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대한민국 혼담사 1

by UX Writing Lab

어찌 됬든 제대를 한 아빠는 상경해서


세 끼 밥을 먹으면서,
자신과 가족이 살아갈 길을 모색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생활 전선에 나서게 되셨다.




첫 번째 했던 일은 가구 장인의 수하로 들어가 가구 제작의 일을 배운 것이다. 꼭두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살인적으로 부려먹던 시절인데 그렇게 일을 했지만 2년 동안 한 푼의 돈도 받지 않으셨단다.


그래도 불평없이 그 일을 했던 것은, 세 끼 밥을 주었기 때문에.



문제는 일이 힘든 것이 아니라 그 일에서 장래가 안보이는 것이었다. 이 일로는 먹고 살기 어렵겠다, 가족을 부양하려면 다른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촉이 온 것이다.



그 당시 대한민국은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자고 은행잎 갖다 팔고, 국민들 소변 갖다 팔고 광부로, 간호사로, 건설업자로 국민들을 전세계의 3D 일꾼으로 파견하며 험한 일 마다 하지 않고 나라에 외자를 유치하는 한편, 그 돈으로 국내 경제의 기반을 다지며 전자, 통신, 건설업이 부흥하기 시작한 시절이다.



아빠는 미래의 가능성을 전자 통신 업계에서 보았고, 그 일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셨단다.



지금처럼 돈내고 학원에 가서 배우는, 또는 대학가서 배우는 건 아니고, 그 회사에 들어가서 말단 심부름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당시 전쟁 뒤끝으로 버려진 군수 물자들이 많았는데 이걸 깨끗이 닦고 수리해서, 멋드러진 말로 '리폼'해서 내다 팔고 다시 쓰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못만드는 게 없었단다. 전화기도 만들고 라디오도 만들고 전축도 만들고.



노하우도 없고 기술도 없고 지식도 없는
해방 후 대한민국 자본 경제는 이렇게 자리를 잡아간다.




IMG_0797.JPG 논산집 궁골 마을의 모임 장소.






그렇게 자리 잡기 위해 서울에서 밤낮의 구분도 없이 앞으로만 매진하던 아빠에게 30~40 분 정도 떨어진 옆 마을, 백석리에 살던 엄마와 혼담이 오가게 되었다.



외할아버지는 그 마을의 이장이셨다. 그 당시 마을의 이장은 권세가 대단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6.25 전쟁이 나서 인민군이 마을 재판을 하는데 마을 이장은 재산을 전면 몰수하고, 처형을 하거나 고문을 해서 몰락시킬 정도의 권세를 누렸다. 아빠가 계셨던 궁골 마을의 이장 또한 그 때의 희생자로 평생 앉은뱅이로 사셨다.



하지만 그런 권세에도 외할아버지가 인민군의 처형을 피해갔던 이유는 성품이 꼿꼿하고 공정했고, 사적인 이익을 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는 굶고 살지는 않았다는 것 보니까 집은 가난했어도 먹고 살 정도는 되었다.



외할아버지는 사람의 됨됨이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그래서 혼담이 오가는 상대가 있으면 주선자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몰래 잠행을 해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꼭 살펴 보셨다.



우리 아빠와 혼담이 오갔을 때도 외할아버지는 궁골까지 찾아와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여기 *** 총각이 있죠? 어떤 사람이에요? ..... (조잘 조잘 조잘) "



철저한 뒷조사를 하셨고 뒷조사 결과 "***는 어디 갖다 놔도 살 아이"라는 평을 듣고 마음을 굳히셨다.



몇 일 후 엄마 아빠와 다방에서의 첫 만남.



"이름이?"

"어디 사세요?"

"나이가?"



몇 가지 신상만 어색하게 묻는 시간이 지나자,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도저히 모르는 부끄러운 처녀 총각은 30 분이 지나자 "이제 그만 일어나자"며 헤어졌다.



IMG_1190.JPG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엄마 아빠의 젊은 시절



"어땠니? 결혼 추진해 볼까?"

"어른들 뜻대로 하세요"


라는 아빠의 대답으로 혼담이 확정지어졌다.






지금까지 엄마가 수도 없이 말하고, 들을 때마다 감탄하는 외할아버지 최고의 에피소드는 용인술이다.



외할아버지는 용인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사위 며느리 혼담이 오고 가면 철저하게 뒷조사를 하셨고 이 사람이 자신의 자손을 굶기지 않고 성실하게 잘 살아갈 사람이라는 평을 듣고야 혼담을 추진했다. 훗날 사업을 시작한 사위에게 직원으로 일할 동네 청년을 보낼 때에도 동네 사람과 연을 끊을 지언정 성실하고 똑똑한 청년만을 골라 보내셔서 아빠 사업의 든든한 밑거름을 만들어 주셨다.


그 결과 할아버지의 일곱 자녀는 어느 한 사람 빠지지 않고 넉넉하고, 인생을 뒤흔드는 큰 어려움 없이, 부부 사이 좋고, 자녀들과 화목하게, 아직까지 서로를 아끼고 좋아해서 만나기만 하면 몇 날 몇일을 모여 서로 깔깔대며 지내신다.


왜 외가 식구들은 모두가 원만하고 평탄한가 궁금했었는데 외할아버지가 사람을 선택하는데 얼마나 신중했는지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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