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겸손 사이에서.......
사실 작가주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저는.
그런고로 우디 알렌 영화와 홍상수 감독 영화를 쭉 찾아보게 되는데요. 두 분 모두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사랑 행각으로 지탄을 받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요?! 누군가 평하더라구요. 홍상수 감독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지적 허영심이 많은 사람이라고요. 어찌 되었든 가장 최근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참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우디 알렌은 10대에 잉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영화를 보고 감동하여 스스로 철학과 문학에 탐닉했다고 합니다. 그의 영화는 주로 미국과 유럽의 중상류층 지식인에게 소비된다는 분석이 있고요. 이 시점에서 지적 호기심(?) 혹은 지적 허영심이 강한 스스로를 인정합니다. 최근작 '이레셔널 맨'을 보았습니다. 70세가 넘은 노감독의 상상력에 찬사를 아낄 수가 없더군요.
한적한 마을 대학 철학과에 전임으로 온 에이브는 그 특유의 분위기로 여러 사람의 입담에 오르는 대상이 되고, 질이라는 여대생 역시 그의 멜랑꼬리한 매력에 빠지게 됩니다. 항상 무기력하고 비관적인 그가 우연히 악덕 판사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를 제거하는 것이 본인에게 부여된 정의의 임무인 듯 180도 다른 사람처럼 변하게 됩니다. 그리곤 사건이 전개되고 그 사실을 알게된 질과의 투쟁... 뭐 그런 시놉시스의 영화였는데요.
지적인 작업물을 선보이는 감독들이 그려내는, 화려한 조건을 갖춘 인간의 치졸한 내면, 그리고 그 감독들의 파행, 문뜩 연전 전시회에서 만났던 마크 로스코가 생각났습니다.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그는 거대한 색면회화로 유명한데요. 스티브 잡스도 그의 회화를 좋아했고 로스코의 사상이 평생 자신이 추구해온 철학과 동일함을 깨닫습니다. "감상자와 그림 사이의 영적인 교감을 중요시했고 감상자를 압도할 만한 대형 캠퍼스 만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던 로스코는 자신의 예술 세계에 대한 평가와 오해에 극도로 민감하여 말년에는 자신의 심사를 통과한 고객에게만 작품을 팔았다고 하더군요. 자의식이 워낙 강한 사람이었던 듯 합니다. 그러던 그는 대동맥류를 앓고 있던 현실과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자살하고 맙니다. 휴스턴에 '마크 로스코 체플'이 있을 만큼 영적인 작가였는데요.
고 장영희 교수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내가 살아보니까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남을 쳐다볼 때는 부러워서든,
불쌍해서든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 차원을 넘지 않는다
내가 살아보니까
정말이지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란 것이다
내가 살아보니까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깍아 내리는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겠다는 것이다
움베르코 에코의 '장미의 이름' 소설이 있죠. 오스트리아의 과거 수도였던 멜크 베네딕토 수도원이 그 배경이었다고 하더군요. 여행 중 들른 그곳 장서관은 소설 속의 음침함과는 거리가 멀어보여 의외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네요.
어떻든 소설의 호르헤 노수사는 왜곡된 본인의 판단으로 인한, 신앙을 전수한다는 이유로 살인과 방화를 저지릅니다. 살면서 우리는 나의 판단이 정의인 듯, 열정에 휩싸여 우를 범하지는 않던가요?! 뭔가 잘못된 방향인 듯하면 겸손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많은 예술 작품이 그리고 그 창작자들이 얘기해주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