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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정 Aug 04. 2019

박서보-묘법, 에스더 쉬퍼의 '자신을 믿어라'

미술계 대가들의 자기 확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시가 진행 중인데요.

박 화백은 88세의 거장이신지라,  이 전시를 앞둔 인터뷰에서 "혹시라도 이번 전시 개막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을까 봐 가슴을 졸였습니다. 제발 개막만은 보고 떠나게 해달라고 맘으로 빌었죠."고 하시더군요.

내 모든 걸 발가벗었다

라고 표현한 이번 회고전에서 우리나라 엥포르멜 최초의 작품인 1957년작 <회화 No.1>을 비롯,  화백의 평생의 작업을 만날 수 있더군요.

회화 No.1

 전시명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가 이야기하듯, 그는 묘법이란 그만의 작업을 수행하기 이전부터 꾸준히

시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식을 줄 모르는 열정   

으로 미술가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의 시대가 그러하였듯, 박 화백의 부친도 영민한 아들이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기를 원했지만, 그는 어린 시절 안성에 거주하면서 뵙게 된 이당 김은호 백과의 만남에서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며 홍익대 미대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 후 이응노, 김환기 등 많은 스승들의 가르침 아래 본인의 작품 세계를 확장하여 갔는데요.

언젠가  김일엽 스님과의 조우에서, "먼저 수행하며 자신을 비우라"는 가르침대로 좋은 작품을 위해 수신의 길을 택하게 됩니다.

그런 결과로 묘법이란 특별한 작품을 선보입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그에게 찾아온 영감은 세 살배기 작은 아들의 글쓰기 연습을 보면서라는데요.  형이 쓰다 둔 공책에 칸 맞춰 열심히 글을 쓰는 아이의 모습에서 초기 묘법 시기의 연필화가 탄생하게 됩니다.

위 사진-공책에 긇씨 쓰 듯, 아래 사진-르몽드 위에 연필로
초기 묘밥화

화백의 표현으로는 "나는 변화하려면  4~5년은 걸리는 사람"이라며 "남들에게 내놓기 전에 혼자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1971년 불시에 우리 집에  찾아온 이우환 작가에 들켜버리고 말았다.  이우환 작가가 내 작품을 보고 일본 전시를 제안하며 세상에 공개하게 됐다."라고 합니다.  

 1980년대 이후 중기 묘법 시대에는 캔버스에 연필화 대신 닥종이를 사용하여 손의 움직임대로 자연스레 연출된 지그재그 묘법을 표현해 냅니다.

중기 묘법화 시기 작품

1990년대 중반부터는 막대기나 자와  같은 도구로 화폭에 고랑처럼 파인 면들이 만들어지는데요.

조앤 기 미시간 주립대 교수는 "화면의 촉각성이 관람자를 화면으로 다가오게 하며 심지어 관람자의 신체와 교감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라고 평했습니다.



중기시대 묘법화를 관람하는 모습

서양의 모노크롬과는 다른 단색화에 대하여 화백은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종소리는 한 발짝 물러서서 들을 때 그 은은함의 매력을 알 수 있고,  승무 또한 위로 올라갔다 천천히 떨어지는 몸동작에서 멋을 발산하지 않느냐?!"  그러한 한국적  매력을 닮은 그의 단색화는 전통 도자기 색을 연상시키기도 하더군요.


 21세기 들어서면서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오던 노 화백은 디지털 시대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혼란을 겪으셨다는데요.  하나

예술은 그 시대의 산물인데 시대와 무관한 것은 옳지 않다. 나는 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작품을 통해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작품에 색을 쓰기 시작했다.

고 설명하십니다. 화백이 느끼는 21세기는 모든 사람이 스트레스 병동에 갇힌 듯한 상황이기에.

단풍에서 영감을 얻어 표현한 색

'치유의 색' - 자연의 아름다움과 어우러진 경험을 통해 색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할 것이라고 믿으시는 노 화백.


  그러한 화백의 전시에

화백이 했다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더군요.

피카소를 유난히 좋아했다던,  외모뿐 아니라 세상을 대변하며 꾸준한 변모를 시도했던 그의 작품 세계.......   그것도 피카소를 닮았던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독일 베를린의 에스더 쉬퍼(ESTHER SCHIPER) 갤러리의 대표가 내한했었죠.  그녀의 갤러리에는 세계적인 작가 40여 명이 소속되어 있다네요.

대충 영국의 개념미술가 리암 길릭(55), 캐나다 출신 안젤라 블로흐(53), 프랑스 출신 피에르 위그(56), 스코틀랜드 출신 마틴 보이스(52), 인도계 독일 작가 티노 세갈(43) 등.

2018년 영국 미술잡지 아트리뷰(Art Reviw)가 선정한 '2018  파워 100'에, 그녀를 포함 모두 5명의 러리 식구들이 이름을 올린 세계적 팀입니다.

에스더 쉬퍼 겔러리 대표

  프랑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미술사학자 어머니와 대학교수인 아버지 아래 자란 엘리트 집안 자제였으나 대학 진학을 하지 않았다네요.

당시 내게 대학은 전혀 흥미로운 곳이 아니었다. 가능하면 빨리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좀 더 실용적이고 역동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그녀가 택한 길은 출판사 타셴(Taschen)과 갤러리에서 인턴쉽을 한 다음 1989년 20대 때 쾰른에서 갤러리를  여는 것이었다네요. 그때부터 함께 해온 작가들이 많은데,  안젤라 블로흐, 필립 파레노 등~~

그녀가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그들 흥미로운 작가와 흥미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호기심이었답니다.

그녀의 어록 중에 협업하는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아니 모든 관계에서 명심해얄 듯한 말......

협업에서 중요한 것은 감정(emotion)이다. 감정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일에 감정 개입은 금물이다. 예를 들면 훌륭한 작가(great artist)가 있다면 그의 작품(great arts)만 생각해야지, 까칠한 사람(a difficult person)에 초점을 맞추면 일을 그르친다.

 그리고 그녀는 갤러리스트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조언합니다.

겁먹지 말고 덤벼라.
위험을 감수하라.
젊은 작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자신을 믿어라(Trust yourself)"
성공하려면 재능만으론 안된다.
자신을 믿고 견뎌야 한다.
앤 베로니카 얀센스의 '인공안개'<사진 에스더 쉬퍼 갤러리>

 


 박서보란 노화백,  그의 친구 김창렬 화백이 전하길,  '그는 저돌적이고 성질이 급한 친구'라고 평했는데요. 1956년 반국전 선언 등을 했던 이력으로는 한편 수긍되기도 합니다만,  그의 아내분께선, '남편은 매우 감성적인 타입이라 같이 드라마를 보다가도 먼저 눈물을 흘린답니다'라고 하네요.  그 모습 모두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을 거고,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하면 또한 추락한다.

란 명언을 남겼겠지요.


 유명 갤러리스트가 한 말,

성공은 재능만으로 안된다.
스스로를 믿고 견뎌야....

결국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더운 날씨인데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시켰다는 뉴스 때문에 명상의 필요를 느껴 찾았던  전시,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멘토의 이야기가 지금의 우리에게 힘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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