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구르는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든 단상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를 보며 자꾸 그의 성격을 분석하게 되더군요. 아! 유대인인 아버지가 그 사실을 밝히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았던 어린 영혼은 인간의 표리부동에 대해 심한 거부감이 생겼겠구나.......
영미문학의 대표작인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제리 셀린저 이야기를 다룬 내용인데요. 그도 본인의 소설 속 홀든 콜필드가 명문고교에서 퇴학당한 것처럼 대학에서 쫒겨나고 방황합니다.
소설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나 아버지는 햄공장을 하는 사업을 물려받으라며 반대합니다.
엄마의 지지를 얻어 콜럼비아 대학에 들어가 소설 작업을 하게 되고, 당대 유명한 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 우나 오닐을 사귀게 되나 전쟁에 참가하면서 그녀가 늙은 챨리 체플린과 결혼한다는 기사를 통해 배신을 경험합니다. 전쟁통에서의 극한 경험들과 함께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하구요. 더욱더 비관적이고 냉소적으로 변한 그가 교수의 설득에 힘 입어 홀든 콜필드란 인물을 장편으로 완성해 내고.....
까칠하게 진행하던 출판 과정을 통해 <호밀밭의 파수꾼>이 세상에 나오고, 그는 일약 스타가 되며, 무수히 많은 홀릭 독자에게 시달리게 됩니다.
그들 왈 "이건 내 얘기"라는 거죠.
이 소설이 케네디를 저격한 리 하비 오스월드, 존 레논의 암살범 마크 채프먼 등이 애독한 것으로 알려져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유추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확실한건 중독성이 강하다는 사실이죠. 30대 후반에 다시 읽을 때의 나마저도 홀든 콜필드가 된 듯한 착각에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아.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소설 속 홀든 콜필드의 말입니다.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역시 그 후 출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숲속으로 들어가 글쓰기 하며 은둔생활을 합니다. 영화에서 그가 또 한번 배신감을 느끼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학생들이 유명 작가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고 그 중 한 여학생이 학교 신문에 실겠다고 인터뷰를 요청하자 어쩔 수 없이 응하였으나 지역 신문에 게재된 사실을 알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마던 장면.
결국 그는 이혼의 아픔을 겪고 살았다더군요.
철저히 자신 안에 갇혀.......
그러나 소설 속 그는 순수 영혼인 듯 그려져 뭇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내는데요. 마지막에 심리학자와의 치료 과정을 밟는 걸로 묘사됩니다.
깊숙한 자신의 내면을 묘사한 예술가의 작품만이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는 법이라 그의 여린 영혼의 상처가 가슴 에이게 다가오더군요.
씨네 큐브에서 관람한지라 낙엽 뒹구는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그 음악이 귀에 맴돌았습니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
그 중 파르티타 2번 샤콘느 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바흐가 첫번째 아내를 잃고 작곡한 곡이라고 하더군요.
3개의 소나타와 3개의 파르티타로 이루어진 곡.
제리 셀린저의 순수 영혼이 세상의 어두움을 이기지 못해 외로이 은둔 생활을 해나가 듯,
바흐의 곡은 바이올린으로만 아내를 여윈 슬픔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같은 느낌을 표현하고 있는 두 예술가의 영혼이
이 가을 저의 맘을 파고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