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은 움직임을 유도하는 뇌의 활동 기제가 다르다.
외향적인 사람은 보상과 성취에 반응하고, 내향적인 사람은 확실한 것에 반응한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행동하기 전에 돌다리를 두드리고 완전히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 비로소 움직인다. 생각이 정리되기 전에 말을 함부로 뱉지 않는다. 상황을 다 둘러보고 움직이니 행동이 굼뜨다. 완벽하고 확실한 것을 추구하니 신중하고 꼼꼼하다.
딸아이는 특히나 더 신중하고 조심성이 많은 아이였다. 어찌나 스스로의 안전을 잘 챙기는지 어릴 때부터 안전사고에 대해서는 걱정할 일이 적었다. 학교 준비물도 빼뜨리지 않도록 스스로 철저를 기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언제나 느리고 굼떴다. 특히 인지적인 면에서 걱정이 많이 되었다. 대한민국처럼 속도 지상주의 사회에서 남들보다 몇 년씩 늦게 발달하는 걸 지켜보기 어려웠다. 평균의 아이들보다 훨씬 느리게 가는 아이를 보며 ‘내 딸아이는 참 신중하네’라고 마음을 다잡기 쉽지 않았다. 이기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불안감을 조성하는 우리 사회에서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덧셈 뺼셈, 구구단쯤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미 숙지한 초등학교 5학년 어느 날, 정원이는 여느 날처럼 만화책을 읽고 있다.
“엄마 내가 왜 이렇게 늦게 읽는 줄 알아?”
“아니, 왜 늦게 읽는데?”
“대사를 세면서 읽거든. ‘미루야 나와 함께 과거 세계로 갈래?’라는 대사가 있으면 3+2+2+2+3+2를 더하는 거야. 그래서 한 페이지 읽는 데 시간이 걸려. 지금까지 만 이천자 셋어.”
만화책을 읽고 또 읽더니 이제는 더 이상 할 게 없으니까 글자 수까지 세면서 읽는다.
“엄마 한 자릿수를 다섯 번 이하로 더하는 문제를 내봐”하기에 일부러 높은 숫자로 “7+9+8+6+9”하고 내자 1초 안에 “39!”하고 정답을 맞춘다. 계속 문제를 냈다. 아무리 한 자릿수라지만 어른도 한참 생각해야 하는 셈을 1~2 초 안에 해내는 게 신기했다. 원리를 묻자 7과 9를 더할 때 9를 3과 6으로 나눠서 7+3을 10으로 만들어 놓고 나머지 6으로 16을 만든다. 다음 숫자인 8은 4와 4로 나누어 16+4=20을 만들고 나머지 4로 24를 만든다.
수학 박사 박왕근은 『수학이 안 되는 머리는 없다』에서 구구단을 가르쳐서 셈을 빨리하게 하는 것보다 숫자를 더하고 빼는 단순 계산을 무한 반복해서 원리를 깨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이렇게 딸은 단순 덧셈을 무수히 반복한 후 스스로 수 분할 개념을 터득했다.
확실히 알기 전에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남들보다 몇 배는 느리고 몇 배는 굼뜬다. 무식하리만큼의 단순 반복에 집중한다. 그렇게 확실히 기초를 다지면 비로소 움직인다. 그래서 신중하다. 그래서 기초가 탄탄하고, 그래서 말 한마디에도 신뢰가 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느리지만 토대가 튼튼하니 금새 허물어지지 않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사회생활을 돌이켜 보면 돌진하는 사람보다 신중하게 숙고하는 사람과 있을 때 편안하고, 성과가 좋았다.
늦된 아이들의 느린 속도는 신중함에 따르는 부산물이다. 이 아이들은 오래 숙성되고 발효되어 비로소 영양도 맛도 풍부해지는 잘 익은 김치 같은 아이들이다. 아이가 느리고 답답할 때 ‘신중하군’ ‘기초를 튼튼히 쌓고 있군’ 하고 최면을 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