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아이의 본모습 인정하기

by UX Writing Lab

딸아이의 과민하고 예민한 모습에 지치고 화가 났다.




기분 좋게 웃으면 왜 웃느냐고 얼굴 벌게지며 화를 냈다.

핵심은 없고 세밀한 디테일에 집착하느라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서도 역시 큰 흐름을 이해하지 않고 세밀한 오류를 지적하느라 제대로 된 유쾌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큰 종이를 이용하지 않고 구석진 자리에 있는 작은 그림에 매달려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다.

좀처럼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를 않았고, 뭐든지 싫다, 안 한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나를 괴롭히고, 걱정하게 하던 아이의 모습이 ‘내향적’이고 ‘섬세한’ 특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자 거짓말처럼 걱정과 불안이 사라졌다.




결함이 아니다.

특성이다.

결함이라는 단어에는 가치 판단이 들어가지만 특성은 중립적이다.

딸은 "늦된" 것이 아니라 "내향적"인 것이다.




야자 야길로비치Jadzia Jagiellowicz는 섬세한 사람들은 유난히 복잡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잡담을 지루해한다. "사고 체계가 복잡하다면, 날씨에 관해서나 휴가에 어디에 갔는지 등을 얘기하는 건 가치관이나 도덕에 관해 얘기하는 것만큼 흥미롭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한다.



수전 케인은 섬세한 사람들은 감정이입을 잘한다, 남다르게 양심적이다. 과격한 영화나 TV 쇼는 피한다.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일의 결과를 예리하게 인식한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이 '너무 무겁다'라고 여기는 개인적인 문제 같은 주제에 집중할 때가 많다고 말한다.









외향성에 대한 필터를 벗겨내자 이제야 내향적인 아이들이 보인다. 도전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이 사회에서 맡아야 하는 역할만큼 내면이 깊고, 예민하고, 꼼꼼하고, 신중한 사람이 사회에서 담당해야 하는 역할이 존재한다.




우리는 내향적인 아이들이 교육 제도에서 학업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거나, 당당해 보이지 않는다는 갖가지 이유로 "늦되다"는 딱지를 붙여 예민한 아이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는다. 인지 능력과 속도가 중시되는 대한민국 교육 체계에서 안 그래도 피곤하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왜 이렇게 느리냐” “그렇게 살면 실패한다” “답답하다”는 평가로 그 아이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준다.




모든 것을 순도 높은 예민함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남들의 기대에 따라가지 못하며 얼마나 힘들지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학교를 다니고, 친구랑 놀고, 학업을 따라가는 평범한 일상 하나하나가 모두 도전이다.



특별히 두각은 나타내지 못하지만 순하고 느린 아이들, 존재감없이 선생님 별로 신경 쓰이게 하지 않아 '편리한' 아이들, 반대로 공부나 책에 빠져 주변의 것에는 무관심한 괴짜 같은 아이들이 모두 내 자식인양, 나의 어릴 적 모습인양 예쁘고 보듬어야 할 자식으로 다가온다.




이제 딸이 온전히 보인다.




딸은 "늦된" 것이 아니라, 내면세계가 "풍부한" 것이다.




"늦된 아이들은 우리나라에서 밥 먹고 살기 힘들어" 하는 말들은 내 불안과 잘못된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것일 뿐, 이런 아이들에게 맞는 자기 자리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존재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런 아이들은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된다.



조용하지만 말 한마디에 신중한 사람, 매사에 실수 없이 처리하는 꼼꼼함, 상처 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



사실 돌이켜 보면 이런 사람들이 뿜는 힘이 훨씬 더 강력했다. 어려울 때 생각나는 사람이다.



이런 아이들을 인지적으로 자극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느리다. 준비가 안되면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자신의 내면세계를 탐험하던 집중력으로 세상을 탐험하러 나올 것이다.




늦된 아이들은 서서히 변해가는 하늘빛을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살랑거리는 바람의 감촉만으로도 감성이 살아난다. 제 자리에 앉아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감각이 일어선다.




늦된 아이, 아니 내향적인 아이들은




신중해서 일을 그르치지 않는다.

독특한 자기 세계가 분명하고 독창적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존중하고 마음이 따뜻하다.

어떤 일이든 믿음직하게 끝까지 처리하고 끈기가 있다.




이제 아이의 모습이 온전히 보인다. 내향성을 이해하자 부정적으로 보였던 부분들이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만 뚫어지게 바라보던 것은 대상을 세밀하게 포착하고 있던 것이다.

베란다에 뒹굴거리고 누워 화분을 바라보며 새싹이 돋고 하루하루 화초가 변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그림책의 그림만 보고 또 보았다.

인물의 각도, 표정, 미묘한 배경의 디테일 변화를 뚫어지게 보더니 그림만 보고도 세밀한 줄거리를 예측한다.

디테일에만 집착하던 예민함은 사물의 세밀한 변화를 포착하게 해 주었다.

몇 시간쯤은 엉덩이 무겁게 눌러앉아 파고드는 집중력으로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든 해낸다.

자신의 세계에 푹 빠져 사니 친구 세계, 현실 세계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이러니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항상 혼자 얼띤 행동을 한다. 의미 없는 대화나 어색한 침묵으로 점철된 친구들과의 놀이 시간이 오히려 고도의 흥분을 제공하는 혼자만의 상상보다 덜 재밌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챘다. 친구들과 놀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의 놀이보다 몇 배는 재미있는 상상 놀이를 한 것이다. 이런 아이를 사회성이 떨어진다느니, 세상과 동떨어져 괴짜라느니, 친구가 없으면 재미없다느니 한 생각은 내향적인 아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무지에서 비롯된 착각이었다.








발레리나 강수진씨는 본인의 내향적인 성격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의 솔직하고 밝은 성격 이면에는 소극적인 면모도 있다.
자기 어필이 중요한 시대에 소극적인 성격이 약점이 될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타인을 배려하고 염치와 체면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은 혼자 오래 생각하기 때문에
결정할 때 실수할 가능성이 적고 실행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그 소극적인 성격이 약점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 이면의 강점 요소를 찾아내 강화하고 특화하면 되기 때문이다. “




사물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능력 없이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내는 일류 화가는 있을 수 없다. 창의적인 스토리 텔러는 공상의 대가이다. 세상의 모든 창의성은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시각에서 시작된다. 내향적인 아이들의 혼자만의 시간, 상상의 시간은 창의력을 키우는 최고의 자양분인 셈이다.



내향적인 아이는 태생적으로 양심에 민감하고 평온하다. 갈등을 회피한다. 강하고 유능한 두 사람이 자기주장만 하다 일이 교착 상태에 머무는 일은 허다하게 볼 수 있다. 반면 한 둘의 온순한 피스 메이커가 상황을 중재하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이끈다. 내향적인 아이들은 사회성이 부족해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경청하고, 화합하는 능력으로 오히려 일이 더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윤활유 역할을 한다. 성공한 사람들이 ‘강하고’ ‘추진력있고’ ‘카리스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겸손하고’ ‘본질에 집중하고’ ‘경청하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딸아이에게....



진작 아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걸

육아, 교육 공부를 더 치열하게 할 걸

걱정과 염려로 받아들이지 말 걸

무한함을 인정하고 더욱더 칭찬할 걸




그리고 나에게도...


‘짜친’ 성격으로 빠른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은 나를 수고했다 위로해주자.

지금이라도 내 장점을 아껴주자. 사랑해주자.

앞으로의 인생에서 내 장점이 극대화된 결과물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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