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소녀 Oct 03. 2024

내일은 일어날 수 있을까

뇌경색 후유증에 대한 생각 두 번째

1일 새벽부터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어지럼이 찾아왔다.
고개를 단순히 숙이거나 가볍게 오른쪽왼쪽 돌리는 건 괜찮았는데,
각도가 조금 더 깊어지거나 또 가볍게 돌려도 가끔씩 내 행동보다 시선이 뒤따라오는, 뇌에 슬로모션이 걸린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머리를 감을 수 있겠지 싶어서
고개를 팍 숙이는데 어지럼이 확 와서 깜짝 놀랐다.

제일 안정된 자세는 정면만 보는 자세다.
그래서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것이었다. 티브이시청도 가능하지만 다투고 싸우고 심각한 프로그램은 스트레스를 더하니 피하게 되었다.


누워서 잘 때가 문제였는데
첫날은 정면으로 누웠을 때 뇌가 자연스럽게 부서지는 것같이 어지러웠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더 심해서 시선을 내 마음대로 둘 수가 없었다.

둘째 날도 마찬가지,
셋째 날은 왼쪽으로 5도 트는 게 괜찮아졌지만 나머지는 비슷했다.

앉아있을 때랑 누워서 고개 틀 때랑 왜 이렇게 어지럼 정도가 다를까?

뇌에서 기름기로 막혀있나 싶어서 아침에만 먹던 약을 저녁에도 먹었다.

그나마 약을 먹으니 다행이지 안 먹었으면 바로 응급실 직행이었다.
추석 때 전과 잡채, 또 그 이후에 먹던 기름 있는 음식들, 빵이나 과자 등등...
라면은 끊었으니 음식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 쌓이고 있었나 보다.

어쩐지 계속 뒷목이 파르르 떨리더라니...


주님께 죄송했다.
어떻게 살려주셨는데 6년 동안 똑같이 실수를 반복하면서 또 도와달라 고이러고 있는 내가 부끄러웠다.

스트레스는 내 마음을 붙잡고 있어도 갑자기 오는 영향들에는 어쩔 수 없으나,
식단관리에 있어서는 내가 뜻대로 할 수 있었는대도 잘하지 못했다.

자려고 몸은 천장을 향하게 누웠는데 어지러우니 고개만 오른쪽으로 살짝 돌렸다.
그래도 또 괜찮나 싶어서 왼쪽으로 돌려보니 어지러워서 다시 원상복구 했다.

목이 자꾸 뻣뻣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셀프마사지를 하고 손도 지압했다.

요양 2~3년 차까지 이렇게 어지러웠었는데 문득 떠올랐다.
왜 잊고 있었을까?
이때까지만 해도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면서  마지막처럼 살자고 다짐하며 지냈는데,
요양 6년 차가 되니 다 까먹었었다.
두둥~

심장도 부정맥으로 자다가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고 하는데
뇌질환도 마찬가지로 자다가 가는 경우가 있다고 들어서
어지럼이 계속되니 나도 예외는 아니겠다 싶었다.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라 이 어지럼을 느끼면서 죽고 싶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평안히 가면 얼마나 다행이야!
그때는 매일 하나님께 데려가시려거든 잘 때 제자신도 모르게 데려가달라고 기도했다.

이 또한 까먹고 있었다.
매일 '내일은 일어날 수 있을까? 오늘이 마지막일까?' 하며 잤었는데!
또 생각날 때마다 종이메모지나 폰메모에 가족에게 남기는 말도 써놓고 말이다.


요즘 또 이러고 있으니 생각이 났다.
나는 참 망각을 잘한다.


어지럽기 전에도 주님 안에서 살았는데
갑자기 어지러우니 마음이 낮아지면서 마음 안에 있던 생각들이 정리된 것 같았다.
헛된 욕심도 내려갔다.
어지럽기 전과 어지럽고 난 후의 내 영이 다른 느낌이었다.
커튼이 걷힌 느낌!
이걸 반복하고 있다...
하아~
바울의 가시처럼 나는 이 어지럼증, 건강이 약한 부분이 있어야만 세상에 물들지 않는 건가 싶었다.


부모님께 말씀을 안 드리고 어지러운 모습 안보이려고 최대한 노력했는데
가끔 심부름을 시키셔서 혹시나 그때 아시면 걱정하실까 봐 어제저녁에서야 말씀드렸다.
역시나 심부름을 시키시려고 하셨던 차였다.
타이밍굳!

부모님께 죄송했다.
같은 모습을 몇 번이나 보여드리는지!!!


초심을 지키기가 참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초심을 잃어버린 사람은 자신이 초심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초심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것 같다.
내가 그랬응께~

오늘 일어나서 먼저 튀어나온 말이
"엇! 천국이 아니군! 살아있네! 주님이 살려주셨어!"였다.
웃프지만 약간은 아쉬움과 감사함!

가족을 생각하면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 아니면 천국에 데려가달라고 징징거리는 게 맞을까 여러 생각들이 들지만,

어쨌든 오늘도 살아있으니 주어진 현실에 감사하며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가치 없는 것에 목숨 걸지 말고 오직 감사하고 기뻐하고 사랑하며 살기!

할 일이 없나 하고 쫓기는 삶이 아니라
하늘을 보고 내 삶에 감사하며 현실은 팍팍하더라도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고
할 일이 없어도 진심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되는,
세상을 초탈한 사람이 되고프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지러우니 드는 생각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