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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정 Mar 26. 2021

전시의 힘.......

<한겨울 지나 봄 오듯>, <박생광-무속>

 최근 다녀온 두 전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한겨울 지나 봄 오듯> 전시 먼저 얘기하고 싶군요.  워낙 <세한도>의 '문자향 서권기' 가득한 매력을 흠모하던 터라, 이번 시엔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픈 기대감이 컸던 탓입니다.

특히 지난해  작품을 소장하고 있던 손창근 옹이 박물관에 기증하면서 열리는 특별전인지라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세한도>와  세한 전시 입구

 잘 알려져 있듯, 추사 김정희가 안동 김문의 세도정치가 심해지면서 정쟁에 휘말리게 되어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그 힘든 시기를 추사는 "억지로  버티고 있는 것은 한 가닥 모진 목숨뿐"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 힘든 시기에 중국 통역관을 지낸 제자 이상적이 변함없는 신의로, 사신으로 중국에 갈 때마다 스승이 좋아할 최신 서적을 구하여 제주로 보내주는 마음을 고맙게 여겨, 그를 위해 그린 작품입니다.  단순한 그림 옆에

공자께서는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라고 말씀하셨다. 귀양 이전에 더 해준 것도 귀양 이후 덜 해준 것도 없다

라는 글을 써놓으며,  또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을 담아 '장 무 상 망'이라 새긴 인장을 찍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들고 이상적은 1844년 10월 7번째 북경길에 오릅니다.  그리고 다음 해 1월 13일 장요손이 초대한 모임에 참석하였고, 청나라 문인 16인의 감상글을 받게 됩니다.  김정희의 학문과 삶을 높이 여긴 글들입니다.

후에 이를 본 추사도 기뻐하였다 합니다.

이상적은 역관인 김병선에게 이 작품을 주었고 이것이 그의 아들 김준학의 소장으로 이어졌고, 가 소장자임을 입증하기 위해 받은 4인의 감상문이 더해진 긴 두루마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추사의 작품을 좋아하던 일본인 수집가 후지쓰카 지카시가 도일하며 <세한도> 역시 일본으로 가게 되었고, 이를 아쉬워하던 개성상인 손재형 옹은 여러 차례 후지쓰카를 찾아가 공을 들여 본국으로 되찾아 오는 쾌거를 이루었다 합니다. 그의 아들 손창근 옹께 물린 세계 유산인 이 작품을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어 모두를 즐겁게 하고 있는데요. 기증자 손창근 옹은 작품 기증뿐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위해 KAIST에 많은 재산을 기증하기도 하였다더군요.

과연 <세한도>를 그린 추사의 정신과도 맞닿은 손씨 일가의 행보라는 생각이 듭니다.


 추사는 명문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고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많은 책을 었으, 24세에는 부친 김로경이 동지부사로 연행길에 오르자 자제 군관 자격으로 북경에 가기도 했습니다. 그곳에서 청나라 석학들과  교류할 기회를 가졌는데, 당대 대학자인 양조우 출신 완원과의 만남에서 추사는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또한 그리도 바라던 청나라 옹방강과 만나 '실사구시'라 쓰인 편액을 받게 됩니다. 그의 가르침대로 추사는 과거 시험을 뒤로한 체 사실에 기초한 진리를 탐구하는 실사구시의 자세로 조선의 비와 탁본을 고증하고 연구합니다. 그러한 정신세계는 그와 교유했던 인물들이 권돈인, 초의선사, 허련등 권문세가와는 연관되지 않았던 인물들이었고, 이상적 역시 중인 출신 통역관이었음을 통해 알 것 같습니다.

전시장에는 이런 표현도 있더군요.

"인생의 큰 굴곡이 없었던 김정희는 거리낌 없이 말하고 행동하여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거나 미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55세의 나이에 제주도 유배를 떠나 그곳에서 학문과 예술에 더욱 몰두하여 경전을 치열하게 연구해 진리를 밝혀냈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확립하였다.

' 세한(설을 전후한 한겨울)'의 시기에 추사의 학문이 더욱 깊어지도록 도운 이상적 역시 12차례 중국을 다녀온 당대 최고의 역관이었으며, 그의 시를 헌종 임금이 애송할 정도로 뛰어남은 물론, 중국에서는 <은송당집>이란 문집을 엮어줄 정도로 유명한 인사였다 합니다. 그런 제자 이상적이었기에 중국에 갈 때마다 스승에게 꼭 필요한 서적을 구해 보낼 수 있었겠지요.

 

일신의 영광과 본인 자손만을 위한 삶이 아닌 큰 뜻을 이루신 <세한도>의 작가 추사 김정희 선생이나 기증자 손창근 선생의 행보가 언뜻 닮아 보입니다.


<한겨울 지나 봄 오듯 - 세한 歲寒 평안 平安>

전시 기획 의도를 밝히고 있습니다.

삶의 고락은 손 뻗으면 닿을 곳에 늘 함께 있습니다. 춥다가 따뜻하기도 하고, 슬프다가 기쁘기도 하고, 힘들다가 평안하기도 하고, 미워하다가 사랑하기도 합니다.

여기 두 그림이 있습니다.

세한은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변치 않는 송백의 마음입니다. 어려운 순간을 이겨내는 실낱같은 희망입니다.

평안은
봄날 평안감사로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의 행복입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돌아보고 잊지 말아야 하는 다짐입니다.

선인은 변치 않는 희망으로 어려운 시절을 견뎌내었습니다. 우리의 힘든 시절도 곧 지나 봄날 같은 행복이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생은 늘 그렇습니다.

 


 또 하나의 행복 기원 전시 박생광의 <무속> 전입니다.  광화문 교보문고 內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전시 중입니다.

 박생광 화가는 청년 시절부터 70대 나이까지 우리의  민속 문화를 독창적인 화법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던 작가는 70대 후반부터 '민속 문화'의 기반에  주술적'신묘함'을 결합한 듯한

한국적 '무속巫俗'을 화폭에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속이 한국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한국적 문화를 성장시킨 뿌리의 한 줄기였기에 작가는 말년에 그리도 매달렸던 듯합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복을 기원하는 맘을 담아 다녀온 전시였습니다.

교보문고 빌디에는 김종삼 시인의 <어부>가 붙어있더군요.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그렇습니다.  아직 찬 기운 느껴지는 계절이지만 좋은 전시를 통해 기운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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