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을 꺼내는 순간
모든 것이 진짜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처럼 출근했고
평소처럼 퇴근했다.
회사에서는 원고를 읽고
문장을 고쳤다.
문장들은 쉽게 고쳐졌다.
어색한 단어를 지우고
문장의 순서를 조금 바꾸면
글은 금방 매끄러워졌다.
하지만 내 삶은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고
나는 결국 한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대학 동창이었다.
우리는 같은 과였고
졸업 후에도 가끔 연락을 하던 사이였다.
무엇보다
이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저녁에 만났다.
회사 근처의 작은 카페였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얼굴이 왜 그래?”
나는 잠깐 웃었다.
“그래 보여?”
“응. 무슨 일 있어?”
나는 컵을 잠깐 만지작거렸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말했다.
“나… 그날 집에 일찍 들어갔거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잠깐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근데…
걔가 있더라.”
그녀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누가?”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미주.”
그녀도 아는 이름이었다.
같은 대학을 다녔고
같은 동창 모임에 나오는 사람이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같이 있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네 남편이랑?”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미쳤다.”
나는 그 말에
이상하게도 조금 웃음이 났다.
미쳤다.
그 말이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나는 컵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 아무 말도 못 했어.”
그녀가 나를 바라봤다.
“그냥 나왔어.”
카페 안은 평소처럼 시끄러웠다.
사람들이 웃고
잔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은 여전히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가 물었다.
“그래서 지금은?”
나는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같이 살고 있어.”
그녀의 눈이 조금 커졌다.
“뭐?”
“그 사람은 내가 안다는 걸 몰라.”
나는 천천히 말했다.
“말을 못 하겠더라.”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컵 속 커피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상하지.”
“…”
“화도 안 나.”
나는 잠깐 웃었다.
“그냥…
좀 부끄러워.”
그 말을 하고 나서
나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잠깐 생각했다.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었다.
잘못한 사람은
내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너 잘못 아니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말은 이상하게도
내 안으로 잘 들어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