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지켜라!

마가복음 7장 묵상

by 이야기소녀

쉬운말성경, 톰슨주석

<참고>
※성경을 읽을 때는 무조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셨을까?',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셨을까?'라는 관점에 집중하기!
※오늘 나에게 하시는 말씀은?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가?


마가복음 7장

1절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교사들 몇 명이 예수 주변에 모여있다가,



6~8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위선자들이여! 예언자 이사야가 당신들 같은 위선자들을 두고 예언한 말이 옳소.
곧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마음은 내게서 아주 멀리 떠나 있다.
거짓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사람이 제멋대로 만든 규칙만을 가르치고 있다.'
이와 같이 당신들도 하나님의 계명은 버려둔 채, 사람들이 만든 전통만을 고집하고 있소."




10~12절 모세는 말하기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고 또 '어머니나 아버지를 욕하는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라고 하였소.
그런데 당신들은 '부모님께 드리려던 것이 고르반, 즉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이 되었습니다.'하고 부모에게 말하기만 하면 다 되는 줄로 알고 있소.
이처럼 하나님을 핑계로 당신들은 부모에게 아무것도 해드리지 않기 일쑤요.

: 예수님은 인간의 전통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떻게 저버렸는가를 확연히 드러내 보이기 위해 구체적 예를 드시고 계시다.




15~16절 무엇이든 밖에서 여러분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들이 여러분을 더럽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들이 여러분을 더럽힙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십시오."




19~22절 보아라. 음식은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뱃속으로 들어가므로 배설해 버리면 그만이다." 이런 말씀을 하심으로써 예수께서는 모든 음식은 다 깨끗하다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 덧붙여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들은 참으로 그 사람을 더럽힌다.
보아라, 악한 생각들은 모두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지 않느냐? 곧 음행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의와 사기와 방탕과 시기와 비방과 교만과 어리석음 등등이다.

: 마음은 인간의 총체적인 것들을 결정하는 인격의 중심부를 말한다.



26절 그 여자는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예수께 애원했다. 그 여자는 헬라 사람으로서 수로보니게 태생이었다.

: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불결하게 여겨 회피하였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천시되었던 이방 여인에게도 신유의 은총을 베푸심으로 폐쇄적이었던 유대주의자들의 태도에 경고를 가하셨다.




27절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내 자녀들부터 먹여야 하오. 자녀들이 먹을 음식을 개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소."

: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 본격적은 이방 전도의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
2. 신앙적 열의를 테스트하셨다.




32~35절 그때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와서는 그에게 손을 얹어 달라고 간청했다.
예수께서 손가락을 그의 양쪽 귀에 넣으시고 그런 다음 손가락에 침을 발라 그의 혀에 대셨다.
그리고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에바다!"하고 명령하셨다.
그러자 그 사람의 귀가 즉시 열리고 또 혀가 풀려서 완전히 듣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
- 귀먹고 말 더듬는 자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상징한다.
영적으로 둔감하여 절망적인 상태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염려는 오직 육적 건전함과 부요함에 집중되었다.
반면 성도들은 육적 불구나 기타 현실적 곤경에서 가급적 벗어나고자 힘쓰되 그것으로 인해 결코 좌절하지는 않는다.
- 예수님은 영육 간의 모든 질병을 치유하는 위대한 의사이시다.
-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대일 만남을 통해서만 치유받을 수 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모함할 구실을 찾으려고 왔다고 한다.

진리를 들으면 아무리 마음이 굳어있는 사람이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텐데,
바리새인들의 행동은 자리와 자존심 지키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바리새인들도 원래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악이 이끄는 길로 갔으니 진리의 말씀을 들어도 한쪽 귀로 들어갔다가 다른 쪽 귀로 빠져나갔나 보다...

주석을 읽으면서
구약에서 주님께서 정해주신 율법을
사람이 악이 이끄는 대로 바꿔놓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동안은 생각 없이 읽은 것도 아닌데
바리새인들이 구약의 율법을 지킬 때 본래 동기를 퇴색시킬 정도로 아주 까다롭게 지켜서
동기는 버리고 형식만 중요시했다고만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오늘 묵상하면서
구약의 율법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바꿔놓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신호등을 지키라고 했는데
차가 없는 것 같으면 자신의 뜻대로 무단횡단을 하는 느낌?!
또 일반종량제 봉투에는 일반 쓰레기만 버려야 하는데 음식물쓰레기도 같이 버린 느낌?!

예시가 적합한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주님이 주신 말씀 그대로를 지키지 않고 변형시켰다.

그러고 보니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가 떠오르는데,
뱀이 하와를 선악과로 유혹하려고 주님이 주신 말씀을 변형시켰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산 안에 있는 선악과만 먹지 말라'라고 명하셨었다. 먹으면 죽을 것이라고도 하셨다.
그런데 뱀은 아담에게 전해 들은 하와를 노려서
'하나님이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며?' 말했고 또 '선악과를 먹으면 죽지 않는다'라고 왜곡시켜서 말했다.

분명 하나님께서 죽는다고 말씀하셨는데,
뱀은 '죽지 않는다'라고 '하나님의 속뜻은 너희가 하나님처럼 되니까 먹지 말라고 하신 거'라고 거짓말로 유혹했다.

이처럼 바리새인들도 주님의 말씀을 자신들이 '하나님 뜻이겠지'하며 마음대로 왜곡시킴에 있다.

물론 성경말씀을 변형시키지 않고 그대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는 일에는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며 실천함이 옳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정욕에 맞게 쓰는 건 옳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말씀을 읽지 않고 주님과의 교제함이 없이, 함부로 '하나님의 뜻'이라며 말하고 행동하고 사람들을 이끄는 사람이 있다면 제일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보통은 무엇이든지 주님께 먼저 아뢰고 서로 대화한 뒤에 이뤄져야 맞는데, 이런 과정 없이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는 삶과 일과 관계는 모두 하나님의 뜻을 변형시킨 뱀과 바리새인들과 같다.

그래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간다.




음식은 더럽지 않다.
마음에서 나가는 것이 더럽다.

더러운 것 중에

염려, 시기심, 괜한 걱정, 미움, 괜한 예민함, 사랑 없는 행동과 말 등등은 모두 마음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물건을 살 때도 필요해서 사는 경우가 있지만,
마음에 들어서 사는 경우가 많다.
필요한데 마음에 들어야 사고
필요하지 않아도 마음에 드니 산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돈 쓰는 게 아깝지가 않고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시간 쓰는 것도 아깝다.

이처럼 다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마음을 수시로 점검해야 악에서 그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을 수 있다.
생각 없이 있다가 악이 감정을 건드릴 때 속수무책으로 넘어져서 마음의 조종실을 넘겨줄 때가 있다.
그렇게 한두 번 넘겨주면 주인이 바뀌게 되는데 그때부터는 지옥 같은 삶이 시작된다.
'남은 잘 사는 데 나만 힘든 것 같다'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돈이나 명예가 인생의 전부이므로 이것이 없으면 살 가치가 없다'는 부질없는 생각이 진짜가 되어버린다.

상대방의 아픔에 무뎌지게 되고 모든 관심사는 '나'에만 초점이 맞춰져서 나 없이 세상이 안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 속에 갇혀버린다.

이와는 반대로 돈과 명예를 추구하지 않더라도 세상과 담을 쌓고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지내는 경우도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케바케다!
균형이 없는 극과 극은 악이 한 결과다.

그래서 하나님을 거치지 않고 행하는 모든 것들은 악하다는 생각이다.
한두 번은 악에 휩쓸려도 다시 회개하고 주님께 자꾸 마음을 맡기면 된다.

더러움이 마음에서 시작되지 않도록
마음을 항상 주님께 맡기고 본인스스로도 말과 행동에 애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27절을 읽을 때마다 적응이 안 된다.
예수님께서 일부러 저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분명 의미가 있으실 텐데,
나 같은 사람에게 저 말을 하셨다면 나는 백퍼 상처받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 수로보니게 여인은 정말 간절한 마음이니까 예수님의 어떤 말씀을 하셨어도 다 받아들이고 인정했을 것 같다.

그게 순교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고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마음 같다고 느껴진다.

어떤 화살이 날아오던지 다 옳다구나 하며 상대방을 지혜로운 말로 녹이는 마음!

나에게 정말 필요한 마음상태다.

이처럼 27절은 마음의 연단을 뜻하기도 하고
이방인의 전도는 이르지 않았다는 뜻을 내포하기도 한다고 한다.





마지막 말씀의 주석이 와닿았다.
나는 '현실적 곤경에서 가급적 벗어나고자 하되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라는 부분이 요즘 잘 안돼서 마음이 다운돼 있다가, 주님께서 계속 마음을 지켜주시고 위로해 주셔서 살아나려고 애쓰는 중이다.

진짜 주님 없이 어떻게 살았나 싶다.
옛 자아 때는 낙심하고 그 감정에 휘둘려서 마음이 지하를 뚫고 들어갔는데, 지금은 낙심을 해도 주님께 달려가니까 내가 살 것 같다.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로는 결코 지하에 간 적이 없다.

오늘도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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