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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Aug 24. 2018

카페에서 뭘 사야할까

공간을 파는 초미니 임대업

  나는 매일 카페를 간다. 할 일이 있는데 집에서 집중이 잘 되지 않을때도 가고,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릴때도 간다. 카페가 워낙 많아서 갈 곳은 많지만 결코 아무데나 가지는 않는다. 그 날 땡기는 곳에 가야만 두 세 시간, 길게는 네 시간을 재밌게 놀 수 있다. 지금이야 카페를 고르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렇지 않을때는 하루에 세 군데를 돌아다니며 방황 할 때도 있었다. 겉보기엔 번지르르해도 커피가 정말 맛이 없을 수도 있고 커피는 맛 있지만 소음이 심해 노는데 집중이 어려운데가 있다. 나에게 제일 중요한 건 자리구도다. 좋은 자리의 요건은 전기 콘센트가 있고 단체 테이블과 먼 곳, 그리고 고독한 곳을 선호한다. 그 다음은 맛이다. 맛은 제일 중요하진 않지만 큰 요소다. 이왕 카페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을건데 커피가 맛있다면 금상첨화니까. 하지만 그런 곳은 내 입에 맛있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맛있어서 인기가 많다.


 어떤 날은 맛은 다소 별로지만 조용하고 분위기가 좋은 카페를 간다. 그 날의 기분이 맛보다는 분위기를 사고 싶기 때문이다. 조용한 곳에서 혼자 글을 쓰거나 책을 읽기도 하고 취미인 프랑스자수를 하기도 한다. 카페는 나에게 일터이자 놀이터다. 지금 이 글도 카페에서 쓰고 있다. 이 집은 커피와 음료, 심지어 빵까지! 다 맛있다. 한가지 단점이 있다면 노래소리가 시끄럽다. 그럼에도 찾아오는 이유는 맛과 분위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석자리. 조금만 서두르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지금도 음료를 더 시켜가며 두시간 째 차지 하는 중이다. 집에 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안다. 집에가면 글을 쓰거나 일을 한다는것이 여간한 의지로는 힘들다는 것을.


 별 생각 없이 들어간 카페에서 어쩌다가 주문한 커피가 맛있을때는 오늘 하루를 내가 잘 계획한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외출 준비를 하며 썬블록을 바르는 순간, 가방을 챙기는 동안 그리고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까지도 어느 카페를 갈지 고민하기 때문이다. 카페에 들어서서 자리에 앉는 순간 느껴진다. '오늘의 카페'를 잘 고른것인지 아닌지. 오늘 나의 철저한 카페 계획은 이 단락의 첫번째 문장을 쓸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이런 저런 이유가 있지만 내가 카페에 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카페라는 공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들과 익숙한 얼굴의 바리스타, 커피냄새 그리고 잠깐 빌리는 한 평남짓의 작은 공간. 떠날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 그 공간을 너무 사랑한다. 어떤 날은 빨리 일어나고 싶어 엉덩이에 좀이 쑤시지만 해야할 일을 다 끝낼 때 까지의 그 지리한 과정을 혼자 끙끙 앓아내는 공간. 혼자 왔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작은 고독감을 즐기게 만들어주는 그 공간을 사랑한다.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카페는 타 지역에 있다. 바로 경북 안동에 있는 '카페라이프'.

안동에서 오랜시간 자취를 하며 지낼 때 알게 된 곳이다. 나는 그집의 커피와 자몽에이드, 베리베리스무디, 생강라떼, 당근케이크와 말차치즈케익, 레몬컵케익을 좋아한다. -그냥 메뉴 전체라고 말해도 좋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건 센스있는 사장님의 신중한 메뉴선정과 배려다. 기분이 좋은 날 신나게 카페에 들어서면 신메뉴를 드셔보시라며 빵이나 음료를 권해주시고, 일을 하고 다소 지친 표정으로 가는 날은 조용히 주문만 받아주신다. 물론 감정이 쉽게 드러나는 나의 특성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손님에 대한 애정이나 배려 없이는 힘든 제스쳐다. 한 번은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와 전공이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과 전공에 큰 애정이 없던 나로써는 그녀의 이야기에 내 직업이 새롭게 보였다. 실제로 그녀의 영향으로 친환경 급식 레시피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현장에 적용 하기도 했다. 그렇다, 내가 가장 애정하는 카페는 단순히 커피와 공간, 나의 시간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의 커리어에도 영향을 준 셈이다.


 그녀가 나를 기억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생강라떼를 메뉴에 넣기 전 여러번 맛을 보여주셨다. 네시간이 꼬박 걸린다는 그 생강라떼가 어찌나 맛있던지. 생강향이 강할 때도, 조금 부드러운 풍미를 낼 때도 항상 엄지를 치켜드는 나의 평가가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으리라. 이미 그 지역을 떠나온지 4년이 되었지만 그 지역에 갈때는 일부러 그 카페에 들러 당근케익과 생강라떼를 마신다. 맛은 신중하고 사장님의 인상 좋은 표정은 여전하다. 오늘 아침 진짜 가고 싶었던 카페가 따로 있었지만 너무 자주 가는 것 같아 자제하고 차선으로 선택한 카페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가짜 행복을 즐기는 사람이다. 누굴 속이려고. 커피를 마저 마시면 그곳으로 자리를 옮겨야겠다. 그리고는 달콤한 빵을 주문해서 먹어야지. 그리고 행복해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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