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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정 Sep 25. 2019

'나는 너를 중세의 미래한다1' 전시를 보고...

아트선재센터의 기획전

 연일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와 그 피해에 대한 뉴스가 넘쳐납니다.  그린란드의 얼음이 9m 정도 녹아내렸다는 소식과 그 땅을 탐하는 이 시대 탐욕의 아이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와 거래를 타진했으나 거부당하자 방문을 취소했다는 소식까지......

우:그리난드의 녹아내라는 얼음, 좌:트럼프의 합성 사진

 23일 유엔에서 멋진 연설을 하여 화제가 된 그레타 툰베리. 그 16세 스웨덴 소녀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로 인해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하며  환경운동가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8월 어느 금요일 스웨덴 국회의사당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라는 1인 시위를 통해

지금 우리 지구, 우리 집이 불타고 있으니, 당장 행동해야 한다.

고 외침으로써, 133개국 청소년 160만 명이 동참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캠페인을 이끌어 냈으며,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유엔 연설을 위해 뉴욕에 오면서,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비행기 대신 태양광 형 요트를 타고 영국 플리머스를 출발하여 15일 만에 도착하는 멋진 모습을 며칠 전 볼 수 있었는데요.

툰베라의 1인 시위 모습과 뉴욕에 도착하는 그녀의  요트
 저는 여기가 아닌 학교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내 어린 시절의 꿈을 앗아갔습니다.  당신들은 우리를 실망시켰습니다. 미래세대의 눈이 당신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실망시킨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각국  정상들을 향하여 그녀는 일갈합니다.

당신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돈과 영원한 경제성장이라는 동화뿐

이라고요. 어린 소녀로 인해 촉발된 기후 변화에 대한 세계적 관심 때문인지 트럼프 대통령도 어부지리로 잠시 회의장에 참석했다는군요.

회의장에서 스친 트럼프를 향한 툰베리의 레이저 눈빛

  이러한 세간의 이슈 때문에 아트선재센터의 기획전 <나는 너를 중세의 미래한다1>가 마음에 와 닿는 전시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덴마크의 쿤스트할오르후스의 예술감독인 야콥 파브리시우스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내년 부산 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고 있는 그의 전초전적인 기획의 의미로도 읽힙니다.

그의 기획 의도를 들어보죠.

계몽 시대가 오기 전까지 유럽을 칭하는 중세나 막연한 미래 같은 특정한 시간대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두 시간대를 겹쳐서 자유롭게 생각해보자는 전시
기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이 발달한 것 같으면서도 원시적이고 단순한 점도 많은 세상입니다. 이 전시를 기획할 당시 시리아 전쟁이 한창이었는데, 그 비극 또한 영감을 줬어요. 드론을 띄워 하이테크 전쟁을 치르면서도 적군 한 명의 목을 원시적인 전쟁 방법을 수행한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의 이러한 의도로 펼쳐진 전시는 총 10편으로 진행되는 일련의 전시 중 네 번째 버전입니다.

첫 번째 전시 <<나는 너를 중세의 미래한다4>>(2016)를 시작으로 <<나는 너를 중세의 미래한다5>>(2016), <<나는 너를 중세의 미래한다6>>(2018)이 앞서 진행되었다 합니다.

앞선 전시의 공간을 구성했던 건축적 요소를 떼어내어 재사용함으로써 매 전시마다 레이아웃과 디스플레이가 달라지고 새로운 작업들이 함께 재배열됩니다.  <나는 너를 중세의 미래한다1>에는 국내외 작가 총 20명이 참여하여 영상, 설치, 드로잉,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의 작업을 선보입니다.  그중 특별히 눈길을 끌었던 작품들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린 허쉬만 리슨은 영상 작업 <사이보그의 유혹>(1994)과 유전적으로 조작된 식물과 동물의 이미지로 구성된 벽지 작업으로 기술로 인한 인간 면역 시스템의 파괴를 그리고 있습니다.

린 허쉬만 리슨의 작품

 원시적이거나 유동적인 흐름 속에 머물고 있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포스트휴먼으로 향해가는 인간의 조건으로 고찰하며, 인류와 자연 세계를 연계하는 것은 인간 신체에 가해지는 기술의 영향과 관련 있음을 표현한 듯합니다.


윌 베네딕트와 스테판 요르겐센의 다크 시트콤 <더 레스토랑>(2018-2019)은 식료품을 배달하는 반 인간  반 달팽이 주인공 스네일리언을 통한 자연 세계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데요. 그 스네일리언의 실물 크기 마네킹과 영상, 오디오, 혼합재료로 구성된 설치 작업 <모든 출혈은 결국에 멈춘다>(2019)와 함께  그로테스크한 세계의 불평등이 우리의 일상과 만나고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대사 과정과 만나는 것에 관심을 가집니다.

포스트휴먼 캐릭터인 반 인간, 반 달팽이 식료품 공급자 스네일리언은 자연 세계의 유연성을 가리키며, 이 세계가 제로섬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종말론적 식분증 혹은 광란과 함께 사는 시나리오를 모두 제안하는 듯합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부조리하고 초현실적인 우화는 우리가 더 이상 우리의 신체 기관의 에너지와 운동을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는 것, 결국 똥이 몸을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주장하려고 할 때 우리의 배설물은 되받아칩니다. "네가 과연 책임자인 것 같아?"라고.

우:<더 레스토랑>,  좌:<모든 출혈은 결국엔 멈춘다>

 최고은의 작품에 집중해 봅니다.

그의 새로운 창문 작업 <봄의 욕망의 정원>(2019)은 전통적인 스테인드글라스나 종교적 심연화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과 시각요소는 기독교 도상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삼면화는 세 개의 창문에 나뉘어 있고, 각각은 여성의 남성에 대한 자발적인 또는 반자발적인 헌신과 복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창문 중앙의 성모 마리아는 처녀로 임신마여 예수를 낳고 그 삶을 그에게 헌신합니다.  왼쪽은 인어공주로, 왕좌를 위해 그의 목소리를 포기하고 왕자를 살리기 위해 결혼 전날 자신의 몸을 바다에 던집니다. 그리고 오른쪽 선녀와 나무꾼,  나무꾼은 목욕을 하러 내려온 선녀의 옷을 숨겨 그녀를 붙잡아 두지만 결국 선녀는 하늘로 탈출합니다.

작가는 리비도의 기쁨과 죄악을 해석한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쾌락의 정원>과 신윤복의 <이부탐춘>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중세로부터 오랜 역사 속에서의 여성의 역할, 작금의 <미 투> 운동의 흐름 속에서  관심 가는 작품이었습니다.

봄의 욕망의 정원(2019)

 


  최윤 작가의 <너와 나의 서울 중세>(2019) 또한 서울에서 전시되는 이유로 눈길을 끕니다.

작가는 공공장소나 대중문화를 통해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는 이미지를 포착, 수집, 변형하여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의 작업으로 구현해 왔는데요. 한국 사회 속의 일상적이면서도 복잡한 층위를 가지는 이미지와 그 이미지가 내포하는 집단적 믿음의 상투성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I SEOUL U' 서울시 홍보 작업을 진행해 왔답니다.  그런 이유로 "다름과 공존과 연결"을 지향하며 그의 작품은 전시 안에서 "다른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 역을 하듯, 입간판을 지나 벽을 돌아서면, 중세 판타지가 만들어낸 캐릭터가 밤의 한강을 떠도는 풍경이 펼쳐지는 영상 속에서 펼쳐지고, 타임슬립을 하기 위해 강을 건널 것인지 묻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서울 중세(2019)

 


 이제 3층 전시실 관람 동안 나를 따라다니던 로봇청소기 <최후의 화신>(2016)에 대해 마지막으로 언급해 봅니다. 아니아라 오만의 이 작품은 <천년 전의 나, 지금으로부터 천년 후의 너>(2019)와 <함께인 것보다 더 가까이>(2019)와 함께 전시 중인데요.

작가는 상호 연결성과 개인성 사이의 역설과 경계에 대한 탐색을 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합니다.

비밀의 입 비슷한 형상을 한 얼굴을 하고 몸은 없는 채 로봇청소기 형태로 관람객을 따라다니던 그  <최후의 화신>은 극도의 개인주의로 섬이 되어버린 인간이 SNS라는 가상공간 속에서 상호연결을 시도하며 서로를 애타게 그리는 형국일까요?!

<최후의 화신>(2016)

 마치 새로운 암흑의 시대를 불러내는 주문처럼 들리는 전시 제목은 과거와 미래를 뒤섞으며 시간을 선형적으로 인지하는 우리의 습관을 방해하는 듯합니다.

이미 헬레나 노르베지 호지의 책, '오래된 미래'를 통해,  히말라야 산맥의 작은 마을 라다크가  서구화되면서 망가져 가던 모습, 그들의 과거 방식의 삶이 어떤 아름다움을 선사하는지를

보여주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레타 툰베리라는 소녀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과거'를 살아보자고요.


 그리하여 전시장을 나오면서 다시금 유발 하라리가 책 '사피엔스'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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