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6월이 기한인 거 아시죠? 집주인도 전세 사는 입장이라 부득이 기한이 되면 집에 다시 들어가셔야 한다는데 새로 집을 좀 구하셔야겠어요. 지금 나가시면 더 좋고요.”
정부의 임대차 3 법이 발표되고 나서 왠지 불안했는데 예감이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 전화를 끊고 급하게 이곳저곳 매물을 알아보았으나 이미 전세 값은 작년 대비 30퍼센트 정도가 올라있는 상태였다. 급하게 영 끌 해서 집을 사야 하나 싶어 주택 값을 들여다봐도 두 달 전보다 터무니없이 올라버린 아파트 가격에 마음만 상할 뿐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나를 괴롭힌 것은 올라버린 전세 가격뿐만이 아니었다.
‘진작 재테크에 신경 썼더라면 좋았을 텐데.’하는 자책과 이미 집을 사서 차곡차곡 재테크를 잘하고 있는 친구들과의 격차가 이제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인 것 같은 불안감이었다.
43세가 될 때까지 사실 돈에 별 관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재능도 없었다. 영문과를 졸업하고 늦게 의대에 가서 인턴, 레지던트 생활까지 다 마치고 나니 벌써 35살이 되어 있었다. 봉직 생활을 해서 겨우겨우 학생 때 진 빚을 청산하였다. 그 후 외국에 나가 활동가 생활을 했기 때문에 또래에 비해 모아놓은 돈이 별로 많지 않다.
하지만 며칠 전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별 탈이 없었다. 재정상태에 대해 별로 걱정이 없었을 뿐 아니라 타인의 부도 부럽지도 않았다.
얼마든지 성실하게 살아가면 부자는 되지 못하더라도 조금씩 모아서 언젠가는 대출 없이 전세를 얻고 또 언젠가는 집을 살 수도 있으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인생에는 집이나 은행 잔고 외에 더 소중한 가치들이 많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했다. 모아놓은 재산이 하나도 없어도 꿈에 투자하고 이상에 투자한 지난 세월이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지난 3일 동안 나의 그런 가치관에 의문점을 품게 되었다.
‘현실을 생각하지 않고 너무 이상만 좇으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이제 책임져야 할 아이도 있고 더 이상 젊지도 않은데 지금처럼 쫓기듯 집을 나가야 되는 현실이 슬프지 않은가?’
‘전문의 땄을 때부터 좀 더 재테크에 관심을 갖고 무리해서 집부터 샀으면 지금쯤 많이 올랐을 텐데.’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괴롭혔다. 문득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며 머리카락을 감다가 레바논 난민 텐트촌에서 만났던 시리아 사람들이 생각났다.
아마 12월 중순쯤이었던 것 같다. 난민캠프에 옴 진드기가 퍼져 어른부터 아이까지 극심한 가려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리는 팀을 꾸려 각 지역 난민촌을 방문하여 진단을 하고 옴 치료제를 나누어주고 방역교육을 하는 등의 일로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도 조금 외진 골짜기에 있는 난민캠프에 진드기 치료를 하고 난 후 사용할 새 옷과 매트리스 등을 싣고 도착했다. 평소와 달리 텐트들이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안쪽에 위치해 있어 일일이 차에서 내려 물품들을 릴레이식으로 날라야 했다.
레바논 베카 벨리 골짜기의 겨울은 몹시 추웠다. 옷을 껴입었지만 너무 추워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차에서 내리자 발갛게 상기된 꾀죄죄한 얼굴의 아이들은 허술하고 낡은 티셔츠만 입고도 씩씩하게 우리를 반겨주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가지고 간 옷과 약품과 매트리스 나르는 것을 도와주려 애쓰며 연신 ‘함두릴라’를 외쳤다. (함두릴라는 아랍어로 고맙다는 뜻이다.)
천진난만하고 밝은 표정은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수염을 길게 기른 어르신들도 젊은 청년들도 모두 기쁜 표정으로 도와주었다.
특히 옴에 걸려 가려워하는 젖먹이를 안은 젊은 엄마는 자신의 피부병은 잊은 채 아기를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표정이었다.
나중에 동료들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이곳에 정착한 난민들도 시리아에 살 때는 다들 직업도 있고 집도 있고 땅도 있는 부유하고 안정된 삶을 살 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갑자기 일어난 내전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이들은 함두릴라와 인샬라( 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 )를 입에 달고 살아간다.
왜 머리를 감는 도중 이 기억이 떠올랐는지 그 연관관계를 알 수는 없으나 문득 집이 없다고 해서 슬퍼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이 집에서 나가게 되더라도 새로운 집을 찾을 수 있는 정도의 형편은 되지 않은가. 직업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도 있지 않은가.’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느라 갖고 있는 많은 것들이 주는 행복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니. 지난날 재테크를 못한 것이 바보 같은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 감사하지 못하는 내 맘이 어리석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까지 태산처럼 무겁던 마음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한결 가볍고 다시 열심히 감사하며 살아가야겠다는 희망이 생긴다. 지금 뭐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나에게 다시 살아갈 용기를 일깨워 준 시리아 친구들에게 너무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