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음의 바다 May 07. 2024

대가를 치르는 마음

Glacier National Park, Montana



오늘은 선물이었다. 우리 가족이 여행을 다니며 이런 날을 보낸 적이 없었다. 항상 시간을 쪼개어 어딜 가고 무얼 했다. 국립공원에 도착한 어제 하루만 해도 고잉 투 더 썬 로드(Going-to-the Sun  Road)를 달렸고, 짧은 트레일을 2개 걸었다. 하지만 오늘은 하루종일 호텔에 머물기로 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지만, 늘 그래왔던 것처럼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기도 했다.





아침잠을 느긋하게 자고 일어나 나의 딸과 남편의 손을 잡고 어젯밤부터 우리를 부르는 곳으로 갔다. 호텔 앞 스위프트커런트 호수(Swiftcurrent Lake)로. 오늘 머무름의 원인이자 결과이자 모든 것이었다. 적막하면서 외롭지 않았고, 단순하면서 깊은 매력이 있었다.


호숫가를 산책하다가 우리는 무언가에 홀린 듯 즉흥적으로 카누 타기를 예약했다. 지금껏 카누를 타 본 적이 없고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는데. 이처럼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장소에서는 어떤 결정에서든 용감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셋이 일렬로 앉아서 어설프게 노를 저으며 서서히 움직였다. 일순간 산들바람이 장난을 치며 딸아이의 모자를 휘리릭 날려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물에 빠진 핑크 모자를 구하고 기진맥진한 우리는 한동안 노를 젓지 못하고 둥둥 떠있었다. 허둥지둥거렸던 우리의 웃음소리는 에메랄드빛 호수 위에 흩뿌려졌다.





아늑한 108호로 다시 돌아왔다. 우리는 약속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테라스로 나갔다. 검은색 철제의자에 셋이 나란히 앉았고 그때부터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햇빛은 적당히 들어왔고 바람이 간간이 불어와서 상쾌했다. 빙하가 빚은 산봉우리와 그 앞의 펼쳐진 호수를 보았다. 햇살이 호수를 얼마나 반짝이게 하는지, 호수에 어떤 산 그림자가 그려지는지와 같은 슬로모션 장면을 무심한 듯 세심하게. 마치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이따금씩 과자를 먹고 음료수를 마시면서. 침묵을 지키며 장면에 빠져들다가 할 말이 있을 땐 소곤거리면서. (옆 테라스에도 관객이 있었기에.)





가운데 제일 크고 뾰족한 산이 나를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나도 그를 똑같이 느긋하게 보았다. 급하지 않았다.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그 산은 나를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나를 다정하게 토닥여 주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를 짓누르던 걱정, 불안, 두려움, 우울, 욕심 같은 온갖 어둡고 무거운 것들이 연기처럼 사라져 가는 걸 느꼈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그것들에게 형체를 만들어 준 건 아닐까.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에서 가오나시를 요괴로 만든 것처럼. 내 눈앞에 뾰족한 산봉우리는 날카로운 지혜의 칼날로 내 마음속 나약하고 부정적인 것들을 흘러나오게 했다. 나의 정체를 찾을 수 있도록.


테라스에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알 필요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자연의 시간대로 강물 흐르듯 우리도 같이 출렁출렁 흘러갔다. 배가 고플 때 배를 채웠고 어두워져서 밤이 된 줄 알았다.








글레이셔 국립공원 안에 위치한 매니 글레이셔 호텔(Many Glacier Hotel)은 1915년에 지은 건물로 옛날 모습 그대로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곳이었다. 비싼 숙박요금에도 불구하고 예약 경쟁은 치열했다. 작은 방안에 놓인 아담한 침대는 누운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삐걱거렸다. 냉장고나 티브이, 에어컨 같은 건 없었다. 대신 작은 탁상용 선풍기 하나. 낮동안 햇빛은 프라이팬 달구듯 방을 후끈하게 데웠다.


한여름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짐을 끌고 계단을 올라와 여기 처음 들어왔을 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실망하는 내 마음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순간 마주한 나의 못난 민낯을 알아채고 싶지 않았다. 불편하다는 첫인상의 느낌을 모른 척하고 싶었다. 결국 내가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드는 감정의 흐름을 외면하고 싶었다.


나는 아무런 대가 없이 모든 걸 누리기 바란 것일까. 집에서 사용하는 모든 가전제품들을 나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쓰고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물건을 살 때 드는 비용, 매달 나오는 전기세 따위로, 나는 제 값을 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정녕 언제까지 모른 척하고 싶었던 것일까. 내가 못다 치른 대가는 리볼빙처럼 매 달 쌓이고 쌓여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고. 자연이 어쩔 수 없이 대신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자연은 이런 나를 보듬어 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끝에서 시작을 환호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