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추워졌다.
분명히 어제는 덜 어지러웠고 그제는 덜덜 어지러웠는데, 오늘은 어떻게 된 게 더 어지러운 것 같다.
고개를 뒤로 젖히거나 왼쪽으로 돌리면 머리가 아득해지고 내 의지대로 눈초첨을 움직일 수가 없다.
2018년 뇌경색 발병 후, 초반은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었다. 조금만 어지러워도 다시 재발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마음을 졸였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만큼은 아니다.
환절기 때마다 한 번씩 머리가 눈과 같이 돌 때 그 이유가 '환절기' 때문이라는 걸 몰랐는데, 연차가 쌓이면서 깨달았다.
또 기름진 음식은 기름이 조금 빠지고 한두 번 먹으면 괜찮은데,
기름이 둥둥 뜬 국밥이나 국물을 마시면 어지러워지는 효과가 빨리 온다는 것도.
그래서 전자의 이유로는 잠깐 어지럽고 마는데,
후자의 이유로는 적어도 그 효과가 일주일을 간다.
심할 때는 발바닥에서 맥박이 느껴질 정도로 몸이 다시 쇠약해지기도 하고,
몸이 계속 붕 떠 있는 느낌도 들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을 때 비디오 슬로모션을 하듯 시선이 천천히 움직이기도 하고,
눈알이 튀기는 것처럼 톡톡 내 의지와 상관없이 튀기도 한다.
최근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동창을 만나려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참고로 사람은 한 명이다.
하하~
중학교 때는 같은 반이었고 그리 친하진 않았었다.
고등학교 때도 나는 문과, 친구는 이과여서 중학교 때 모임이 있지 않는 이상 만나질 않았다.
그런데 같은 대학교를 가고 같은 동아리를 준비하고 들어가면서부터 친해지기 시작했다.
내 친구는 나보다 성격이 좋다.
비슷한 면도 없잖아 있지만, 그러기엔 나랑 좀 반대인 성향이 짙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대화하길 좋아하고
성격이 단순해서 뒤끝이 없고
지식적으로 정말 똑똑하고
현실 적응을 잘한다.
그래서 나의 못난 면도 많이 참아준 친구다.
이 친구는 참아줬다는 걸 모르고 그저 친구로서 대해준 거겠지만, 그 단순함에 인내가 있었고 나를 계속 잡아준 고마운 이유였다.
그렇다고 모든 과정이 다 화목하고 좋은 건 아니었다.
서로 다툴 때도 있었고 쓴소리를 할 때도 있었지만
친구가 돌부리에 걸려 호랑나비를 할 때
서로 덤 앤 더머 같이 대화를 할 때
저 멀리서부터 친구의 모습이 보여 반갑다고 손을 막 흔들 때
이럴 때마다 너무 좋았다.
나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어서 감사했다.
뇌경색으로 입원했을 때 딱 두 명이 왔었는데, 이 두 명 중에 이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평생 잘해야지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잘하기는커녕 몇 년 전 겨울에 만나려고 했다가 쓰러져서 친구가 119를 부르고 응급실까지 같이 가줬다.
그리고 오늘 하아~
일 년에 한두 번 만날까 말까 하는데 나의 어지러움으로 결국은 약속을 미뤘다.
수요일에 만나기로 했는데, 어지러워서 버스는 못 타니 동네에서는 된다고 했지만 또 오게 하니까 미안했다.
그래서 다음에 볼까 하다가 친구가 금요일날 쉰다는 말에 얼른 보고 싶어서 금요일을 잡았다가 오늘 상태를 보니 더 어지러운 것 같아서 솔직하게 톡을 보냈다.
왜 이렇게 보고 싶었을까?
아마 최근 손절당한 일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여파가 꽤 오래간다.
이제 감정적으로는 괜찮아졌는데, 머리로는 아주 천천히 정리를 하고 있나 보다.
그래서 내 곁에 있어준 친구들을 떠올리게 됐는데,
나를 손절한 지인에게 거절했던 횟수보다 더 자주 거절했던 교회친구나
일 년에 몇 번 만나지도 못하는데 내 건강상태로 인해서 만남을 정해야 했던 이 친구나
이 둘은 내가 건강상 약속을 미뤄도 묵묵히 내 곁에 있어주었다.
새삼 고마워졌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내 생각만 했더라면,
건강 때문에 약속을 취소하고 마음대로 만나지 못하는 지인에게서 자연스럽게 멀어질 것 같다.
그래서 나를 손절한 지인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내가 상대방을 정말 진심으로 친구라고 여긴다면 기다려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보니 건강상태가 이래서도 참 감사하다.
다른 사람들은 '결혼식할 때'나 '망했을 때' 사람관계가 정리된다고 하는데, 나는 '건강하지 못할 때' 정리가 된다.
뭐 부모님 덕택에 살고 있는 거지 혼자였다면 망한 상태기도 하다.
기온 탓, 음식 탓을 돌리지만
결국은 내 탓이다.
그리고 탓해봤자 소용없으니
속 시끄러우니까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 된다.
어제도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감으려고 고개를 숙였다가 빙빙 돌아서 물이 묻어있는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모아 잡고 고개를 퍼뜩 들었다.
그리고는 스스로 토닥였다.
'괜찮아! 괜찮아! 놀라지 마~ 예전에는 어땠어? 어지러워서 아얘 머리도 못 감고 샤워도 못했잖아. 그때보다는 훨 낫지! 괜찮아! 괜찮아! 후우~ 머리를 조금 들어서 오른쪽으로 돌려서 감으면 돼. 오늘은 린스 하지 말고 샴푸만 하자! 잘하고 있어! 괜찮아!'
안 좋은 생각이 들어 눈물이 생성되기 전에 얼른 나 자신에게 폭풍 같은 힐링의 말들을 퍼부었다.
웃기게도 진정되면서 머리를 끝까지 잘 감았다.
할렐루야!
아! 그러고 보니 식단의 이유 말고 환절기의 이유로 어지러울 때마다 생각나는 친구 한 명이 있다.
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응원하는 친구 중 한 명이다.
2019년도에 이 친구에게 큰일이 있었는데 마침 내가 몇 년 만에 연락을 했었었나보다.
이 친구의 아픔을 듣고 나도 내 아픔에 대해서 나누다가 한 가지 팁을 얻었다.
내가 왜 어지러운지 모르겠다고 병원에서도 이상 없다고 하는데 모르겠다고 답답해하니, 이 친구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뇌경색 후유증이라고 생각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환절기 때마다 어지러우면 이 친구의 말이 생각나면서 위로가 되고 있다.
'뇌경색 후유증~'
그래도 초반에는 어지러워서 뭘 보는 게 참 힘들었다.
글을 읽는답시고 성경책을 피면 초첨을 못 맞춰서 책 읽기도 쉽지 않았다.
글씨도 이전의 글씨체는 사라지고 어린아이가 글씨를 배우는 것처럼 성경말씀을 쓰기 시작했다.
진짜 성경으로 재활했다.
많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어지럼증은 계속되나 보다.
아무래도 나태해지지 말라는 신호가 아닐까 싶었다.
이 신호가 없다면 나는 마음껏 먹고 싶은 대로 음식을 먹었을 거다.
피자, 치킨, 라면, 햄버거를 좋아하는데,
라면은 반년동안 끊고 있고
피자는 일 년에 한 번씩 먹는다.
치킨은 아얘 끊었지만 먹고 싶을 때는 닭강정으로 일 년에 한두 번씩만 먹는다.
햄버거도 마찬가지!
저저번달에 라면에 빠져가지고 정신못차리고 짜장라면 두 개를 끓여 먹었더니만
다음날부터 직방으로 어지러워서 그때부터 라면을 끊고 국수로 갈아탔다.
어지러우니 먹는 것부터 절제를 해야 하고,
무거운 마음 또한 절제를 해야 했다.
서운함이 있거나 얄미운 사람들에 대해서도 내 마음에서 보내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더 힘들어지는 것만 같아서!
어지럼을 감당하기도 버거운데
이 서운하고 미운 마음을 어떻게 담고 있겠는가!
내 책상 앞에 큰 지도를 붙여놓고 여러 메모들을 붙여놨었다.
그중에 몇 가지를 적어보자면,
'하나님을 의지하기, 모든 걸 내려놓기!'
'화내서 무엇하리, 짜증내서 무엇하리, 인생은 스쳐가는 것, 알차게 살자!'
'평생 운동! 평생 식습관 관리! 평생 긍정적! 평생 웃기! 목표가지기!'
'내가 나에게 도움이 되게 잘 살았다면 하루의 최선이다. 빡빡한 스케줄이 최선이 아니다.'
기타 등등 많다.
하도 잘 잊어버리니까 이렇게 붙여놔야 한 번씩 읽으면서 용기를 잃지 않고 힘을 낸다.
환절기 때마다 어지러워서 감사하다.
식습관을 잘못 관리했을 때도 어지러워서 감사하다.
이 어지러움에 집중하다 보면
'재발해서 또 응급실에 가야 돼? 그럼 울 엄마가 또 간호해야 하는데 하아~ 하나님 제발 도와주세요'까지 기도하다가,
과거의 내 모습들을 떠올리며 '그래~ 아프려면 아파라. 그래도 고통 없이 가게 해주세요!'라고 놔버린다.
부정적인 마음이 아니라 전자의 얽매인 마음에서 풀어지는 자유로운 마음이다.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
설거지를 할 수 있어 감사하고
반찬을 나를 수 있어 감사하고
성경말씀을 읽고 노트북을 켜서 묵상을 남겨 감사하고
이렇게 글을 써서 감사하고
가족일기를 미리 예약발행을 해놔서 감사하고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톡을 해서 감사하고
따뜻한 차를 마셔서 감사하다.
역시 나는 아파야지만 진심으로 감사하고 현재에 만족하며 기뻐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