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적인 가족의 일상

by UX Writing Lab

남편, 나, 딸아이로 구성된 우리 가족은 바깥 일정을 마치면 즉시 집으로 돌아온다. 용무가 분명할 때만 사람을 만난다. 셋이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지만 ‘지정된 가족 대화’ 시간 외에는 꼭 필요한 말이 아닌 이상 별로 대화를 하지 않는다.




- 남편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책을 읽거나, 관심 주제에 대한 영상을 보며 일을 한다. 좋아하는 간식을 홀짝거리며 먹는다. 젊을 때는 별다방, 콩다방을 열심히 드나들었는데 이제는 본인이 내린 커피가 가장 맛있다며 집에서 커피를 내려 먹는다. 하루만 보 걷기를 꼭 실천한다. 밖에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닌 이상은 대부분의 일을 집에서 해결한다.




- 나는 새벽 기도와 발레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낸다. 카페나 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가끔 ‘진짜’ 사람들과 만나 일장 수다를 떨고 나면 기분 좋은 흥분과 쾌감을 느끼지만 이틀 연속으로 하면 몸도 힘들고 즐거움이 떨어진다.



하루 일과는 스스로 짜 놓은 일정에 의해 빡빡하게 돌아간다. 매일 같은 일을 하지만 다른 세상을 만난다. 같은 글을 읽어도 받아들이는 내가 다르고, 매일 식사 준비를 하지만 철마다 달라지는 식재료나 레시피로 변화를 느낀다. 일상이 깨지면 잠시 자극을 받지만 곧 일상이 그리워진다.


말보다는 글로 소통하는 것이 편하다. 글을 쓰면서 나도 몰랐던 내 생각을 깨닫는다. 반복되는 일상이 가장 자유롭고 풍부하다.




- 딸아이는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아~~~ 집이다~~’ 하며 방문을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문 닫아 잠그고 혼자 있으면 사춘기라는데 우리 딸은 1학년 때부터 문을 닫아 자신을 단절시켰다. 반항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혼자만의 시간이 소중한 것이다.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만화책을 보기도 하고, 때로는 비즈 공예를, 때로는 바느질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발레나 피아노 학원, 최소한의 숙제 시간을 제외하면 단 한순간도 아낌없이 시간을 보낸다. ‘사람’ 친구는 없다. 홀로 산책을 하며 만나는 동네 길고양이, 바위, 조약돌, 연못의 개구리가 친구다. 방학에는 두세 시간의 예체능 수업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자유시간을 가지는데 그나마도 놀 시간이 없다고 원망한다.




- 여행이나 일주일에 한두 번씩 지정된 가족 대화로 소통의 시간을 가진다. 이전이나 이후나 활동은 다르지 않은데 느낌은 다르다. 일주일 사이에 생각이 자랐기 때문이다.



여행에서도 ‘함께’를 강요하지 않는다. 어른들이 원하는 걸 하라고 하거나 ‘의미 있는’ 걸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이의 의견만 따르지도 않는다. 되도록 셋이 함께 좋아하는 장소나 활동을 고르지만 의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각자 원하는 것을 선택한 후 돌아가면서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선택한 시간을 존중한다.







매일 같은 일상이지만 매일 변화한다. 사람과의 만남이 즐겁지만 한 달에 한두 번이면 족하다. 주제 없이 사교만을 위해 만나는 자리는 되도록 자제한다. 나는 ‘진지하지 않은’ 사교성 모임에 어울리지도 않고 에너지 소모가 빠르다는 걸 중년이 되어서야 알았다. 덕분에 딸의 사교성을 키워야 한다는 부담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그렇다고 우리 가족이 말이 없거나 숙맥인 것은 아니다. 남편은 학생을 가르치고, 나도 서너 시간을 삼십 분처럼 흘려보낼 수 있을 정도로 수다에 일가견을 가진 사람이다. 유머러스하고, 진지하고, 집중하고, 경청한다. 대화보다는 대화를 나누기 위한 소재나 생각을 만드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것뿐이다.




나의 빛나는 순간을 돌아보면 항상 깊이와 진지함이 함께 했다.




가벼운 자리에서 진지함은 어울리지 않지만 진지한 자리에서는 특유의 책임감과 꼼꼼함으로 남다른 것을 만들어낸다. 여럿과 함께 있을 때는 존재감이 없을 때가 많지만 둘, 셋이 모이는 자리라면 다르다. 빠르게 내용을 숙지하는 사람은 아니겠지만 꼼꼼하고 신뢰가 가서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할 사람을 떠올릴 때 나를 떠올릴지 모른다.




신중해서 일을 그르치지 않는 사람.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낼 것 같은 사람,
내 마음을 잘 이해할 것 같은 사람.
많은 말을 하지 않지만 한번 내뱉는 말이 힘이 있는 사람.




그렇다. 바로 내향적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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