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야기
히아신스 구근을 만지작거린다. 땡땡한 구근의 질감과 어르신의 주름지고 푸른 핏줄이 보이는 얇은 손등 피부가 대비된다. 1월 하순 되면서 겨울바람이 매섭게 분다.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가장 두꺼운 옷을 걸치고 모자와 장갑, 마스크까지 하고 집을 나서야 하는 날씨이다. 이런 날씨에 꽃대가 비치는 히아신스 구근이라니. 어르신은 화분을 이리저리 돌려 보면서 모양새를 살핀다.
히아신스는 추식구근으로 가을에 둥근 뿌리를 심어 봄에 꽃을 볼 수 있는 식물이다. 화훼농가는 1월 중순부터 구근 식물들을 판매하기 시작한다. 자연적 개화 전에 꽃 시장에서 판매하려는 마케팅전략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곧 입춘이 오기 때문이다. 겨울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의 소비자에게 구근식물은 물 주기가 쉬워 안전하게 꽃까지 볼 수 있도록 하는 가성비 좋은 화분이다.
한 겨울인 요즘, 꽃대를 올리는 히아신스 구근을 볼 수 있는 것은 촉성재배를 하였기 때문이다. 촉성재배할 때는 온도와 빛의 양을 개화 조건에 맞게 생체리듬을 만들어야 한다. 구근이 제철인 듯 착각하도록 하여 꽃을 피우려 꽃대가 올라오게 한다. 화훼농가에서 촉성재배는 야외에서 자연을 즐기지 못할 때나 자연개화보다 이른 꽃 마중을 하고 싶은 소비자들에게 많은 식물을 판매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되었다.
이번 주 주간보호센터 원예 수업은 히아신스 구근을 준비하였다. 구근을 설명하는데 양파 같다고 하며 꽃이 피는 화분이라 믿지 못한다. 꽃대가 살짝 비치기는 하지만 아직 어린 구근이라 그럴만하다. 구근을 만져 단단한 느낌을 느끼도록 한다. 히아신스가 꽃을 다 피우고 나면 단단했던 구근이 푸석하게 힘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꽃이 다 피고 난 구근을 다시 만져보도록 할 것이다. 할머니 가슴처럼 푸석해진 구근을 만져보면 꽃을 피우는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들었는지 촉감으로 느낄 수 있다. 때로는 그런 모습이 위안이 되기도 한다.
히아신스의 개화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그림을 준비하였다. 코로나로 복지관 수업이 취소되었던 시기, 중단된 일상의 불안을 떨쳐 버리려 그렸던 식물 세밀화 그림이다. 색연필로 그린 히아신스 세밀화를 흑백으로 출력하였다. 지금 양파 같은 구근의 꽃이 어떻게 피는지 미리 인지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림의 원본으로 색을 보여주고 흑백으로 프린트된 종이에는 그림을 기억하며 색 사인펜으로 칠하게 하였다. 인지가 어려운 분은 테두리만 따라 그리도록 하였다.
내 그림에 어르신들의 손길이 더해져 다양한 히아신스가 탄생하였다. 그림을 따라 그리면 꽃 모양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고 실제로 꽃이 피었을 때 더 반가워지리라. 여러 색을 이용하여 완성한 그림은 각자 개성이 드러나는 걸작이 되었다. 식물 이름과 어르신 이름을 쓰도록 하여 완성도를 높였다. 한문으로 때로는 영어로 이름을 쓰고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은 책 한 권 읽고 즐거워하는 우리의 표정과 같다.
화분에 히아신스를 옮기고 이끼를 덮어 흙이 보이지 않게 하였다. 히아신스는 봄에 한 번만 꽃을 피운다. 큰 꽃대에 수십 개의 꽃봉오리가 달려 향을 피우다 말라간다. 시든다고 물주기를 그치면 안 된다. 때로는 구근 안에 다음 꽃대가 나올 수 있어서이다. 어르신께 동생이 나올 수도 있다고 그리고 꽃피우느라 축난 몸 회복하기 위해 봄이 끝날 때까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줘야 한다고 전했다. 꽃대가 시들어 꽃은 없어도 잎은 생육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꽃이 사라진 히아신스 잎은 내년 다시 꽃 필 날을 위해 광합성을 하며 지친 구근을 돕는다. 볼품없는 시간이지만 찬란한 회복의 시간이 된다.
어르신이 심은 구근의 생육상태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열 살 정도 시기이다. 따뜻한 곳에 1주일 정도 있으면 청년이 되어 꽃에서 향기가 난다. 봄이 지나고 나면 예쁘던 히아신스도 어르신과 같은 나이가 된다고 설명하니 너무 빨리 늙는다고 큰 숨을 내쉰다. 너무 따뜻한 곳에 둔 히아신스는 웃자라 꽃대가 옆으로 구부러지기도 한다. 노지에서 올라오는 히아신스는 웃자라는 일이 없는데 사람 곁에서 핀 꽃은 제 속도를 구분하지 못한다. 꽃이 빨리 피고 시드는 것을 피하려면 실내 온도가 높지 않은 서늘한 곳에 키우면 된다. 그렇다고 세탁실이나 잘 보이지 않는 베란다에 두기만 할 수 없는 일. 가족들이 있는 시간에는 잘 보이는 곳에서 키우다 자리를 비울 때는 시원한 곳에 옮겨 두면 꽃을 며칠이라도 더 길게 볼 수 있다.
히아신스는 다년생이다. 봄에 한 번 꽃피우고 땅속에서 겨울을 보내며 저온을 견딘 후 다시 봄이 되면 새순이 나온다. 화분에서 키운 히아신스 구근은 장마를 지낸 후 가을에 다시 화단이나 큰 화분에 심어둔다. 그렇게 추운 겨울동안 휴면을 한 뒤 봄을 기다리면 된다. 어르신들은 히아신스가 회춘을 한다고 똑똑하네 하셨다. 안타까움의 큰 숨이 다시 채워지는 듯 가벼운 목소리다.
어르신은 히아신스 화분 속 구근을 만지며 잘 커라는 말을 연신한다. 색 사인펜으로 활짝 핀 히아신스를 그려 보며 알게 된 어린 히아신스에게 또 다른 내일을 함께 할 거라는 희망을 말하고 있다. 회춘을 간절히 원하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우리에게 늙고 젊기를 반복하는 히아신스 구근의 모습은 생기를 전한다. 어린 구근을 심은 어르신 가슴속에 수백 번의 색연필이 지나 채워진 히아신스 꽃봉오리가 활짝 피어 나에게 향기를 전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