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은의 노래 '넌 아름다워'가 영화 <벌새>와 콜라보로 MV를 만들었더군요. 두 작품이 이야기하는 주제가 시와 소설처럼 장르는 다르나 일맥상통했던 거죠.
가사에 '넌 하나뿐이야', '넌 아름다워. 같은 얼굴의 꽃은 없어'라고 읇조리죠.
영화 <벌새>의 장면 중
1994년을 살아가는 중2 여학생 은희의 삶이 잔잔하게 그려지고 있는 영화. 공부를 잘하지도 않고, 만화 그리기가 취미인 은희는 한문 학원에 다니고 있어요. 대치동에 살지만 떡집을 하는 부모님의 바쁜 일상은 삼 남매 중 막내인 은희에게 별 관심이 없어 보이더군요. 첫 장면의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대답 없는 엄마, 사실은 1002호가 아닌 902호에 가서 저지른 실수였지만. 뒷부분에 또다시 비슷한 장면이 나오죠. 길 가다가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엄마~~'라고 외치나 엄마는 듣지 못하고 반응하지 않습니다.
엄마란 존재는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엄마를 보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모두의 근원이죠.
그러나 불러도 대답 없는 엄마, 그래서 불안한 삶.
은희에겐 남자 친구도 있고, 좋아해 주는 후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때의 감정이었다며 배신하기도 하고..... 남아선호 사상이 강한 당시, 가부장제적인 아버지의 유일한 희망인 공부 잘하는 오빠는 수시로 은희에게 폭력을 가하면서 심적 부담감을 해소하는 상황입니다.
어느 날 은희 앞에 나타난 영지 선생님은 좋은 대학 다니다 사회 운동하며 오래도록 휴학 중인 상황인데, 잔잔하게 은희를 위로하고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그해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그만 다시 볼 수 없는 상황이 되고..... 그러나 은희가 영지 선생님께 썼던 손편지엔 ,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라고 쓰여 있죠. 영지 선생님이 했던 대사가 떠오릅니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은희야, 너 이제부터 맞지 마.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같이 맞서서 싸워. 절대로 가만히 있지 마. 알았지?
아마 은희는 벌새처럼 열심히 날갯짓하여 빛나는 삶을 향해 날고 있을 겁니다.
소설로도 읽었던 <82년생 김지영>이 영화화됐더군요. 더 탄탄한 스토리 구조로 훨씬 심금을 울려주고 있었습니다. '페미니즘 영화니'하며 제작 전부터 그리도 말이 많더니만, 많은 호응을 이끌어가는 중인가 봅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중
김지영 역시 삼 남매 중 둘째 딸로, 지극히 가부장제적 남성 중심 사회에서 많은 차별 속에 살아갑니다. 결혼 전 능력도 뛰어나고 자신의 꿈도 있었으나, 출산 후 육아와 집안 일로 불평등한 세상 안에서 힘든 삶을 영위하며, 불합리한 상황에서 빙의되어 타인의 목소리를 내는 정신병까지 앓게 됩니다. 그러나 남편은 본인에게 말해주지 않고 정신과에 찾아가 상담해 보기도 하죠. 나름 최선을 다하는 남편의 존재가 김지영에게는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
그 억울한 상황에서 김지영은 당당하게 그리 말하는 사람들에게 항변합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자기 목소리를 내도록 힘을 얻은 거죠.
두 영화 모두 비슷한 시기를 살아가는 이 시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민주화는 이루었으나 사회 전반의 문화는 심각한 빈부 격차, 갑, 을 관계의 문제점, 특히 여성 차별 등 어려운 상황임을 우리 모두는 목도하고 있는데요. 두 영화의 감독이 여성이라는 점, 그래서 더욱 섬세하게 관계의 갈등을 잘 그려내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벌새>는 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가장 지엽적인 특별한 이야기가 잘 표현되면 가장 보편적으로 감성을 자극한다는 진실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네요.
그 누구의 삶도 녹록지는 않은 법이죠. 그렇지만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고', 표현하면 해결 방법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한 이야기로 우릴 도와주는 존재가 있음에 한번 살아볼 만한 세상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