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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X Writing Lab Apr 23. 2020

30년대생 우리 아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나도 작가다 공모전

“내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어” 



몇 년 전까지 아빠는 술을 마시면 이 말씀을 하셨다. 




아빠는 태평양 전쟁의 기운이 감도는 1938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셨다. 


아빠의 고향 충남 논산 상월면은 집의 모습은 변했지만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오밀조밀 배치된 마을터가 그대로다. 지금도 살고 계신 그 논산집 베란다에서 언덕을 따라 좌우로 펼쳐진 마을을 내려다 보면 주변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시원하게 바라다 보이는 산과 전답들이 아빠의 할아버지대까지 다 그 집안의 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바르지 않은 가정 교육은 부자 3대를 못가게 한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너른 땅을 물려받은 자손들은 술로, 방탕으로, 도박으로, 유희로 모두 날려버렸다. 그리고 아빠가 물려받은 것은 집안 살림에 아랑곳 않고 술과 방랑을 즐기던 아버지, 가장을 대신해 어떻게든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했던 어머니, 동생들, 그리고 어릴 적부터 양 어깨에 얹혀진 장남으로서의 책임감. 


다섯 살 때부터 장작을 구하려 나무를 하러 다녀야 했고, 끼니를 떼우기 위해 동이 틀 때부터 날이 저물때까지 작은 몸을 쉼없이 움직여야 했다. 이웃 마을 부잣집에서 공짜로 떡국을 나눠준다는 소문에 몇 십 리 산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그나마 요기라도 할 수 있으면 감사했다고 한다. 먹을 것이 전혀 없던 보릿고개 시절에는 나무 뿌리, 껍질을 캐어 먹었다. 


여든이 넘는 아빠는 아직도 “배고픈 것만큼 힘든 건 세상에 없다”고 말씀하신다. 배가 고플 때마다 어릴 적의 모습이라도 떠오르시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배고픈 느낌을 싫어하신다. 


배부른 것은 바라지도 않아. 맛있는 것도 바라지 않아. 그저 세 끼 밥만 먹으면 소원이 없으셨단다.  인권이나 존중의 개념이 전혀 없었을 60 년대 군대 시절을 "나는 좋았다"고 하신다. 그 이유는 훈련이나 체벌은 일상과 별로 다르지 않은데 걱정없이 세 끼 밥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담배를 태우지 않게 된 것도 군에서의 경험에서 시작한다. 병사들에게 무료로 지급되던 담배는 귀중한 것이기 때문에 떡과 같은 특식으로 바꿔 먹을 수 있다고 하셨다. 특별한 기회를 놓칠 리 없던 아빠는 담배가 지급되면 특별 간식을 먹을 생각에 설레였다고 하신다. 


아빠의 삶은 세 끼 밥을 먹기 위한 투쟁이었고, 자식이 생기면서는 자식 또한 밥 걱정없이 살게 하게 하겠다는 바램으로 이어졌다. 굶지 않으려는 아빠의 노력은 인생 전반부의 화두였고, 그 처절한 노력은 보상을 받아 어느 시점부터 그 목표는 존재 가치를 상실했다. 







70대 들어 아빠는 유독 “인생을 글로 남기고 싶어”, “술을 먹어 그런지 자꾸 까먹어", "이제는 옛날 일이 기억이 안나”를 반복하신다. 그러면서 “신방과 나온 네가 내 글 좀 써줄래?”하고 부탁을 하셨다. 나는 신방과와 글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잊을 만하면 반복되던 부탁에서 아빠의 간절함을 볼 수 있었다. 


어디 글 쓰는게 쉬워. 나도 아빠 어린 시절을 잘 알지 못하는 걸. 나도 생활이 있다고. 


차일 피일 미루어 보지만 아빠를 자주 찾아뵙고, 살갑게 대하는 이상의 딸로서의 사명 같은 것이 점점 나를 짓눌렀다. 




아빠가 글로 바라는 것은

후회없이 살았다는 것. 열심히 살았다는 것.

그 삶이 아빠의 인생과 함께 날아가지 않도록 잡아두고 싶은 것이다.

스스로의 인생을 정성스레 매만져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 써보자. 



아빠 생전에 아빠 이야기를 쓰고 알리지 않으면 내 평생 후회할 것 같다. 



아빠가 이 글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를 바랄 리 없잖아. 

최고의 명문으로 후세에 길이 길이 보존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테잖아. 

그저 아빠의 삶을 서술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를 기록하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1930년대생 우리 아빠 이야기를 브런치에 연재하고 알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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