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을 위하여

식물이야기

by 조이 영


산책길에 만난 겨울나무 밑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2월의 나무는 아직 싸늘한 기온을 품고 있어 잿빛이지만 달라 보였다. 해가 닿는 부분에 구석구석 생명들이 조그맣게 올라온다. 나무를 둘러싼 이끼들이 먼저 푸르러지고 있다. 언 땅이 녹아 물올림을 준비하는 듯 투박한 나무껍질 틈으로 햇빛색이 스며들어 있다. 색조화장품에서 말하는 웜톤이라고 해야 할까. 분명 겨울나무색은 아니다. 보고 있어도 잘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색, 놓쳐버리기 쉬운 2월의 색이다.


2월이 되면 떠오르는 일이 있다. 몇 년 전 2월 어느 날, 고개 들어 달력을 보니 중순이 되었다. 날수가 짧아 더 아쉬운 2월이 얼마 안 남았다니.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뭔가 놓친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수첩을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손끝까지 힘이 빠져 맥이 풀렸다. 전년에 알게 된 글쓰기 강좌를 봄 학기에 등록하려고 다짐했는데 접수기간을 놓친 것이다. 서둘러 도서관 프로그램을 검색하니 접수 마감의 빨간 배너가 반짝이고 있다. 새해가 되면 꼭 신청하려 했는데 어느새 2월이 반이 지나고 그들은 이미 시작 준비를 끝냈으리라. 게으르게 산 것은 아닌데 중요한 것을 놓치는 허당 같은 모습에 미간 주름이 깊어졌다. 어디 그뿐인가. 그 이후에도 학교 텃밭 강사 신청, 주말농장 분양공고, 하물며 당해 회원자격을 정하는 협회들 회비기한까지……. 3월에 시작되는 각종 활동의 모집을 얼마나 놓쳤던가.


2월은 그런 날들인가 보다. 안으로 변화하는 달. 변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시간이고 준비가 출발이 되는 그런. 하얀 종이에 밑 색을 깔듯 눈에 띄지 않지만 바탕이 되는 그런 달, 2월. 시간은 우리를 항상 앞서서 가지만 유난히 더 빠르게 지나가는 달이다. 새해 1월과 비교되어 2등 같기도 한 2월의 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한해의 전반기 때로는 하반기까지도 놓칠 수 있기에.

2월 한낮의 수선화




중요한 기회의 시간을 충실히 하기 위해 2월이 되면 꽃 시장 나들이를 추천한다. 꽃 시장까지 가기 번거롭다면 동네 꽃집이어도 좋다. 노지에서 4월에 꽃 피는 구근이 2월에 판매되고 있기 때문이다. 2월을 잘 보내기 위한 준비물이라는 마음으로 히아신스. 수선화, 무스카리 구근들을 집에 들여놓으면 어떨까. 지난가을에 심어 봄에 꽃을 보이는 추식구근을 키우며 도망가는 시간을 앞질러 보는 것이다. 구근꽃의 화려한 색과 향과 함께하는 2월이라면 우리의 봄은 그만큼 더 길어지지 않을까.

청년 히아신스



꽃을 보는 것은 새 출발을 계획하고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깨우는 좋은 방법이다. 바짝 얼어 있는 추위에 활짝 펴 있는 꽃은 실망스럽더라도 털어버리고 다른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길은 있고 놓친 일들은 계획하지 않은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구근은 꽃이 시들어도 여러 해 살아가니 가성비도 좋다. 심리적 만족감까지 채워주는 소비이니 가심비까지 좋아진다. 집안을 밝혀 주는 꽃을 보고 있다면 잔잔한 봄의 소리를 누구보다 더 먼저 알아채 어느 하나 놓치지 않는 2월이 되지 않을까.

수선화와 히아신스

봄이 끝날 무렵이 되면 구근의 잎까지 시들해진다. 수고한 구근의 시든 잎을 자른 후 집 주변 땅에 심어 놓자. 다음 해 2월 우수쯤 땅을 뚫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처음 구근을 사 왔을 때와 다른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꽃대도 작고 꽃도 작아 초라해 보이기도 하지만 강인함을 가지고 있다. 해마다 2월에 구근화분을 하나씩 사서 키우다 보면 화훼농가에서 곱게 준비된 모습과 야생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다. 흰 눈에 쌓인 땅에 조용히 올라와 있는 구근꽃대는 귀한 생명의 신비이다.


아직 밖은 추운 겨울 같지만 땅속에서부터 얼음이 녹고 있다. 2월 중순이 지나면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절기 우수가 온다. ‘우수 경칩에 대동강 풀린다’는 속담처럼 우수쯤에 비가 내리면 언 땅이 녹는다. 땅 속 얼음이 녹아 생긴 빈틈으로 싹이 트는 시기이다. 암흑 같은 땅 속에서 실낱같은 빛이 비치는 곳으로 가는 전진의 시간이었으리라.

세상을 향해 전진하는 히아신스들



꽃을 위해 찬 눈과 비를 맞으면서 견디는 시간, 우리들의 시간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두려운 일, 힘든 일이 눈앞에 있고 때로는 앞을 막아서지만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다. 서툴고 놓치기도 하여 늦되어 보이지만 한발 내딛는다. 빛이 스며드는 그곳을 향해서.


애썼다. 히아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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