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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정 Sep 26. 2018

'윤석남전'과 영화 '와일드'에서의 어머니.....

인물을 키워낸 힘, 모성

 추석 연휴를 지내고 여성 삶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점입니다.  여권 신장이니 떠들어도, 카카오네비의 통계는, 추석 당일 우리네 삶은 오후 3시에야 처가로 향하는 풍속도를 보여주고 있다는군요.  일단 가부장적 문화에 예속되어 있는 현실.....


그리하여 추석 전에 보았던 학고재 겔러리의 '윤석남  개인전'을 떠올렸습니다.  페미니즘 대모라고 불리우는 그녀의 전시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인터뷰 때문이었습니다. 윤작가는 말하더군요.  "당시 딸들은 공장에 보내 아들들 공부시킬 돈벌이를 하도록 했던 시절,  본인의 어머니는 딸들도 똑같이 공부를 시켰다"구요. 또한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은 굶을 지라도 거지가 지나가면 불러 밥을 주던 그런 사람이었다며,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하고 존경하는 존재다. 늘 엄마 생각을  한다"더군요.

 그러한 정신 세계는 나이 마흔에 그림을 시작하면서 어머니 초상화로부터 발현됩니다.

그러던 그녀가 50이 되면서 본인의 이야기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핑크룸'을 제작합니다.

여성에게 강요되는 핑크.....

"핑크색은 아름답지만 내 작품의 색은 '형광 핑크'다.  아름다운게 아니라 날카롭고 불안한게 느껴져 선택한 색이다. 내 삶이 그랬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한데 내면은 불안한, 혼란스러웠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본인의 표현입니다.

아름다운 듯한 소파는 앉으면 다칠 듯한 형상이고.

팔십인 그녀는 '민화가 버려진 보물' 같다며, "서민들의 소소한 생활과 감정이 있는 그대로 느껴진다"며 자화상과 접목합니다.

책거리와 같은 이미지를 배경으로 약간 치우치게 본인의 모습을 그려넣음으로써 여성들이 접하기 힘들었던 책과 지식의 세계를 나타내는 듯합니다.

아직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하는 작가의 예술 세계의 근원에는 훌륭했던 어머니가 계셨음을 통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전시를 보는 내내.......


  이번엔 영화 '와일드' 얘기입니다.

<몸이 그댈 거부하면 몸을 극복하라>라는 문장으로 영화를 설명하고 있더군요.  셰릴 스트레이드라는 여성이 엄마의 죽음으로 방황하며 삶이 무너졌던 순간 PCT(퍼시픽 크러스트 트레일), 멕시코부터 캐나다까지의 수천km의 과정을 완주하며 자신의 한계에 도전했던 이야기를 썼던 자서전을 읽은 리즈 위더스픈이 직접 주인공을 맡으며 제작한 영화입니다.  

 네러티브는 이러힙니다.  폭력적인 아빠에게 고통당하던 엄마 바비는 이혼 후 두 자녀와 함께 열심히 생활합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항상 밝고 꾸준한 자기 개발에 소홀하지 않으며, 딸에게 "네 최고의 모습을 찾으라"고 격려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에게 암선고가 내려지고 세상을 등지게 됩니다. 엄마의 죽음으로 삶의 구심점을 잃은 셰릴은 무분별한 외도와 헤로인 흡입등 혼란스런 생활에서 허우적거리다 이혼하게 되고..... 그 시점에 PCT 트래킹을 선택하고 험난한 과정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그립니다.

시나리오 작가는 그 과정 중간 중간에 비선형적 구조로 그녀의 과거를 보여주는 형식으로 작업하여 영화적 재미를 배가했던 작품입니다.

전 과정을 다 마치고 도착지점인 '신들의 다리'를 바라보며 셰릴의 이야기가 자막으로 흐릅니다.

앞으로 닥칠 일을 알 방법은 없다
무엇이 무엇을 파괴하는지
혹은 번영의 원인이 되는지
혹은 죽는지
혹은 다른 길을 선택하는지
내가 나를 용서한다면
내가 후회한다면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이 반복할 것이다
그 남자들 모두와
자고 싶었다면?
헤로인을 하며
뭔가 깨달았다면?
내 과거의 행동들로
이렇게 된거라면?
내가 평생
구원받지 못했다면?
이미 구원받았던 거라면
예상한 일에도
완벽한 대비는 불가능하다
엄마가 자랑스러워 할
딸이 되기까지
4년7개월 하고도
3일이 걸렸다
엄마 없이......
슬픔의 황야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후에야
숲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찾아냈다
종착점에 닿기 전까진
어딘지도 모르고 걸었다
수도 없이
감사하다고 되뇌었다
길이 준 가르침과
나도 모를 미래에 대해
나는 4년후 다시 이 다리를 건너고
여기서도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한 남자와 재혼을 하고
9년후 그 남자와
카버라는 아들을 낳고
1년후 엄마 이름을 딴
바비란 딸을 낳는다
이젠 공허한 손을 뻗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안다
물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내 인생도
모두의 인생처럼
신비롭고 돌이킬 수 없고
고귀한 존재다
진정으로 가깝고
진정으로 현재에 머물며
진정으로 내 것인 인생
흘러가게 둔 인생은
얼마나 야성적이었던가...


 멋진 그녀들을 키워낸 그녀들의 멋진 어머니들...

그러나 모두가 멋진 어머니의 자식으로 태어날 행운을 누리는건 아니죠.  그리하여 심리적으로 엄마로부터의 상처가 많은 사람들에겐 성모님을 흠승하는 가톨릭이 많은 치유의 이유가 된다지요.

오늘도 그리하여 그들은 엄마에게 메달리는 아기처럼 성모님의 전구를 구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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