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의 연결고리
나의 딸과 남편 그리고 나. 우리 셋은 미국에 있었다. 온 세상이 “코로나19” 없이는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던 2021년 여름. 로드트립을 하며 국립공원을 다녔다.
지도 위에 국립공원의 점들을 연결하며 그 선위에 위치한 호텔을 예약하고 H마트를 찾았다. 우리가 머문 집을 기준으로 동쪽으로 한 바퀴. 서쪽으로 한 바퀴. 남쪽으로 한 바퀴. 북쪽으로 한 바퀴. 그렇게 그린 크고 작은, 때로는 길쭉하기도 한, 동그란 원을 따라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했다.
슈피리어 호수에서 보트를 타며 그 광활한 맑음에 넋을 잃었고. 유타와 애리조나 곳곳이 펼쳐진, 시간과 바람, 물이 만들어낸 캐년에 빨려 들어가듯 바라보았고. 사방팔방 눈에 닿는 것은 온통 하얀 석고질 모래언덕뿐인 화이트 샌즈에서 몇 시간이고 썰매를 탔고. 마운트 레이니어에서 한 여름에 눈 얼음을 만져보았다.
사람모양으로 두 팔 벌려 서있지만 사람보다 더 크고 더 오래 사는 사와로 선인장을 고개 들어 우러러보았고. 수천 년을 살아온 거대한 세콰이어 나무 앞에서 겸손해졌고. 옐로우스톤에서 바이슨 무리가 지나갈 때 자동차 안에서 미안한 마음이었다.
원주민 부족이 살았던 절벽거주지에 백인의 공격으로 처참히 목숨을 잃은 현장들을 숨죽여 지켜봤고. 게티즈버그의 바람 부는 들판에 서서 링컨 전 대통령의 심정을 짐작해보기도 했고.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로자 파크스의 발자취를 따라가서 목격한 인종차별의 잔혹함에 목이 메었다.
억겁의 시간을 축적한 경이로운 자연 앞에서 나는 한낱 시한부 인간임을 깨달았다. 인간의 세상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체가 공존하는 세상에 잠시 다녀가는 인간이었다. 과거와 지금의 어른이 만든 자연환경을 보았고 미래에 어른이 될 나의 딸이 살아갈 환경을 그려보았다. 나를 돌아보았고 나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국에서 내 코앞만 보고 살던 나는 더 이상 없었다.
미국의 역사를 엿보았으나 그건 세계 어디에도 있을 보통 인간의 이야기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을 생각했다. 아시아, 유럽, 북미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천제단이 있는 신령스러운 태백산을 가보지 않았고 서해 채석강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 보지 못했으며 어떤 동물들이 한국에서 멸종위기에 있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한국에는 내가 놓쳐서 보지 못한 경이로운 풍경과 미처 듣지 못한 역사가 너무나 많았다. 한국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알아야 했다.
우리 가족은 한국의 국립공원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역사 관련 공원도 많은 미국과 달리 자연경관 보호를 위한 산이 대부분이라 걱정이 되긴 했다. 왜냐하면 이제껏 우리 가족 인생에서 “등산”이라는 카테고리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 예측해도 전혀 문제없을 예정이었으니까. 우리는 이런 아웃도어 활동과 거리가 아주 아주 먼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고한 의지로 우리만의 최선을 찾아 다가가기로 했다. 산에는 사찰도 있고 계곡도 있고 등산코스는 다양하니까.
우리가 원하는 건 단순했다.
그저 틈이 나는 대로 자연으로 가는 것.
나와 나의 남편이 어릴 적 알지 못했던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재발견하는 것.
역사를 알고 사람을 이해하고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
그래서 나의 딸은 자연과 친해지고 자연에 감사하고 자연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게 되기를 바랐다. 주변에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동식물 친구들을 많이 아껴주며 자연과 사람의 연결고리 속에서 위안을 받고 성장하고 살아갈 힘을 얻기를 바랐다.
그렇게 우리는 먼 길을 돌고 돌아 한국의 국립공원으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9살 딸의 손을 잡고. 2023년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