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ter is coming
행복한 중년, 노년을 보내기 위해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옷이 있다. 바로 유쾌함과 우아함과 지혜로움의 외투이다.
첫째, 유쾌함 : 즐겁고 상쾌하다.
정확한 이유를 분석할 순 없지만 함께 있으면 즐겁고 밝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루 종일 불쾌한 기분이었더라도 이런 사람을 만나면 저절로 웃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유쾌한 사람들의 삶을 CT 찍듯이 여러 장의 단면으로 해부해보면 예상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저렇게 매일 즐거운 사람은 분명 인생도 굴곡이 없고 힘든 일도 없었을 거야.’
하지만 그들의 삶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매사에 얼굴 찌푸리며 염세적으로 사는 사람만큼이나 꼬여있고 힘들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을 쓰신 85세 이근후 교수님이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유쾌함과 책 구석구석에 녹아있는 유머감각을 보면 정신과 의사로서 별 어려움 없이 인생을 살아온 분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 교수님은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당뇨, 고혈압, 허리디스크, 관상동맥협착증 등 일곱 가지 병을 앓고 있다. 유년 시절에는 지독한 가난과 전쟁을 겪어야 했고 청년시절에는 4.19와 5.16 반대 시위에 참여해 변변한 직장도 없이 네 아이를 키워야만 하셨다. 이러한 혹독한 인생의 시련 속에서 이 교수님은 일상의 작은 기쁨과 웃음이 인생을 다시 살아볼 만한 것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다고 한다. 이러한 깨달음이 바로 우리가 그의 인생과 글에서 유쾌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이유인 것 같다. 마흔 정도가 되면 아무리 애써도 노력해서 바꿀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한다. 이것은 패배 의식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되 바꿀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체념할 수 있는 지혜와 분별력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인생의 작은 기쁨과 웃음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깨달음이 마음의 여백을 만들고 내 주변에 즐겁고 상쾌한 바람을 불어넣는다. 이것은 마흔 이전에는 얻기 힘든 소중한 카리스마이다. 유쾌함의 카리스마. 40대가 되면 반드시 만들어 입기 시작해야 하는 소중한 외투이다.
둘째, 배려 : 도와주고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쓰다.
배려의 아이콘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으신가? 나는 국민 mc 유재석 씨가 떠오른다.
물론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기에 그에 대에 가지고 있는 정보는 피상적이며 어쩌면 편견일 수 있다. 하지만 간간이 들려오는 미담사례들과 방송에서 비추어지는 성실하고 상대방을 표시 나지 않게 도와주려는 말과 행동이 그를 배려심이 많은 사람으로 인식하게 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늘 좋은 기운을 가진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 것 같다. 유재석 씨를 보고 있으면 중국의 양갱에 대한 일화가 떠오른다. 양은 양고기이고 갱은 국을 뜻하는데 중국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전하며 배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한다.
중국 춘추시대, 중산의 왕이 벌인 잔치에 사마자기라는 선비가 초청을 받았다. 연회에서 양고기 국을 나눠먹을 때 국물이 부족하여 사마자기에게 그 몫이 돌아가지 못했다. 이에 사마자기는 임금이 자신에게 수모를 주려고 일부러 국을 주지 않은 것으로 오해하고 초나라 초왕을 부추겨 중산을 치게 하였다. 이에 중산국은 전쟁에 패하고 왕은 도망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뒤에서 그를 끝까지 호위하며 따른 두 명의 병사가 있었다.
“그대들은 왜 나를 따르는가? 그대들도 살길을 도모하라.”
“저희 아버님이 아사 직전 왕께서 내어주신 찬 밥 한 덩이로 목숨을 건질 수 있으셨습니다. 왕을 지키라는 아버님의 유언을 지키려 이리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중산국의 왕은 크게 슬퍼하며 다음과 같이 탄식하였다.
‘내가 양고기 국 한 사발에 나라를 망하게 하였고, 찬 밥 한 그릇에 목숨을 건졌구나!’
억지로 하는 배려는 자기 자신도 곧 지칠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별 감흥을 주지 못한다. 연말 즈음 들려오는 연예인들의 셀프 미담사례들이 별로 마음의 울림을 주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배려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고 은근하면 은근할수록 더욱 좋다. 그 당시에는 모르고 있다가 세월이 흘러 전혀 예상하지 못한 누군가가 나를 위해 뭔가를 마음 써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안의 경중에 상관없이 그에 대한 깊은 존경심 같은 것이 생기고 때론 절대적인 신뢰가 싹트기도 한다.
유비가 관우와 장비의 마음을 훔친 것도 이런 은근한 배려심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이런 우러나오는 배려심은 결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타인의 아픔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그것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될 때 가능한 것이다.
나의 배려에 대한 대가가 없어도 타인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로 만족할 수 있는 큰 그릇이 되어야 진정한 배려가 몸에 베이기 시작한다.
40대가 되면 반드시 만들어 입어야 할 옷은 배려의 외투이다. 이 옷은 내 주변을 좋은 사람들의 진심 어린 애정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강력한 마법 외투이다.
셋째, 지혜 :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이 있다.
유쾌함과 배려가 구찌와 샤넬이라면 지혜는 에르메스이다. 혹독한 겨울이 다가올 때를 대비해 준비해 두면 좋은 명품 중에 명품 외투이다.
지혜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는 단색의 실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색깔이 섞여 있는 실로 예술적으로 짜여있다. 따라서 위에 쓰여 있는 사전적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힘든 여러 가지 자질들이 포함되는 개념이다.
심리학자들은 지혜가 지식을 통합하는 능력. 경험에 대한 깊은 이해심뿐만 아니라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관용적 태도를 포함한다고 한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전개되는지 잘 알아차릴 뿐만 아니라 중용을 지킬 줄 안다. 또한 그들은 인생의 문제들이 결국엔 해결될 수 있다는 낙관성과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평정심을 유지했던 경험을 소중히 여긴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데 지식은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는 있으나 충분하지 않다. 지혜로운 이들은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능력, 지적인 겸손함. 삶에 대한 균형감각, 사려 깊은 자아성찰 능력을 갖고 있다.
지혜의 외투는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으나 경험 자체가 자동적으로 지혜가 되진 않는다. 혹독한 인생의 경험 속에서 무엇인가를 배우려 노력할 때 얻어지는 진흙 속의 진주 같은 것이다.
따라서 20,30대의 많은 성공과 실패를 겪고 숨 고르기를 하는 마흔이야 말로 이 진주를 찾을 수 있는 적기일 것이다.
아름다운 실을 가지고 있어도 외투로 엮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혜의 외투는 누구나 탐내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카리스마이다.
무려 8년 동안 전 세계인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끌다 2019년 8월 시즌8을 끝으로 막을 내린 전설적인 미국 드라마가 있다. 바로 <왕좌의 게임>이다.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허구의 세계가 7개 이상 나와서 시즌1을 보는 내내 나라 이름과 가문, 가문 별 등장인물 이름을 외우느라 바빴지만 참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그 가문들 중 북부 지방 윈터펠을 다스리는 스타크 가문이 나오는데 이 가문의 가언은 'Winter is coming'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지역은 겨울이 오면 몇 백 년 동안 지속되기 때문에 항상 혹독한 겨울을 대비하며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인생을 사계절로 비유할 때 노년은 겨울이다. 건강도 재정상태도 지금보다는 못할 것이고 사랑하던 사람들도 내 곁을 떠날 확률도 높아진다.
끝나지 않을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선 좋은 외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40대는 바로 이 외투를 준비할 수 있는 최상의 시기일 것이다.
"Winter is com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