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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소녀 Sep 25. 2024

아모스 1장 묵상(현실과 다른 하나님의 대언)

우리말성경, 톰슨주석


※성경을 읽을 때는 무조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셨을까?',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셨을까?'라는 관점에 집중하기!

※오늘 나에게 하시는 말씀은?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가?



아모스 1장


 

1절 드고아의 목자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해 이상으로 받은 말씀입니다. 그때 유다 왕은 웃시야였고 이스라엘 왕은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었으며 지진이 있기 2년 전입니다.


: 전문적인 선지자 교육을 받지 못한 아모스를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경륜이 돋보인다.

당시 부패한 선지자들과는 달리 아모스는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열정이 있었고 대중들에게 참신한 인상을 줄 수 있었다.



2절 아모스가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크게 소리치시고 예루살렘에서 그 음성을 발하시리니 목자의 풀밭이 시들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를 것이다."


: '초장'은 이스라엘의 풍요를 상징하는데 이 경고가운데 남북왕조가 모두 곤경에 처할 것임이 드러나 있다.



3~5절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메섹이 지은 서너 가지 죄 때문에 내가 그들을 처벌하는 일을 돌이키지 않겠다. 그들이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제했기 때문이다.

내가 다메섹 성문 빗장을 부수고 아웬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을 없애고 벧에덴에서 규를 잡고 있는 왕을 없애겠다. 아람 사람은 사로잡혀 끌려갈 것이다."



6~8절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사로잡은 사람을 끌어다가 모두 에돔에 팔아넘겼다.

내가 가사의 성에 불을 보내 성채들을 불사르겠다.

내가 손을 올려 에그론을 쳐 블레셋의 남은 사람들을 없애 버리겠다."



9~10절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두로의 서너 가지 죄 때문에 내가 그들을 처벌하는 것을 돌이키지 않겠다.

그들이 형제의 계약을 어기고 사로잡은 사람을 모두 에돔에 팔아넘겼기 때문이다."



11~12절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에돔의 서너 가지 죄 때문에 내가 그들을 처벌하는 일을 돌이키지 않겠다.

내가 데만에 불을 보내 보스라의 성채들을 불사르겠다."



13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암몬의 서너 가지 죄 때문에 내가 그들을 처벌하는 것을 돌이키지 않겠다.

그들이 자기 영토를 넓히려고 길르앗의 임신한 여인들의 배를 갈⁠랐기 때문이다.



14절 내가 랍바 성벽에 불을 놓아서 전쟁하는 날, 함성과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는 날에 폭풍 가운데서 성채들을 불사르겠다.


: '회오리바람'은 무서운 심판을 상징.

'폭풍'은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한다고 톰슨은 말한다.




아모스의 뜻은 '짐을 진 사람'이라고 한다.

직업이 양을 치며 뽕나무를 재배하는 목자이고, 선지자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데 예민한 영적통찰력을 가지고 있어서 명확하고 강렬하게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고 한다.




아모스 첫 장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엄청 화나셨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런데 이 화나심 가운데 엄청 이성적이시다.

화나지만 그동안 본 것들을 다 기억해 말씀하고 계시고 이에 대해 심판을 어떻게 하실 것인지도 다 계획하고 계셨다.

오옵!


하나님처럼 적당한 때를 잡고 그때까지 인내하고 계획해야 하는데, 나는 화가 나면 인내한다고 하지만 육의 말이 툭 튀어나온다.

욕은 아니고 비판적인 말!




앗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 침략의 예언되어 있는데, 이때가 이스라엘과 유다의 안정과 번영이 절정을 이루기 전에 쓰였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미래에 대한 말씀을 주실 때는,

대부분 보이는 현실이 예언과 맞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다.

 

'회복'을 말씀하시면

사람 눈에는 현실에서의 변화가 없어서 도저히 바뀔 것 같지 않게 보이고,

'심판'을 말씀하시면 이 아모스 1장처럼 역시 현실이 풍족한데 맞지 않다고 느껴진다.


왠지 '이게 하나님의 방식이신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어떻게 할지 보시는 걸까?

믿음을 지키고 행하는지?

아니면 자기 손으로 하려는지?

안 믿고 세상에 빠져있던지?


여러 궁금증이 들지만 하나님의 한 포인트를 깨달으니 좋다!


지금 현실에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믿음'이 있다면 영적으로는 엄청나게 영향이 일어나 변화의 바람을 불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때가 차면 쓰나미처럼 영적변화들이 밀려와 사람 눈에 보이게끔 현실변화를 이뤄낼 거라 생각이 든다.


'믿음'은 참 중하다!

예수님께서 '겨자씨만 한 믿음이 있어도 산을 옮긴다'라고 하셨다.


지금 처한 환경, 상황에서 자신의 믿음이 보잘것없이 느껴지더라도 아주 가느다랗게라도 붙잡고 있으면 주님께서 긍휼히 또 사랑스럽게 여겨주셔서 하나님의 길로 갑자기 확 이끄실 수 있다.


사람에게는 '갑자기'이지만 주님입장에서는 이미 계획된 일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주님은 심판하실 때 소돔과 고모라처럼 하늘에서 직접 자연재해로 심판을 내리기도 하시지만,

힘센 국가를 통해 심판을 내리기도 하신다.

심판에도 여러 방법이 있는 것 같다.




주석을 읽다 보니

제사장과 선지자의 직무차이가 흥미로웠다.


●제사장: 백성들의 대표자로서 백성들의 뜻을 하나님께 전달하는 중보자!

1.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제단에서 봉사하는 일

2.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일


●선지자: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대언자!


-제사장들은 체제 보수적인 성격을 띠는 반면,

선지자들은 체제 비판적인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행동해야 했기 때문에 결국 상호보완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선지자가 체제 비판적이라는 말에

'다니엘은 비판적 같지 않았는데' 나만의 생각인가 싶다.


그런데 정말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입장으로써 안정의 욕구가 있으니 하나님께 간구드릴 때는 세상에서 잘 살게 해 달라는 내용을 위주로 기도드릴 것 같다.

그래서 보수적일 수밖에 없나 싶기도 하다.


또 하나님 입장에서는

죄를 매일 짓는 사람들을 볼 때에 거룩하면 좋겠으니까 그 죄를 꼬집는 비판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바라는 소망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 이상이 되거나 욕심을 부리거나 또는 마음이 굳고 완악해져 버릴 때를 다 아시니까 이걸 알려줄 사람은 당시에 비판적인 시각으로 꿰뚫어 통찰할 수 있는 선지자가 딱이었나 보다.


그런데 비판정죄를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선지자의 비판적인 성격은 괜찮을까?


아마 '죄를 짓기 위한 비판'은 당근 안되고,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셔서 '거룩을 위한 비판'은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계시받았다고 무조건 비판함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 조심스러워야 하고 하나님께 몇 차례 확인해야 한다고 본다.


또 이 당시에는 왕족이나 모든 백성들이 완악해서  잘 듣질 않으니 대놓고 현실적으로 두르지 않고 말하는 게 가능했는데,

보통 사람이 사람에게 권고를 할 때나 잘못된 길로 가고 있어서 잡아줄 때는 그 사이가 어떤지, 상대방 상태가 어떤지 다 고려해서 현실적으로 대놓고 말할지, 부드럽게 타이르며 말할지 생각해서 조심스레 접근해야 한다.


성령충만해서 상대방의 영적문제가 보이고

나보다 성령충만하지 못한 것 같이 느껴지고

좀 친한 것 같아서

대놓고 가르치듯 세게 말해버리면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일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라 각 사람을 고려해서 다가오시는데,

자신이 상대방을 구할 수 있다는 심산으로 무례하게 대하면 안 된다.


하나님 이름에 먹칠하지 않고 드높일 수 있도록

영적문제가 보일 때는 주님께 기도드리고 고려하고 고려하고 살피고 살펴서 그 사람의 영혼을 위해 천천히 인내하며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도 실수한 부분이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지인을 통해 한 사례를 들었기 때문에도 생각이 나서 쓴다!


묵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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