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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정 Nov 24. 2019

'빨강머리 앤'으로부터의 위안

명작이 주는 영감.......

 훌륭한 예술 작품은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고, 다양한 장르로의 재창조 과정을 겪게 되죠.

1908년도에 출간된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 역시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다카하다 이사오에 의해, 원작 1권인 'Anne of Green Gables'이 50편으로 엮여서 1979년 '빨강머리 앤'이란 제목으로 방영되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 기몰이를 하게 됩니다.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 장면들

 그 이후에도 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며 뮤지컬 작품으로도 재탄생하기도 했답니다.

2017년도에 앤의 고향 캐나다에서 만들어진 명품 드라마가 넷플릭스를 통해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기쁨을 선사하고 있는데요. 아직은 시즌1, 2까지만 업로드된 상태이지만,  그 멋진 화면과 원작을 살리면서도 현시점에서 볼 때 중요한 관심사인 페미니즘과 동성애 문제 등을 가미하여 더욱 집중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드라마 'Anne  with an E'의 장면들

 소설 원작자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1874년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 태어났으며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우체국을 경영하는 조부모님 손에 자랐다고 하네요.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교사로 재직하기도 했으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외할머니가 있는 캐번 시티로 가서 우체국 일을 도우며 틈틈이 글을 써서 '빨강 머리 앤'이란 역작을 완성하였답니다. 그러한 작가의 경험들이 앤의 이야기에 많이 녹아들어 가 있는 듯합니다. 1권 이후 꾸준히 Anne이라는 캐릭터의 인생을 소설로 써나갔으며, 1935년도엔 대영제국의 훈장을 받을 만큼 그의 작품은 당대 큰 관심을  받았다는군요.

그렇담 어떤 점이  그토록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도록 했을까요?!


  소설가 백영옥 역시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의 광팬이었나 봅니다.  힘든 시기에 무한반복 시청하면서 앤으로부터 위무받고, 작가로서의 영감을 얻어  그 이야기를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이라는 에세이로 출간하기에 이릅니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책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봅니다.

엘리쟈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걸요.

그녀가 말합니다.  앤의 이 말은


"어쩌면  이것은 더 이상 기적을 믿지 않는 시대에 일어난 지극히 개인적인 기적에 관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두 살에 고아가 되어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왔던 앤은 상상력이 풍부한 수다쟁이 소녀입니다.

힘든 현실에서도 독서를 통해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던 고아원 출신.......

그 소녀가 에번리 마을의 매튜와 마릴라 남매, 독신으로 늙어가며 도와줄 일손이 필요했던,  집에 오게 되면서 그 남매뿐 아니라 에번리 모두가 서로서로 변화해 가는 모습들이 경이롭습니다. '빨강머리 앤'에서는.

영화 <비포 선셋>에 보면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고 때문에 비록 다리 하나를 쓸 수 없다고 해도, 낙천적인 사람이라면 낙천적인 장애인이 된다는 이야기

백영옥 작가가 에세이에서 한 말입니다.


 문득 떠오르는 책 구절이 있습니다.

원형 심리학과 도토리 이론을 창시한 제임스 힐먼 교수의 저서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THE SOUL'S  CODE)>에 나오는......

'나'라는 고유한 인간이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는 예감, 일상을 넘어서 내가 반드시 발을 담가야 하는 일이 있다는 느낌, 그 일상에 존재의 이유를 부여하고자 하는 생각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 석학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쩌면 삶은 어린 시절 자체로 결정되지 않고, 어린 시절을 상상하기 위해 배웠던 그런 방식에 더 많이 좌우되는지도 모른다.  그 방식은 어린 시절을 불필요한 시기로, 우리를 잘못된 모습으로 만들어버린 외부 발생적 재앙으로 기억한다. 그런 탓에 정작 우리는 어린 시절의 상처 자체보다 이런 방식에 더 많이 상처 받고 훼손된다."라고 쓴 대목에서 알 듯합니다.


 우리의 앤은 본인의 도토리에 충실히 응답해 나갔던 인물임에 분명합니다.  

때론 빨강머리에 대한 콤플렉스로 "홍당무~"라 부른 길버트의 머리를 석판으로 후려치기도 하고,

첫 대면에서 "빼빼 마르고 못생겼다~"한 옆집 드 아줌마에게 격하게 항변하기도 하지만, 본인의 감정을 억압함으로써 본성을 잃는 대신, 당당하게 세상 풍파를 헤쳐나갑니다. 험난했던 과거로부터 잘못된 버릇들도 분명 있었으나 그러한 앤을 연민과 사랑으로 감싸준 메튜, 마릴라 남매에 대한 감사와 애정에서 나오는,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결정으로 보답하는 앤........

매튜가 세상을  등지고 시각을 잃어가는 마릴라 아줌마가 초록지붕 집에 혼자 남게 되자, 앤은 대학 진학의 꿈을 포기하고 마릴라와 함께 머물기 위해 교사를 지원하여 에번리로 돌아옵니다.

그러면서 했던 앤의 말.....

'내 이름은 빨강머리 앤 ANNE전시회'에 있던 글


이제 제 앞에 길 모퉁이가 생겼어요...

앤은 이렇듯 멋진 긍정주의자이기에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듯합니다.


그런 멋진 앤에 빠진 사람이 많긴 한가 봐요.

갤러리아 포레 전시에선 '내 이름은 빨강머리 앤 ANNE 전시회'가 진행 중이더군요.

전시회 입구의 모습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추억으로 남아있는 '빨강머리 앤'을 회화, 애니메이션, 대형 설치작품, 음악과 영상 등을 통해 새롭게 만나는 장을 펼쳐주고 있습니다.

 '빨강머리 앤'이 이 시대 우리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기에 무척 반가웠습니다.

금수저, 흙수저 등 자괴감 가득 담긴 신조어가 남발하는 시대에 등대 같은 존재가 되어줄 우리의

빨강머리 앤...


넷플릭스의 시즌3과 뮤지컬 개막을 기다리며 이 겨울을 버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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