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대한민국 혼담사 2

by UX Writing Lab

신랑의 집에서 신부의 집으로 사주를 적은 사주단자를 보내면 혼인이 정해지고, 곧 혼례일을 잡는다. 사주단자가 들어가는 순간 혼인을 치르기 전 이미 여자는 '결혼한 여자' 취급을 받게 된다.



이제나 저제나 혼례일이 올까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혼례일이 잡힐 생각을 안하고 백석 마을 엄마는 남편 잃은 과부마냥 동네의 눈초리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



1년이 지나고 도저히 더는 기다릴 수가 없다고 판단한 외할아버지는 아빠가 거처하던 서울로 출동하셨다.



어릴 적 서울 종로에 살던 내가 논산 시골 집에 갈 때 비포장 도로를 1시간 쯤 포함해 4~5 시간은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로부터 이십 년도 더 전이니 논산에서 서울까지는 지금 미국 가는 것만큼이나 오랜 여행이고 없는 살림에 대단한 지출이다.







첫 독대에서 외할아버지는 아빠를 만나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지금 우리 **가 혼례일을 잡지 못해 난처하다. 우리가 언제까지 기다릴 수 없으니 빨리 날을 잡는 것이 좋겠다." 하자



"어르신, 저희가 결혼해서 함께 살 공간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은 형편이 되지 않지만 형편을 만들어 보려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같이 살 전세방 한 칸, 전화 한 대 놓을 때까지만 기다려 주십시오. 1년이면 됩니다."라고 대답하셨단다.



보아하니 서울에 변변한 거처 하나 없이 사는게 보이고 허튼 짓 하는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는지 외할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수긍을 하고 서울까지 간 보람도 없이 집으로 터덜 터덜 돌아와야 했다.



IMG_0808.JPG 재래식 된장, 청국장, 고추장으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치르는 궁골 식품. 궁골 마을의 유일한 산업이자 중심




그렇게 약속한 1년이 지나갔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아직까지도 혼례일은 잡힐 생각이 없었다.



외할아버지 다시 한번 서울로 출동하신다. 아빠의 대답은 이번에도 같았다.



"면목이 없습니다. 전세방 하나 전화 한 대 놓을 때까지 1년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외할아버지는 마침내 폭발하고야 말았다.



"이 자식 어디서 수작을!!! 너같은 놈한테 내 딸 보낼 생각 없으니까 이 혼례 당장 때려쳐!!!"


하는 호통에 아빠는 무릎을 꿇고 무조건 혼례일을 보내겠다고 약속을 하고 외할아버지를 돌려 보냈다.







그렇게 혼례일이 정해지고 양가에서는 결혼 준비로 한창이었다.



이번에는 혼례일 일주일, 5일, 3일 전이 되어도 서울에 있는 신랑은 본가로 돌아올 기미가 안보였다.



3일 전에는 오겠지, 이틀 전에는 오겠지, 전날에는 오겠지...


전날 밤까지 신랑은 나타나지 않았다. 늦게 도착한다는 것을 사실을 엄마쪽 집안에만 알리고, 본가 동네에는 아무 말도 안해서 본가는 난리가 벌어졌다.



신랑이 안오는 거 아녀... 사고난 거 아녀.... 결혼 깨지면 어쩔껴...


안절 부절 어찌할 바 모르며 동동거리셨다.



결혼식 당일 새벽에 도착한 아빠.



전날 저녁까지 할 일을 다 하고 나서야 미리 불러둔 택시를 타고 밤새 고향까지 달려 온 것이다.



새벽에 도착한 신랑을 보고 온 동네 사람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미리 맞춰둔 한복을 부랴 부랴 껴입히고는 다시 한달음에 백석 마을로 달려가면서 결혼 임파서블 작전은 아슬아슬 성공하고야 말았다.




아빠는 지나가는 소리 한 마디 허투로 하는 법이 없는 분이다.



외할아버지에게 전세방 한 칸, 전화 한 대를 말했고, 안그래도 하루를 36시간 처럼 쓰던 아빠가 1년의 시간을 요구했지만 그 기한이 확 줄어들자 외할아버지는 "미처 갖추지 못해도 혼인 먼저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뜻이었을테지만 "본인이 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아빠에게는 이제 하루를 48 시간, 60 시간처럼 써야 자신의 말을 지킬까 말까 한 "무한 도전"의 나날이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따라서 결혼식 따위로 금쪽같은 하루를 날려버릴 수는 없었을 테고
전세방 한 칸, 전화 한 대를 마련해 놓고 신부를 들이겠다는
본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피말리는 노동과 절약을 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두 분의 결혼식은 그렇게 치뤄졌지만 낭만이고 행복이고 뭐시기고 없이 정신은 비몽 사몽에, 서울에 두고 온 일 걱정으로 결혼식에 제대로 집중하기나 했을까 무척 궁금하다.



사극에서 보면 신랑 신부가 첫날 밤을 치르러 방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손가락에 침 묻혀서 창호지에 소심한 구멍 하나 내고 엿보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손가락으로 구멍 하나 내는 게 아니라 아예 창호지를 찢어 버렸단다. 먹고 살기 바쁘고 흥미 거리도 없던 그 시절 아마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로맨스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엄마 아빠의 결혼식에서도 사람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로 그 순간!!! 외할아버지는



"이 서방은 어제 밤까지 힘들게 일하다가 혼인을 치른 사람이네. 이 서방 피곤해서 빨리 쉬어야 하니까 모두들 돌아가시게" 해서 동네 사람들의 김을 다 빼버렸다는 후문이...



어릴 때 돌아가셔서 외모 외에는 다른 기억이 없는 외할아버지인데, 엄마가 들려주는 이런 말 한 마디 한 마디로 그 품성이 조금씩 그려진다.



그렇게 아빠는 큰 외삼촌, 작은 외삼촌과 술 두서너 잔 독대하는 정도로 처가 식구와 인사하고는 아마 첫날 밤이고 뭐고 죽은 듯이 잠들지 않았을까 싶다.



IMG_0788.JPG 4남매 대가족의 전통 입맛을 책임지는 궁골의 가마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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