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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의 바다 Apr 23. 2024

스크루지의 깨달음

Yellowstone National Park, Wyoming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이었다. 우리는 옐로우스톤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불리는 깎아지른 협곡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태양이 대기를 데우기 전 이른 아침 공기는 시리얼 첫맛처럼 바삭했다. 에메랄드빛 강물은 S자로 굽어진 길을 마치 기차처럼 쉴 새 없이 달려 나갔다. 엄청난 굉음을 내며 타고 내려온 폭포에서부터. 재빠르고 능숙하게.





강과 협곡의 숲, 구름과 하늘, 그리고 나의 가족과 나.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느릿느릿 스며들었다. 적막의 공기마저도. 우리는 시간이 멈춘 듯 이곳에 멈춰 있었다. 나의 딸이 거리의 예술가처럼 벤치에 앉아 스케치북에 색연필로 이 감동의 풍경을 다 그릴 때까지.








그랜드 루프 도로(Grand Loop Rd) 위에서 우리 가족은 바이슨(Bison, 미국 들소) 무리를 마주치게 되었다. 그들이 안전히 지나갈 때까지 멀찌감치 차를 멈추고 서서 기다리는데. 그 찰나는 엄청나게 긴 시간으로 늘어나면서 나에게 반짝거렸다. 아스팔트 포장된 도로 위에 매캐한 연기를 내뿜는 네모난 상자 안에 갇혀 있는 듯한 우리를 바이슨은 어떻게 보았을까. 여기는 그들이 사는 집이고 우리는 불시에 찾아온 달갑지 않은 손님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졌다.


나는 그동안 무지하게도 자연과 야생동물을 분리해서 생각해 왔었다. 인간은 자연과 공존하는 줄 알았었다. 내가 다 틀렸다. 야생동물은 곧 자연이었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었다. 인간이라는 종은 자연의 아주아주 작은 부분이었다. 인간은 잠시 왔다 가지만 지구는 계속 남아있을 것이고 계속 그대로 있어야만 한다.


나의 딸이 지금 내 나이쯤 될 때 지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지금의 아름다운 자연을 내가 그녀에게 보여주듯 나의 딸은 그녀의 자녀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나는 과연 할머니가 되어서 건강한 자연을 마주 보며 행복하게 웃을 수 있을까. 아니면 아파하는 자연에게 못 지켜줘서 미안하다고 울부짖을까.





바이슨 무리는 벌써 저만치 지나가고 없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할머니가 되어 황폐한 지구를 볼 자신이 없기에.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 에서 구두쇠 스크루지가 본인의 끔찍한 미래 모습을 본 느낌이 이랬을까. 스크루지는 자신을 반성하고 다른 사람에게 베풀면서 삶의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알게 되었다. 남에게 향한 선의는 결국 자기 자신을 살린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나의 할 일은
무엇인가.

자연이 살기 위해,
내가 살기 위해.



바이슨이 말했다, 너가 살면 나도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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