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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X Writing Lab Dec 24. 2019

느린 아이들의 비범함; 완벽주의

늦된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조그만 실수조차 대범하게 넘기지 못하고 과도하게 예민한 광경을 많이 목격할 수 있다. 



딸아이가 두세 살 무렵 생애 첫 블록 놀이를 하는데 다섯, 여섯 개쯤 올리면 우르르 무너지는 블록을 보며 얼굴을 화르르 붉히며 폭풍같이 울어댔다. 다시 하자 또 무너지고, 다시 불같이 화를 낸다. 몇 번을 하더니 블록을 다 집어던지고는 그 이후로 다시는 블록 쌓기를 하지 않는다. 



많은 육아서나 심리서에서 작은 실수를 대범하게 넘기고, 실수에서 배우고 발전하며, 새로운 시도나 도전을 즐기라고 권유한다. 내향적인 아이들은 이 기준과 반대이다. 조그만 실수에 어쩔 줄 모르고, 예사롭지 않게 분노한다. 작은 실수를 못 견디니 걱정이 많다. 당연히 새로움을 피하고 익숙한 것을 선호한다. 



내향적인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이 대목이었다. 



느린 것은 그런대로 견딜 수 있었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 들지 않고, 익숙한 자신의 틀에 머무르는 모습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아이의 완벽주의 성향이나 실수를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를 문제가 아니라 내향적인 아이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객관적인 성향으로 받아들이자 아이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완벽주의적인 성향이야말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드는 동력이다. 세상의 모든 깊이와 완성도는 외골수적이고 못 말리는 집착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아무도 보지 않는 작은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고려하는 집착에 경의를 표한다. 



서해안 천일염과 프랑스 게랑드 소금의 차이를 알고, 소금 한 꼬집이 만들어 내는 차이를 변별할 만큼 예민한 미각을 가진 셰프만이 세계적인 요리사가 된다. 소금 1g의 차이가 내는 미묘한 풍미를 간직한 음식에 우리는 기꺼이 큰돈을 지불한다. 수십만, 수백만 줄이나 되는 프로그램 언어를 눈 빠지게 바라보며 조그만 오류도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쿨하지 못한’ 개발자 덕에 버그 없는 프로그램을 즐긴다. 



우리는 완벽한 결과를 찬양하지만 그를 뒷받침하는 예민하고 꼼꼼한 태도를 마주하면 쿨하지 못하다고 비난한다. 인생을 즐기며 살라고 조언한다. 




인터넷 회사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던 사회 초년생 시절, 당시 한국 최고의 웹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을 한 적이 있다. 클라이언트는 마감 기한을 종용하며 빨리 일을 끝내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이 분은 여전히 조그만 점 하나를 여기 찍었다 저기 찍었다 하며  일을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클라이언트와의 사이에서 너무 난처해서 제발 진도 좀 나가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그랬더니  “신은 디테일에 있다”고 답을 주셨다. 다른 사람에게 이 점 하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본인에게는 산처럼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때 이 분이 디자인한 웹사이트는 그 해 대한민국 최고의 웹 사이트로 선정되었다. 








관점을 바꾸자. 작은 차이마저 다르게 받아들이려면 예민하고 섬세할 수밖에 없다. 별 것 아닌 듯이 보이는 글자 하나, 점 하나, 동작 하나가 이 아이에게는 태산처럼 큰 차이이다. 완벽한 것에 환호한다면 완벽을 추구하는 과정도 받아들이자. 이 아이들은 세상의 완벽함, 깊이를 만들어 내는 주인공이다. 




새로움에 도전하고, 몇 달 후 다른 분야로 이동하는 것은 한 우물을 파는 행위와 거리가 멀다. 천성적으로 높은 기준을 타고난 아이들이다



잘 안된다고 온갖 예민함을 발산하며 오열할 때 ‘실수해도 괜찮다’고 말하지 말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고도 하지 말자. 

‘정말 높은 기준을 가졌구나’, ‘완벽함을 추구하는데 잘 안돼서 속상하구나’, ‘완벽 성향을 가졌으니 뭘 하던 최고가 될 거’라고 칭찬해주자. 



세심하고 예민한 작은 완벽주의자들은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골방의 오타쿠가 아닌 자신감 넘치고 진지한 장인, 전문가로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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