것인가
다 같이 격리시설을 갈 각오를 하고 집에서 같이 지낼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든 아내의 육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결정은 최대주주님의 몫이었다.
"아들 감염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게 우선이야. 당신이 외부 격리시설로 가고 나는 아들이랑 둘이 지낼게."
아내는 단호했다. 혹시나 하는 감염 가능성 때문에 양가 부모님 도움도 받지 않기로. 오로지 혼자서 회사 다니며 독박 육아를 하겠다는 결정이었다.
"미안해. 여보."
"괜찮아. 7일만 버티면 돼."
하지만 아내의 목소리에서 각오와 걱정이 동시에 느껴졌다.
방침을 결정하고 바로 격리 준비에 들어갔다. 조사해 보니 자가 격리 특화 숙박시설이 명동에 있어서 바로 7일 예약. 집에서 옷과 생활용품을 간단히 챙기고, 아내와 아들이 귀가하기 전에 바로 출발했다. 서글픔이 있었지만 독박 육아를 할 아내가 더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동의 숙소는 게스트하우스. 2층 침대가 있는 작은 방이 여러 개 있는 형태라 격리용으로 적당했다. 나 말고도 많은 숙박객이 있었으나 서로 알아서 마주치지 않고 지냈다. 이렇게 확진자들이 많구나, 어떻게든 사람들이 살 길을 찾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급히 나오느라 식량을 제대로 못 챙겨서 7일 동안 모든 식사는 배달로 해결해야 했다. 1인분 배달이 되는 죽, 패스트푸드, 비빔밥 등 방탕한 식사가 강제되었지만 막 싫지는 않았다는(...). 노트북도 가져가서 꼭 해야 할 일들도 좀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멍 때리거나 웹서핑을 하며 쉬었다. 회사생활 하면서 이렇게 길게 쉬어보는 건 처음. 아내에겐 미안했지만 정말 오랜만에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가졌다. 반면 아내는 혼자서 회사 일도 하고 육아, 집안일을 다 해서 굉장히 힘들어했다.
"오늘 아들이 아빠 언제 오냐고 물어보네."
"미안해. 조금만 더 버텨요."
영상통화로 아들을 보니 평소보다 힘이 없어 보이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더 미안했다. 아내와 저녁에 통화를 해보면 목소리에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내에겐 전쟁, 나에게는 휴식(?)이었던 7일 격리가 끝나고 가정과 회사에 복귀했다.
"아빠!"
아들이 달려와서 안기는 순간, 7일 동안의 미안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아내는 지쳐 보였지만 안도의 표정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나 싶었다. 비대위도 종료했고, 코로나도 지나갔으니 이제 정말 평범한 일상이 올 줄 알았다. 하지만 2022년 8월, 한 달도 안 되어 또 다른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아내가 확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