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y of growing plants
1년 전 이사를 하면서 집 안에 식물을 들이기 시작했다. 식물을 직접 골라 구매해 본 경험이 없어서 내가 어떤 종류의 식물을 좋아하는지 취향조차 알지 못하던 때였다. 다만 고요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반려식물과 함께하고 싶었기에, 집정리가 어느 정도 된 후 바로 근처의 식물가게를 찾았다. 가게 안팎의 많은 식물들 중에서 내 마음에 들어오는 건 키가 내 배꼽 높이 정도 되는, 잎이 작고 다부진 ‘병솔’이라는 아이였다. “올리브 나무 같은 스타일을 좋아하시나 봐요!“ (그곳에는 올리브 나무도 있었는데 금액이 병솔의 3배가 넘었다.) 그렇게 [병솔]은 우리 집의 첫 번째 식물이 되었다.
또 들이고 싶었던 건 꽃나무였는데, 그 중에서도 호접란을 키우고 싶었다. 몇년 전 밀라노에서 방문했던 이탈리아인 친구 집 곳곳에 난을 키우고 있었다.(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무심하게 심겨진 채). 내 기준 호접란은 값비싼 식물이어서, 이탈리아인 친구의 호접란에 대한 쿨한 태도가 꽤나 멋지게 느껴졌고, 언젠가는 나도 무심히 난꽃을 키워보고 싶었다. 어느 주말 집 근처를 걷다가 길에서 5천원에 파는 호접란을 만나게 됐고, 그렇세 진한 핑크색 꽃송이가 꽤나 많이 달린 [호접]을 들이게 됐다. 선배가 승진했을 때 근사하게 보내던 꽃이었는데, 단돈 5천원에 우리집에 온 호접.
꽤 힘든 시기를 보냈던 작년이었다. 거의 매일 울었고 특히 술을 마시면 열에 아홉 번은 택시에서부터 울며 집에 들어오던 날 들이었다. [테이블야자]는 그 날들 중 어느 날에 들이게 된 식물이다. 좋아하는 선배들과 나름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내고, 집에 가려고 택시를 기다리는 중 인근 가게들을 돌며 화분 파는 분과 마주하게 됐다. 배웅하던 선배가 화분 하나를 골라 내 손에 들려 택시에 태웠는데, 양손으로 오도카니 작은 화분을 잡고 집에 가는 길에 폭풍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선배의 따뜻한 마음에 대한 고마움과 당시 내가 처해있던 상황의 서글픔이 섞인 눈물이었던 것 같다.
이사 오면서 아빠한테 선물받은 [선인장(게발선인장으로 추정)]은 <재크와 콩나무>의 콩나무 수준으로 자라나서 행잉 플랜트로 거듭났고, 어느 겨울날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탐스러운 빨간 열매에 홀려 데려온 [천냥금]은 우리집에서 새로운 꽃송이들을 피웠다. [병솔]은 내 배꼽 높이에서 가슴 높이까지 무럭무럭 키가 컸고, [테이블야자]는 처음 집에 왔을 때와 비교하면 높이와 부피 모두 대략 3배쯤 된 것 같다. [호접]은 작년의 꽃이 다 떨어지고 긴 겨울을 지난 후 봄이 오자 함께 새로운 세대의 꽃을 피워냈다. 지난 세대를 보내고 새로운 세대를 맞이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나의 호접과 그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언제 그렇게 조용히 모습을 바꿀까? 겨우 내내 자라지도 시들지도 않은 채 꼼짝도 안 하고 있던 식물들이 봄이 되자 하루가 다르게 생장하는 것을 보니 정말 경이로웠다. 일주일에 한 번 물 주고, 낮에는 블라인드를 열어 햇빛 보여주고, 가끔씩 들여다보며 ‘원래 여기에 이 줄기가 있었나?’ 한 게 내가 한 일의 전부였는데. 우리 집의 식물들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조용히 그들만의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식물과 함께 하는 삶이 이렇게 위안이 될 줄 몰랐다. (화병의 꽃은 ‘함께 산다’기 보다는 ‘공간을 채운다’는 느낌에 가까운 것 같아서, 아무튼 다르다.)
때론 물을 너무 많이 주거나, 아니면 물 주기를 잊어버려서 식물들에게 미안한 적도 있었다. 아프고 불편한 것을 시간을 들여 겉모습의 변화로 보여주는 게 때로는 애처롭다. 미안한 마음에 영양제도 사서 주고, 상태가 좋아지는지 자주 체크하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분명 나와 식물들 사이에 일종의 라포(rapport)가 형성된다고 믿는다. 분명 어떤 방법으로 교감하고 있다.
최근 무늬 필레아 페페라는 동그란 잎을 가진 귀여운 식물을 선물 받았다. [페페]도 우리 집에서 잘 적응해서 행복하게 자라나기를. 모두모두 나와 함께해 줘서 고마워. 우리 집은, 식물이 행복한 집.
20250601
식물과 함께 숨 쉬는 공간에서