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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Aug 28. 2018

2등을 원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나요? 나만 믿고 따라와.

  2012년 연말, 마음이 맞는 직원들끼리 모여 카페에 앉아 조용한 연말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그 당시 가장 좋아하고 존경했던 직장상사가 직원들에게 내년 계획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이미 계획을 짜 놓은 상태였으므로 당당하게 얘기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그 계획이 그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모르고.. (눈물을 훔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은 2018년이다. 말하고 보니 그렇게 오래 걸린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어찌나 애가 닳던지. 사람들에겐 "아마 평생을 찾아도 못 찾을 수도 있겠지요." 하고 허세를 떨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반드시 찾을 거야. 내가 좋아하는 '일'을. 취미생활이나 여가가 아닌 '일'을. 그래서 그걸로 먹고 살 거야. 꼭. 꾸준히 연구하고 찾다 보면 분명히 그런 일이 하나는 있을 거야." 라며 자신을 채찍질하곤 했다. 어떤 해에는 먹고사는 일이 당장의 과제로 떨어져 까무룩 잊어버리고 살았다. 하지만 마음에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아직 그 일을 찾지 못했다며 괴로워하곤 했다. 내 평생의 과제를 떠안은 기분. 얼른 그 일을 찾아서 열심히 달려가도 모자랄 판에 아직 찾지도 못했네 라며 스스로를 괴롭혔던 시간. 그러다가 나는 그 과제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몇 년간의 지루한 직장생활이 계속됐다. 내 직업에 회의를 느끼고 오직 서비스직이 아닌 다른 직업에만 관심이 있었다. 최대한 사람들을 피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일반 사무직으로 옮기고 싶었지만 어느새 한국 사람들이 '결혼 적령기'라 부르는 나이가 되니 다른 직업군으로의 이직은 만만치 않았다. 어쩌다 운 좋게 면접 기회를 잡아도 마음에 드는 회사를 찾기는 하늘에 별따기였다. 아는 분의 소개로 우연히 잡은 면접은 결국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나의 경력을 살린 직종의 회사였다. 그런데 이번엔 한 가지가 달랐다. 급여가 많은 것이다. 내가 사는 중소도시에서 이 정도의 급여를 받으려면 대기업을 가지 않고는 힘들었다. 결국 나는 다시 서비스 직종에 발을 담갔다. 처음부터 급여가 일을 하게 만든 계기이긴 했지만 그 돈은 내가 힘들 때마다 나를 붙잡아세웠다. 여태껏 경험해왔던 것과는 다른 신선한(?) 충격도 돈으로 위로하며 버텼다. 힘든 하루였을 때는 비싼 저녁을 사 먹고 주말이면 백화점을 가서 갖고 싶은 것을 샀다. 마치 상처를 치료하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대일밴드로 계속 덧칠 하는 느낌. 하지만 대일밴드 밑이 계속 아렸다. 상처가 곪아 터졌다. 나는 상처가 더 심해지기 전에 그만두기로 했다. 9개월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나왔다.


 힘든 회사 생활에서 나 자신을 갉아먹었다는 사실에 괴로웠지만 아무리 나쁜 경험이라도 좋은 점 한 가지는 있다. 퇴사 전 동료 한 명과 퇴근 후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었다. 우리는 업무가 아닌 서로의 꿈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그가 묻지도 않았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풀어진 나는 오랜 꿈을 이야기했다. 작가 되고 싶다며 글 쓰는 일에 대해 얘기했다. 이야기를 하며 내 얼굴에 미소가 만연해지는 걸 느꼈다. 그 외에도 다양한 활동들을 이야기하며 행복한 나 자신을 발견했는데 모두 글 쓰는 일과 관련된 일이었다. 유레카! 좋아하는 일을 드디어 찾은 거였다. "저 주임님이랑 얘기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2012년 좋아하는 일을 찾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 일을 제가 찾았네요?!" 꿈속의 솜사탕이 이런 맛일까? 나는 부러워하는 주임님의 얼굴을 뒤로한 채 한 껏 기뻐했다. 오래전 계획했던 일이 실현되었단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기나긴 여정 끝에 찾은 내 꿈에 한 발짝 다가서게 해 준 이가 한 명 있다. 그는 국내 영화평론가 중 일인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이동진 씨다.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에서인지 어딘가에서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반드시 최고가 될 필요는 없다. 노력만 한다면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을 하며 먹고사는 정도는 이룰 수 있다."는 요지의 이야기다. 토씨 하나 정확하게 기억해내기는 힘들지만 그 이야기는 나에게 다소 충격적인 조언이었다. 어느 분야에 발을 들이면 1등 만을 요구하는 세상에 길들여져 도전하는 자체가 엄청난 과제로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도전만 하면 1등이 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헐어빠진 말이지만 2,3,4등이 있어야 1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고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조언은 후에 내가 글쓰기에 도전하게 해주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내 꿈은 위대한 소설가가 되는 것에서 '글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여러분, 최고가 아니라고 해서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하고 싶다면 지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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