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아방이

아반떼HD

by 단아한 삶
아방이와의 마지막 시간



나의 전 남자친구들은 모두 이 차를 거쳤다. 낡고 작은 차 안에서 사랑을 속삭이기도 했지만(선팅도 안 되어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지나가시던 분들 죄송합니다.), 이별을 고한 적도 있고, 썸남을 몰래 숨어 기다릴 때도 함께 했었다. 집에 간다던 썸남의 차가 왜 길가에 세워져 있냐고. 옆에 차를 대고 몇 시간이 지나니 나타난 그는 알고 보니 소개팅을 하고 온 거였다. 나쁜놈.



새 차도 아니었고 좋은 동네에 가면 ‘아방이가 운전도 못 하네’라며 아저씨들의 비웃음을 당하기도 했던 나의 낡은 차는 그렇게 나의 20대와 30대를 함께 했다. 내가 서울에서 원하는 직업을 가지면 커리어 우먼이 되어 하이힐에 멋진 자동차를 타고 마천루 같은 도심을 쏘다닐 줄 알았는데.

원하는 직업을 얻었는데도 초보 운전에게 하이힐을 신고 운전은 부담이었고 커리어 우먼은 개뿔 그냥 어릴 때 보던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가 되어 있었다. 삼순이는 사랑에라도 떳떳하고 당당하지 심지어 그 당시 삼순이보다 나이도 더 많아진 나는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했을 때, 남자 때문에 힘들 때, 가족과 싸워서 집에 들어가기 싫을 때 차 안에서 펑펑 눈물을 흘려댔다.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봐 준 게 내 아방이었다.



돈이 여유가 있으면 집 앞에서 손 세차를 맡겼다. 엄마 차, 내 차 나란히 손 세차를 맡기고 기다리는 동안 옆에 있는 카페에서 인절미 빙수를 먹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남에게 맡기는 여유는 인절미 빙수처럼 달콤했다. 그때 이후로 수입이 줄어들어 엄마의 소나타도 나의 아방이도 자동 세차만 했지만.



공간 지각력과는 담을 쌓은 나는 아방이로 다른 차들을 무참히 긁어댔다. 남의 차는 수리에 렌트까지 보험 처리를 해 주면서 아버지와 나는 추운 날 길에 세워진 ‘찌그러진 차 펴 드립니다.’ 트럭에 가서 몇 시간을 떨고서야 야매로 수리를 받아올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수리 한 번 못 해줬는데 아방이는 떠나는 날 나에게 몇 년 전에 찾다가 포기한 머리핀을 선물로 주고 간 끝까지 너그러운 녀석이었다.



직장이 가까워지면서 차가 필요하지 않게 되자 자동차세가 나오기 전에 아방이를 팔자는 의견이 나왔다. 엄마가 쓰다가 물려준 나의 첫 차 아방이는 엄마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함께해 그 사업이 망할 때까지도 함께 했다. 그래도 아방이가 붕붕 서울 시내를 날아다녔을 때가 가장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을 때이므로, ‘돈복 있는 차’로 칭송받던 아방이는 나와 함께 하면서는 그다지 큰돈을 벌어다 주지는 못했다.



차를 처분하는 게 어렵고 복잡할 줄 알았더니 중고차 앱만 설치하면 간단했다. 중고차 전문가라는 사람은 모질게도 꼼꼼히 구석구석을 확인하고 미련 하나 남기지 않고 아방이를 데리고 가 버렸다. 아방이를 견적 받고 보내는 날엔 마치 먼 길 떠나는 막내인 양 모든 가족이 나와 기념사진을 찍고 배웅했다.

중고차 견적을 받고 있는 아방이. 이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어찌나 서운하던지.


마지막으로 아방이를 팔고 남은 돈은 250만원. 아방이는 외국으로 간다고 했다. 어느 나라에서 누가 어떤 용도로 우리 아방이를 쓰고 계실지 모르겠다. 우리 아방이는 서울 시내 큰 외제차들과 덤프 트럭 사이에서도 쫄지 않고 나를 지켜줬다. 나의 어린 날의 추억을 모두 알고 있는 아방이가 새로운 주인을 만나 더 넓은 세상에서 더 새롭고 멋진 추억을 쌓으며 붕붕 행복하게 달리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새로운 주인님 우리 아방이 입 무겁고 너그러운 멋진 놈입니다. 사랑 많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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