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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정 Jun 30. 2020

르네 마그리트의 <골콩드> 안으로...

'인사이드 마그리트'전을 통한...

  데페이즈망(추방이라는 의미) 기법,  초현실주의자들의 방식으로, 주로 우리의 주변에 있는 대상들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그것과는 전혀 다른 요소들을 작품 안에 배치하여, 일상적인 관계에 놓인 사물과는 이질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기법입니다.

르네 마그리트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활용한 다양한 방식으로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보이게 하는' 충격을 주었고, 그럼으로써 관람객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듭니다.

그의 <골콩드> 혹은 <겨울비>라 불리는 작품은 여러 느낌으로 순간순간 다가왔습니다.

그리하여 찾은 '인사이드 마그리트'전시는 작가의 작품들을 좀 더 다정하게 느끼도록 노력한 흔적이 보이더군요.  물론 진품 하나 없는 전시지만,  다양한 미디어 기술과 작품 속 복제품을 형상화한 방식으로 르네 마그리트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입구의 저 문장이 그를 충분히 설명하 듯합니다.

그는 철학자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으며, 헤겔, 베르그송, 하이데거 등의 철학서를 탐독하고 그 사상을 그림으로 표현하곤 했습니다.

나는 회화를 이용하여 사유를 가시화한다.

라고 말하듯이.......

1922년 시인 마르셀 르콩트가 보여준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사랑의 송가> 복제화를 본 마그리트는 큰 충격과 함께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로 접어듭니다.

이미 철학적 사고를 하던 마그리트가 형이상학파 키리코에게 끌린 건 당연한 귀결이었겠죠.

키리코와 그의 작품 <사랑의 송가>

 이탈리아 혈통인 키리코는  그리스 볼로스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합니다. 버지 사후 그의 엄마가 아들들을 데리고 뮌헨에 정착하였고 그곳에서 미술 아카데미를 다니던 키리코는 니체, 쇼펜하우어의 책을 접합니다.  하나 21살 즈음 다시 이탈리아로 이주하였다 합니다.  그러한 그의 삶의 궤적이 형이상학적 사고를 하게 했으리라 짐작이 되는 측면입니다.

   


 마그리트는 어린 시절 소꿉친구 마리 조르제트 베르제와 결혼하였고 1927년 함께 파리로 가서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어울립니다.

그중 1920년대 초현실주의 모임을 이끈 앙드레 브르통과 교감을 나누게 되는데요.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시 군의관으로 소집되어,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법을 치료에 도입하여 큰 시사를 얻은 바 있답니다.

그러하니 무의식 세계를 존중하는 인물이었겠고,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다가 화랑 창문에 걸려있던 조르조 데 키리코의 <TheChild's Brain>을 보고

급 하차하여 그 작품을 샀다는 일화가 있더군요.

<Child's Brain(1914)>

알려진 바로는 이 그림을 그리던 당시에 키리코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다 합니다.  아마도 비슷한 시기의 인물들은 비슷한 사고를 하고 서로 다른 분야이지만 그 느낌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하나 봅니다.

전시에서도 마그리트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로 두 사람을 언급하고 있었고요.

 그러나 당시 초현실주의자들이 인간의 무의식을 표현하고자 했다면, 마그리트는 또렷한 의식이 만들 수 있는 허구의 유희에 충실하면서 언어와 이미지의 실제 관계에 더욱 관심을 드러낸 인물이었습니다.

이미지의 반역(인사이드 마그리트 전시)중

어찌하였든 1898년도에 벨기에에서 태어나 두 번의 세계 대전을 치르고, 14살에 평소 우울증을 앓던 어머니가 강에 투신하여 목숨을 끊 장면을 목도한 그에게 세상은 험난한 곳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만의 또 다른 의미에 천착하게 하는 상황 아니었을까요?!

친구들의 전언에 의하면 그는 항상 단정하게 정장을 차려 입고 중절모를 쓴 채로 본인의 작업실에 와서 일정 시간 그림을 그렸다 합니다.

평생 아내에 대한 사랑도 남달랐던 정말 모범적인 남자였던 듯합니다.


 이제 <골콩드>, <겨울비>라고도 불리는 그의 작품 이야기입니다.  

The Weather Girls의 <Its Rainging Man> 팝송 때문에도 비처럼 쏟아지는 남자들을 연상하고...

음악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남자들은 즐거움을 주는 존재였겠죠?!   

그러나 마그리트의 <겨울비>는 즐거움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듯합니다.  물론 내가 가지고 있는 겨울비에 대한 관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또 다른 제목 <골콩드(Golconda)>는 작가의 친구였던 시인 루이스가  부쳐주었다고 합니다.

'골콩드'는 과거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유명했던 인도의 도시로 폐허가 되었으나 14세기 중반부터 17세기  말까지 두 개의 연속 왕국의 수도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라는군요.

그림에 관하여 두 친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터이고, 그들만의 의미가 있겠지만,

그림 제목은 설명이 되지 않고, 그림은 제목을 풀이하는 삽화가 아니다.

라고 말한 작가의 말을 존중하고픕니다.

그림 속 중절모를 쓰고 레인코트를 입은 남자들은 각기 다른 표정과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요.

평상시 그의 모습과 같은 이미지는 양복 재단사이며 사업가였던 아버지, 모자 디자이너였던 어머니의 일을 그대로 본인 모습으로 답습한 결과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또한 한때 경제적 이유로 동생과 함께 다양한 포스터를 제작하는 광고 대행사 '스튜디오 동고'를 운영하기도 했던 그였으니, 현실에 지극히 순응적으로 반응했던 타입이었던 듯합니다.

그리하여 나에게는 작가의 나라 벨기에의 풍경 속에 같은 모습으로 시대적 요청에 순응하는 경제적 부의 형성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가는 남자들의 허망한 삶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그들의 내적 허허로움이 느껴지는.

도구적 존재로서 살아가면서도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인간 군상.

가히 그렇게 추측하게 만드는 그의 또 다른 작품이 있으니 <9월 16일>입니다.

작품 <9월16일>

마그리트는 나무를 그림 소재로 많이 사용하곤 했습니다.  그의 나무 이미지에 대한 표현입니다.

땅으로부터 태양을 향해 자라나는 나무는 어떤 행복에 대한 이미지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미지를 인지하기 위해서는 나무처럼 不動 상태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움직일 때 나무는 이를 관찰하는 관찰자가 된다. 동시에 나무는 의자나 테이블, 문짝과 같은 형태로서 다소 불안한 우리의 삶을 관망하는 일종의 목격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나무는 棺이 되어 비로소 다시 땅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불과 함께 변형될 때에는 공기 중으로 소멸한다.


그의 중절모 쓴 신사들이 허공에 정지해 있는 모습이 不動의 나무를 닮지 않았나요?!

관찰자의 모습으로..........


장맛비 내리는 밤 관찰자의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극작가 요한 폰 실러는

"이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 아무리 사소하게 보이는 일도 운명의 저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다"

르네 마그리트의 <골콩드>를 느껴보는 이 밤이 운명적인 밤일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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