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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의 바다 May 05. 2024

끝에서 시작을 환호하다

Key West, Florida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순수한 파란색의 하늘을 가득 메운 솜털 같은 구름을 정면으로 보고 달렸다. 왼쪽은 대서양, 오른쪽은 걸프 해. 플로리다 반도 아래 수많은 섬을 1번 국도가 관통하며 하나로 연결하고 있었다. 길은 끝이 날듯 말 듯 계속 이어졌다.





우리의 대화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아득한 바다와 하늘이 얼마나 부드럽게 맞닿아 있는지에 대해, 오늘따라 구름이 하늘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에 대해, 도로 위에서 어떻게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느낌이 드는지에 대해. 우리는 그렇게 섬 하나씩 느릿느릿하게 지나갔다. 다양한 빛깔의 반짝이는 비즈를 골라 하나씩 정성스럽게 줄에 꿰어 팔찌를 만들듯이.





우리가 지나가는 섬 개수를 세다가 그만두었다. 도로와 평행선으로 세워진 바닷속에 전봇대의 행렬도 까마득해졌다. 바다를 가로질러 남서쪽으로 계속 이어지던 도로는 어느새 끝이 났다. 키 웨스트(Key West)였다.






멀로리 광장(Mallory Square)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미국 최남단으로 일몰이 유명한 곳이었다. 너도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후 5시 30분.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서서히 온 하늘을 울긋불긋 불태우면서.


어느 순간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태양은 이제 쇼를 마무리할 때였다. 찔끔찔끔 아끼며 보여주던 레이저 불빛도 이제 붉은빛 노란빛 마구 쏘고 있었다. 온 공기로 퍼져나간 강렬한 붉음의 농도는 절정을 치닫았다. 마침내 해는 꿀떡 바다 너머로 가버렸다. 알약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듯. 날쌔고 매끄럽게.





그곳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오늘 하루 어두운 곳을 환히 밝혔던 태양에게. 우리도 덩달아 더 즐거워졌다. 축제 같았다. 화려했던 태양은 모두의 갈채를 받으며 덤덤하게 무대를 떠났다.


온 바다에 울려 퍼지던 박수와 함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에, 그 광장에 여운이 남았다. 사실 사람들의 그 기쁨에 찬 환호는,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던 ‘무언가를 고맙게 여기고 축하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자신 또는 누군가의 눈부신 성장을, 다행스러운 건강 회복을, 다정이 넘치는 결혼생활을.


또는,

누군가의
별일 없는
일상을.

누군가의
질주 끝에
멈춤을.

누군가의
용기 있는
포기를.








나는 오늘 이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서쪽 바다 너머로 웅장하게 넘어간 태양과, 광장을 가득 메운 환호소리와, 미국 남쪽 끝에서 일몰을 보며 환희에 차 있던 사람들 중 하나인 우리를.


1번 국도의 끝과 시작인 키 웨스트에서. 미국의 끝이자 시작이기도 한 키 웨스트에서.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무언가 끈기 있게 끝맺음을 했거나, 의미 있는 첫걸음을 시작했거나, 또는 마무리와 동시에 새로운 출발을 막 내디딘, 세상 모든 이를 응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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